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년 전 오늘 서울 은평구 구파발검문소에서 21살 의경이 54살 경찰관이 발사한 총탄에 목숨을 잃었다. 억울하게 자식을 잃은 유족은 명백한 살인이라 외쳤고 검찰 또한 살인죄를 적용해 법정에 세웠지만, 세 차례에 걸친 재판 결과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살인의 고의가 없었다는 이유로 살인 혐의만큼은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박모 경위는 2015년 8월 25일 자신이 근무하던 서울 은평구 구파발검문소 생활관에서 박모 수경(21·당시 상경)을 향해 실탄 4발과 공포탄 1발이 장전된 38구경 권총을 꺼내 들고 장난을 치던 중 방아쇠를 당겨 숨지게 했다.
당시 사건을 조사한 형사과장은 "검문소 감독관으로 있던 박 경위가 의경들이 간식을 먹고 휴게하고 있던 제1생활실로 들어가 총기를 꺼내 총을 쏘는 흉내를 내며 상호 장난을 치는 중 총기 내 실탄이 격발돼 박 상경이 좌측 흉부에 총탄을 맞아 사망하게 되었다"고 발표했다.
사건 당일 박 경위는 박 수경 등 검문소 소속 의경 4명이 은평경찰서에 성폭력방지 교육을 받으러 갔다가 복귀가 늦자 불만이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박 경위는 생활관에서 간식을 먹고 있는 박 수경 등을 향해 권총을 꺼내 여러 방향으로 겨눴고 일부는 두려움에 소리치며 침상 위 관물대 뒤로 피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유족은 "심장에 (총을) 정조준 했다는 걸 장난이라고 인정할 수가 없다. 그 어마어마한 무기를 가지고 어떻게 심장에 (겨누고) 왼손으로 반동까지 억제했다고 하더라. 그럼 70㎝ 거리에서 백발백중일 것"이라며 사고에 대한 정확한 원인이 밝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박 경위는 방아쇠를 당길 때 탄창 위치가 탄창이 장전되지 않은 칸이었다고 믿고 실탄은 물론 공포탄도 발사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며 살인에 대한 고의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사건을 수사했던 서울 은평경찰서는 범행동기가 없고, 평소의 유대관계와 범행 직후 박 경위의 행동, 다른 대원들의 진술 등을 토대로 미필적 고의를 인정하지 않고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해 검찰에 송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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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검찰은 살인 혐의까지 적용해 기소했다. 결심 공판에서는 "박 경위가 피해자에 대해 응급조치를 한 사실이 없는 점 등을 고려하면 살인의 미필적 고의가 인정된다"고 징역 12년을 구형했다.
하지만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1심 재판부는 "일부러 실탄이 나가는 위치로 탄창을 돌렸거나 실탄이 있음을 알면서도 방아쇠를 당겼다고 보기 어렵다"며 "피고인이 다른 의경 등에게 3회에 걸쳐 총기를 겨누어 협박하고, 총기관리에 관한 공문서를 허위로 작성·행사한 점은 유죄로 인정한다"고 징역 6년을 선고했다. 살인 대신 중과실치사·특수협박 등 혐의만 인정한 것이다.
검찰은 항소심 결심공판에서 "박 경위가 오랜 기간 경찰공무원으로 재직하고 우수한 사격실력을 가진 점은 원심에서도 인정한 사실이다.
치명적 살상무기인 권총을 피해자 바로 앞에서 들이대고 방아쇠를 당겨 사망에 이르게 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살인의 범행의사가 강하게 추정된다"며 "여러 사정을 종합할 때 박 경위는 피해자 사망이라는 결과가 발생할 가능성을 인식할 수 있었고, 결과를 용인하는 내심의 의사도 충분히 인정된다"고 항변했다.
딸의 부축을 받아 힘겹게 법정으로 들어선 피해자 어머니도 "박 경위에게는 살인의 고의가 있었다. 실탄은 물론 공포탄도 발사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박 경위의 주장은 자신의 경험이나 상식에 맞지 않다. 자신의 책임을 줄이려는 변명"이라며 "우울증을 앓아왔던 박 경위에게 총기 협박은 큰 희열을 안겨준 일종의 탈출구였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2심 재판부도 1심과 같이 징역 6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박 경위의 살인 혐의를 무죄로 판단하는 대신 중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해 이 같은 결론을 내렸다.
2심 재판부는 "사건 장소에 있었던 의경들이 일관되게 박 경위가 화가 나 있거나 흥분한 상태가 아니었고 장난을 치고 있었다고 진술한 점, 박 경위에게 살해의 동기가 있었다고 보기 어려운 점, 격발 후 총기가 하늘을 향해 있었다는 목격자 진술로 짐작해볼 때 박 경위가 반동을 억제하고 조준을 한 상태에서 일부러 방아쇠를 당긴 것으로 평가하기 어려운 점 등을 고려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법정에서 선고 결과를 지켜보던 피해자 가족들은 오열하며 재판부에 항의했다.
대법원은 징역 6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항소심 판단과 같이 살인 혐의는 무죄로 판단하고 중과실치사죄를 적용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살인 혐의에 대해 범죄사실의 증명이 없는 것으로 보고 무죄를 선고한 원심은 정당하다"며 "살인의 범의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거나 판단을 빠뜨려 판결 결과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