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릴레오 지동설은 인문학으로 완성됐다

갈릴레오 지동설은 인문학으로 완성됐다

김고금평 기자
2015.09.05 03:20

[따끈따끈 새책]'과학, 인문으로 탐구하다'…"과학의 본질은 '융합', 수학·실험만이 과학이라는 건 편견"

과학이 수학과 실험으로 도배된 딱딱하고 객관적인 학문이라는 ‘사실’은 다른 학문에 비해 데이터로 검증되고 확인되는 절차를 밟기 때문이다. 과학의 정의는 그것으로 끝난 것일까.

하지만 그리스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 과학의 태동 시기부터 오늘날의 근대과학까지 긴 과학의 역사를 더듬어보면 수학과 실험의 이중주는 불과 최근의 일에 불과할 뿐이다.

15세기까지 과학의 주류였던 아리스토텔레스주의는 자연 연구에 실험을 철저히 금기했다. 자연에 인위적 실험을 가공하는 것 자체가 연구를 위배하는 일로 수용됐다. 과학에 종교나 철학적 정신이 중요했던 셈이다. 철저한 검증을 강조한 뉴턴도 이 법칙을 배반하지 않는다.

뉴턴은 근대 물리학의 기틀을 잡은 1687년 ‘프린키피아’의 일반 주해에서 엉뚱하게 이런 ‘사실’을 밝힌다. “우주공간은 신의 감각기관”이라고 명시한 것이다. 신과 우주에 관한 뉴턴의 이야기는 새로운 과학을 거부했던 교회를 위한 단순한 립서비스라기보다 세계를 이해하는 그만의 방식이었다.

합리주의의 대표적 철학자인 데카르트는 한술 더 뜬다. 무지개 원리를 정확히 설명한 과학자이기도 했던 그는 외부의 힘이 작용하지 않는 한, 물체가 속한 계의 운동량의 전체 합이 보존된다고 주장했다. 다만 그 물체의 운동은 태초에 신이 부여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검증과 종교 요소를 덧붙인 과학의 실체는 다른 인문학적 재료를 하나 둘씩 받아들이며 외연을 넓혀갔다. 갈릴레오는 과학자의 ‘글쓰기 능력’을 확인시켜준 대표적 사례다.

지동설에 대한 반감이 커지던 시대, 망원경 관측 증거가 지동설을 확립하는데 그 역할이 상대적으로 약했음에도 불구하고 지동설의 대중화를 글쓰기로 해결했다. 그는 1610년 발표한 ‘별의 전령’에서 망원경으로 본 달의 표면을 사실감있게 그려 대중의 이해를 도왔다.

이론물리학자들의 뛰어난 음악적 재능에선 과학과 예술이 떨어져있는 학문이 아니라는 사실을 읽을 수 있다. 아인슈타인이 수준급의 바이올린 연주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는 것, 피타고라스학파가 우주와 음악은 일정한 자연수의 비율로 표현된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 매트릭스 역학을 창시한 하이젠베르크가 60번째 생일에 모차르트 피아노협주곡을 연주했다는 것은 모두 과학이 지닌 조화의 미학을 음악으로까지 확장시킨 사례다.

이렇게 다양한 학문과 더불어 존재했던 과학이 19세기에 이르러 객관성만을 강조한 수학과 실험의 학문으로 인식된 것은 기술의 발달 덕분이다. 그렇다고 과학이 인간적 요소가 거세되거나 사라진 것은 아니다. 실험의 과학이 융합의 과학으로 전이되고 있는 지금 시대에는 오히려 부드럽고 따뜻한 인문의 그림자를 더 넓고 깊게 과학이 베어 물고 있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애플의 DNA는 기술만으로 충분치 않고 기술과 교양 지식이 결합돼 우리의 가슴을 울리게 하는 것”이라고 했고, 구글은 안드로이드 개발 과정에서 인류학자와 심리학자를 대거 참여시키기도 했다.

책은 과학의 실제 모습이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다채롭다며 인간과 자연에 대한 공감 요소를 놓치지 말아야한다고 강조한다. 그것이 곧 진정한 융합의 가능성을 보는 핵심이라는 것이다.

◇과학, 인문으로 탐구하다=박민아·선유정·정원 지음. 한국문학사 펴냄. 392쪽/1만4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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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고금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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