
중동 전쟁 장기화 우려가 커지면서 원/달러 환율이 1530원을 돌파했다. 증시는 장중 급락하며 5000선을 위협받았다. 고환율·고유가가 동시에 나타나면서 스태그플레이션 우려도 커지고 있다.
31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4.2원 오른 1519.9원에 출발해 장중 1530원을 넘었다.
주간 거래 기준 환율이 1530원을 넘어선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3월 10일 이후 약 17년 만이다. 당시 환율은 장중 1561.0원까지 오른 뒤 급격히 하향 안정화해 1511.5원으로 마무리했다.
전날 야간 거래에서도 원/달러 환율은 1521원을 넘으며 원화 약세가 심화되는 모습을 보였다.
중동 전쟁 장기화 전망이 원/달러 환율 상방 압력으로 작용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30일(현지시간)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을 통해 이란과 조기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발전소·유전·하르그섬 등을 공격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도 종전 시점을 제시하지 않으면서 시장 불안을 키웠다. 미군 특수부대의 중동 배치 소식도 확전 우려를 자극했다.
국제유가도 급등했다. 5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배럴당 102.88달러로 마감하며 2022년 7월 이후 처음으로 100달러를 돌파했고, 브렌트유 역시 112달러대에서 상승세를 이어갔다.
달러 강세도 지속되며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100.5 수준으로 엿새째 상승했다. 위험자산 회피 심리가 강화되면서 원화 약세 압력이 커졌다는 분석이다.
증시도 급락했다. 코스피는 장 초반 4% 넘게 하락하며 5050선까지 밀려 전쟁 이후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이후 낙폭을 일부 줄였지만 약세 흐름이 이어지며 5100선 안팎에서 등락했다. 외국인과 기관이 각각 1조원 넘게 순매도하며 지수 하락을 주도했고, 개인 투자자만 대규모 순매수에 나섰다. 코스닥지수 역시 2% 안팎 하락하며 동반 약세를 보였다.
시장에서는 전쟁 장기화와 유가 상승, 달러 강세가 동시에 나타나면서 금융시장 변동성이 당분간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고환율·고유가 충격이 지속될 경우 물가 상승 압력과 경기 둔화가 동시에 나타나는 스태그플레이션 위험도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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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원 우리은행 이코노미스트는 "현재 시장은 확전 가능성까지 반영하는 분위기"라며 "유가를 추종하는 달러 강세 기조가 꺾이지 않고 있어 역내외 투자자들의 매수 심리를 자극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박상현 iM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이란발 사태 진정, 고유가 안정 없이 당분간 원/달러 환율의 하향 안정을 기대하기 어렵고 이란 사태가 확전 양상으로 치닫을 경우에는 달러-원 환율의 추가 상승은 불가피해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이란간 전쟁 확전 등으로 인한 유가 추가 상승 시 미국 경제가 약한 수준일 수 있지만 소위 스태그플레이션 국면에 진입할 가능성이 크다"며 "얕은 수준의 경기침체와 더불어 인플레이션 압력 확대로 인한 미국 국채 금리의 추가 상승이 글로벌 자금의 안전자산 선호 현상 강화로 이어지면서 원/달러 환율의 추가 상승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첫 출근길에 오른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는 최근 원/달러 환율 급등에 대해 "환율 레벨 자체에 큰 의미를 부여해서는 안 된다"며 "달러 유동성 지표들은 상당히 양호하다"고 밝혔다. 이어 "예전처럼 환율과 금융 불안을 직결시킬 필요는 없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