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하느라 눈도 안 마주친다굽쇼?…눈만 보는 게임을 소개합니다

게임하느라 눈도 안 마주친다굽쇼?…눈만 보는 게임을 소개합니다

다콘
2014.06.25 08:58

[딱TV]디지털 세대는 모르는, 거의 모든 게임의 역사

[편집자주] '주사위 마니아' 다콘 - 어렸을 때만 즐겼던 주사위와 보드 게임, 그 속에 숨겨진 재밌고도 은밀한 역사를 읽어드리는 아날로그 오타쿠입니다.

"요즘 젊은 것들은 스마트폰 게임만 하느라 상대방 눈을 안 쳐다봐" 라는 어르신의 지적에 마음 상한 게임 오타쿠가 반론을 제기한다. 상대의 눈을 미치도록 격렬하게 들여다보는 게임, 일명 '바퀴벌레 시리즈'를 소개한다. 이성과 눈도 못 마주치는 내성적인 성격의 소유자라면, 이 게임이 치료제가 될 수 있다.

나는 술을 못한다. 술자리는 항상 불편하다. 술자리에서는 항상 구석 자리를 선택하고, 운 없게 내 앞자리 또는 옆자리에 앉은 사람과 말 몇 마디 섞다 일어나곤 한다. 그런데 최근 술자리에서 한 어르신이 일장 연설을 하기 시작했다.

“요즘 젊은 것들은 휴대폰 게임 쳐다보느라 가까운 사람하고 대화를 안 한다. 글러 먹었다”라고. 사실 그 자리에 아무도 그런 사람이 없었고 다들 불편했지만, 그 자리의 유일한 게임 관련 업종 종사자로서 나는 조금 더 불편했다.

그러고 보면 국내에 아이폰이 반입될 때부터 이런 부류의 꼰대 같은 칼럼을 정말 숱하게 봐 왔던 것 같다. 게임 종사자 비슷한 사람으로서 가까이 있는 사람을 안 쳐다보는 것은 게임의 본질이 아니라는 이야기가 하고 싶다. 하지만 술자리에서는 이런 말을 하지 못하니 이런식으로 지면에서 할 수밖에.

그래서 술자리에서 다른 사람 눈을 보며 하기 딱! 좋은 게임(이지만 실제로 그렇게 해 본 적은 없는)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런 류의 게임을 종종 만드는 룩셈부르크의 보드게임 작가 Jacques Zeimet의 '바퀴벌레 시리즈'다. 사실 딱히 시리즈는 아닌데 필자 마음대로 그렇게 부를 뿐이다. 그러니 보드게임 카페에서 ""'바퀴벌레 시리즈' 주세요"라고 말했을때 상대의 반응에 실망하지 말자.

그리고 “당신 글 보고 나중에 술자리에서 이 게임 실제로 해봤는데, 분위기 싸해져서 중요한 계약을 성사시키지 못했다” 같은 불행한 사태에 대해서는 딱히 책임질 수가 없다. 우리나라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보드게임 인프라는 좁다.

'바퀴벌레'라고 하면 거부감이 들 수도 있을 텐데, 일단 일러스트 작가 Rolf Vogt의 장난기 넘치는 그림을 보면 생각이 바뀔 것이다. 바퀴벌레, 두꺼비, 파리, 쥐 같은 흉물스러운 동물들이 귀엽고 매력있게 탈바꿈했다.

이 시리즈의 첫 작품은 바퀴벌레 포커(2004년, 개발사 : Drei Magier Spiele)다. 작가와 일러스트 작가 둘 중 한 사람만 빠져도 시리즈의 매력이 유지될 수 있을지 의문인 게임이다.

의아할 수도 있겠지만, 이 작품은 국내에서도 상당히 인기가 있었다. 2004년은 보드게임 카페라는 세계적으로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운 기괴한 문화 업종이 아직 국내에서 멀쩡했던 시기였다. 이 작품은 보드게임 카페 시대의 '끝물'을 알리는 대표적인 게임 중 하나였다.

게임 내용은 별것 없다. 흉물스러운 동물이 그려진 카드를 각자 10장씩 들고 시작한다. 자기 차례가 되면 카드 1장을 다른 사람 앞에 내밀면서 “이거 바퀴벌레야”, “이거 두꺼비다” 이런 식으로 말하면 된다. 이 간단한 행동으로 승부가 시작된다.

