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대 농대 장학생 합격증을 쥐고도 부산수산대(현 부경대) 어로과 진학을 택한 학생이 있었다. 1950년대 전쟁 직후,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이 내린 결단이었다. "국토가 좁고 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는 바다로 가야만 가난을 면할 수 있다." 담임교사의 이 조언이 그의 진로를 바꿨다. 김재철 동원그룹 명예회장의 바다를 향한 꿈은 그렇게 시작됐다.
동원그룹은 김 명예회장이 청년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담은 영상 시리즈를 10일부터 사흘 간 자사 유튜브 채널 '동원TV'를 통해 공개한다고 11일 밝혔다. 이 영상들은 김 명예회장이 청년들을 대상으로 진행했던 과거 강연과 지난해 4월 출간한 저서 '인생의 파도를 넘는 법'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영상은 김 명예회장의 청년 시절을 재현한 인공지능(AI) 콘텐츠도 담았다.
영상에서는 김 명예회장이 서울대 합격을 뒤로하고 배에 오른 청년시절부터 원양어선, 항해사, 선장을 거쳐 동원그룹을 창업하게 된 과정을 풀어냈다.
첫 승선 과정부터 순탄치 않았다. 승선 경험이 없었던 김 명예회장은 '죽어도 상관없다'는 내용의 각서까지 쓰고서야 무보수로 배에 오를 수 있었다. 김 명예회장은 당시를 회상하며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버틸 수 있었다"고 했다.
김 명예회장은 원양어선 생활 3년 만인 1961년, 23세의 나이로 선장으로 발탁됐다. 남태평양과 인도양에서 참치잡이 어선을 이끌며 '캡틴 J.C. Kim'이라는 별칭도 얻었다.
1960년대 고급 참치 수요가 급증하면서 원양어선들이 태평양에 몰렸지만 김 명예회장은 반대로 인도양 행을 택했다. 인도양은 위험하다는 생각에 사람들이 많이 몰리지 않아 오히려 고기가 많았다. 그의 배는 1965년 인도양에서 10항차 만에 117만달러어치를 수출하는 성과를 거뒀다. 김 명예회장은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에 '왜'라는 물음표를 붙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김 명예회장은 1969년 동원산업을 창업했다. 동원산업(37,000원 ▼750 -1.99%)은 식품과 금융, 물류 등으로 사업 영역을 넓혀 현재의 동원그룹과 한국투자금융그룹의 기반으로 성장했다.
김 명예회장이 청년들에게 가장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지금 도전하라'는 것이다. 그는 "젊음은 저축되지 않는다"며 "젊음은 아껴 놓는다고 나중에 꺼내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젊었을 때 큰 꿈을 갖고 용감하게 도전해야 한다"며 "현실적으로 가능해 보이는 꿈만 꾸지 말고 때로는 엉뚱한 꿈도 가져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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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김 명예회장은 교육 분야에 꾸준히 기부해왔다. 지금까지 사재로 출연한 금액은 883억원이다. 각각 카이스트에 603억원, 서울대에 250억원, 한양대에 30억원을 기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