상대는 승부를 받아들이거나 회피할 수 있다. 승부를 받아들인다면 승부를 제안한 사람의 말이 참인지 거짓인지 선언하고 카드를 펼쳐 확인하면 된다.

참과 거짓을 정확히 읽었다면 상대가 내민 카드는 그 사람 앞에 벌점으로 놓인다. 생각을 정확히 읽는 데 실패했다면 승부를 받아들인 사람 앞에 카드가 벌점으로 놓인다.

승부를 회피한다면 카드를 한번 보고, 제3자에게 승부를 제안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A가 B에게 내밀 때는 “이건 바퀴벌레야”라고 했던 카드가 B가 C에게 말할 때 “이거 사실은 파리다”로 둔갑하는 것이 의외의 즐거움이다.

난감하다면 C도 승부를 회피하고 폭탄 돌리기를 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맨 마지막 두 사람은 피할 수 없는 뻥카 맞히기 승부를 해야만 한다.

승부에 지고 벌점을 먹은 사람이 새 승부를 제안하며 게임은 계속 이어진다. 이러다가 누군가 같은 동물을 4장 먹거나 승부에 자주 패해서 손에 든 카드를 모두 소진할 경우 게임에서 진다. 나머지 사람 모두의 승리.

↑ 세상에 믿을 놈 하나도 없다는 절규가 들려온다
↑ 세상에 믿을 놈 하나도 없다는 절규가 들려온다

시작은 단순한 찍기에 가깝지만, 사람들이 먹는 카드가 늘어나면 점점 확률 싸움이 된다. 카드 1장을 먹는 것도 큰 페널티지만 손에 있는 카드 1장을 소모하게 되는 것도 페널티로 느껴지며, ‘도박묵시록 카이지’를 방불케 하는 심리 대결이 펼쳐진다.

게다가 지는 사람 한 명만 결정하면 끝나는 게임이기에 누군가 패배의 기운이 감돌기 시작하면 사방에서 공격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예를 들어 바퀴벌레를 이미 3장 먹었다면 사람들이 “이거 바퀴벌레야”라며 승부를 제안할 때 좀 더 진땀이 날 수밖에 없다.

일단 게임에서 확실히 지지 않는 수는 'Yes'이지만 그걸 노리고 다른 것들을 먹이기 시작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친구들의 성격이나 버릇까지 분석 대상이 된다. 이런 게임은 드물다.

↑ '내 눈을 바라봐'라고 말하는 듯한 위 인물은 본 기사 내용과 관계가 없습니다
↑ '내 눈을 바라봐'라고 말하는 듯한 위 인물은 본 기사 내용과 관계가 없습니다

또 하나 게임의 포인트는 상대의 눈을 빤히 쳐다보는 것이 즐겁다는 것이다. “내 눈 똑바로 보고 다시 말해 줄래?” 라고 말하며 상대를 빤히 볼 뿐인데 포커페이스를 유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리는 사람도 있고 얼굴이 빨개지는 사람도 있다.

나는 수줍음이 많아 평소에는 여성의 얼굴을 똑바로 못 보는 편이었는데 이 게임이 정말 큰 도움이 되었다, 물론 부작용으로 “세상에 진실한 사람은 많지 않구나!”라는 깨달음도 얻고 말았다.

직접 해보고 친구들의 얼굴을 자세히 관찰해보라. “이 친구는 여기에 기미에 있구나”, “이 친구는 거짓말할 때 이런 버릇이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살면서 이런 걸 관찰할 기회는 많지 않다.

이 즐거움은 지면으로 도저히 전달할 길이 없다. 어쨌든 게임 때문에 사람을 안 쳐다본다는 어르신의 생각은 틀렸다. (이 긴 글의 주제는 사실 이것이다.)

게임은 사람을 마주하지 않게 한다는 편견에 대한 억하심정 하나로 배설하듯 쓴 글이 됐다. 다음 회에는 나머지 '바퀴벌레 시리즈'들을 한 번에 모아 그 매력에 빠져보는 시간을 가져 보자.

☞ 본 기사는 딱TV (www.ddaktv.com) 에 6월 25일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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