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 과학문학공모전 단편소설] 우수 '코로니스를 구해줘' <3회> 8년전 고등학교로 돌아간 주노의 비밀

2.
빗줄기가 창문을 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얇은 창틀이 외풍에 떨고 있는 소리, 나뭇가지와 이파리가 거센 비바람에 마구 흔들리는 소리. 콧속으로 밀려들어오는 곰팡이 냄새와 살갗을 찔러오는 눅눅하고 차가운 냉기까지.
모든 감각을 느낄 수 있게 됨과 동시에 그녀는 눈을 떴다.
어두컴컴한 학교 복도가 시야에 들어오자 주노는 자기도 모르게 양팔로 어깨를 감싸 안았다.
왼쪽 복도에는 창문이 있고 오른편에는 1학년 반이 열을 지어 서 있었다. 반 팻말을 보니 그녀가 서 있는 곳은 3층에 있는 1학년 10반 옆이었다. 복도 건너편은 짙은 어둠으로 감싸여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몇 층에 서 있는지 가늠해 보기 위해 창문 앞으로 다가갔다. 하지만 예상대로 창문은 열리지 않았다. 비 내리는 바깥을 바라보는 그녀의 모습만 창문에 반사될 뿐이었다.
그때 그녀의 스마트 워치에서 작은 홀로그램 영상이 떠올랐다. 제작진이 보내기로 약속한 네티즌 실시간 반응이었다.
- 헉, 폐교 배경인가? 그런데 진짜 리얼하다. 모르고 보면 폐교에서 촬영하는 줄 알겠어.
- 우리 고등학교랑 똑같이 생겼어. 나 무서워서 내일 학교에 어떻게 가?
시청자들의 첫 반응은 합격점이었다. BJ 주노-본명 장준오-는 벌써 6년째 게임방송을 진행해 왔고, 연약하고 청순한 이미지와 달리 다수의 공포게임을 섭렵한 베테랑 플레이어였다. 방송국 카메라 앞에서는 겁먹은 척 연기를 했지만 사실 그녀는 IOM1을 플레이해 본 경험이 있었다. 인기게임의 후속 작은 대개 전작과 비슷한 조작시스템으로 제작하기 때문에 전작을 플레이한 그녀는 게임 조작법을 숙지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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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건물과 복도의 구조, 시멘트벽에서 풍겨오는 냉기, 나무로 이루어진 창틀의 형태. 창 밖에 보이는 수령 90년 된 버드나무의 모습까지.
게임 속 배경은 그녀가 자퇴한 고등학교와 지나치게 흡사했다.
‘재수가 없으려니까.’
그녀는 놀랍도록 발전한 과학 기술과 IOM2 개발진들을 향해 침이라도 뱉고 싶은 심정이었다.
벽에 붙어 겨우 걸음을 옮기던 주노는 복도 중간에 위치한 1학년 8반 옆에 다다랐다. 고등학교 교실의 모습이야 어느 지역이나 대동소이하지만 이곳에는 주노의 기억을 강하게 자극하는 요소가 있었다.
주노가 생각에 잠기려던 찰나, 갑자기 사방이 망가진 TV 화면처럼 요동치기 시작했다.
복도는 순식간에 고등학생들로 가득 찬다. 쉬는 시간 특유의 왁자지껄한 소음이 귓바퀴를 왕왕 울린다. 그녀는 이것이 자신의 뇌가 만들어낸 환상인지, 아니면 게임 속 시나리오의 일부인지 분간을 할 수가 없다.
한 여고생이 주노의 곁을 스쳐지나간다.
날씬한 몸매에 딱 맞는 교복을 입은 여고생은 고개를 푹 숙인 채 힘없이 걸어가고 있다. 그녀는 등허리까지 닿는 검은 생머리를 가졌다. 길을 걸어가면 누구나 한번쯤 돌아볼 만큼 눈에 띄는 외모다.
한 무리의 여학생들이 여고생의 옆으로 걸어가다가 어깨를 세게 부딪친다. 누가 봐도 고의적인 의도가 다분하다. 그녀는 갑작스런 습격에 맥없이 뒤로 넘어져 엉덩방아를 찧는다. 여학생들은 그녀를 내려다보며 까르르 웃음을 터뜨린다. 아프잖아. 눈을 어디다 달고 다니는 거야. 빨리 사과 안 해? 여고생은 조용히 눈을 내리깐다. 그러나 절대 사과는 하지 않는다. 여학생들은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리며 제각기 한 마디씩 내뱉는다. ‘싸가지 없는 년. 뭘 잘했다고 착한 척이야.’, ‘빨리 일어나. 누가 보면 우리가 너 왕따라도 시키는 줄 알겠다.’, ‘얼굴도 못생긴 년이 자기가 예쁜 줄 알고 나대는 것 좀 봐!’ 그녀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도망치듯 교실로 향한다.
여고생이 1학년 8반으로 들어가자 학생들의 시선이 모인다. 그녀는 동물원의 원숭이가 된 기분으로 자리에 앉는다. 책상 서랍에서 교과서를 꺼내려던 그녀는 섬뜩한 촉감에 놀라 손을 빼낸다. 서랍에 보관하고 있던 교과서와 공책들이 모두 갈기갈기 찢어졌고, 그것들을 찢는데 사용되었을 커터 칼까지 그대로 들어 있다. 그녀의 눈앞이 퓨즈 뽑힌 전등처럼 캄캄해진다. 뭘 어떻게 해볼 틈도 없이 수업 종이 울린다. 교사가 들어와 교과서를 검사하기 시작한다. 남학생들이 뒤에서 킬킬대며 웃어댄다.
그때 조심스럽게 여고생의 팔을 찌르는 손가락이 있다.
내 거 같이 보자.
그녀의 짝이 속닥이며 책상 가운데 교과서를 펼친다. 짝은 통통한 체격에 몸에 맞지 않는 커다란 교복을 입고 있다. 여고생은 짝의 가슴팍에 달린 명찰을 들여다본다.
― 백아영
그녀는 짝의 얼굴을 바라본다. 그런데 짝의 얼굴은 부옇게 김이 서린 자동차 유리 너머에 있는 것처럼 흐릿하기만 하다.
백일몽은 처음 왔을 때처럼 삽시간에 사라졌다.
방금 전 환상은 그녀의 고등학교 1학년 시절 모습이었다. 게임은 그녀의 기억을 완벽하게 영상으로 재현해냈다. 문제는 그것이 주노가 가장 잊고 싶어 했던 기억이라는 것이다. 전 세계 네티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치부를 낱낱이 공개해버린 주노는 수치심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갑자기 8반 안쪽에서 드르륵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새된 비명을 질렀다. 방금 전만 해도 놀이동산에 있는 유령의 집에라도 들어온 것처럼 자신만만했건만, 전신의 감각이 게임 속 현실에 적응되자마자 공포도 실제처럼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그녀가 비명을 지르며 덜덜 떨자 실시간 반응은 더욱 뜨거워졌다. 네티즌은 그녀가 교실로 쉽게 들어가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신나게 웃어젖히고 있었다.
교실로 들어간 주노는 사물함 밑에 있는 손전등을 찾았다. 그녀는 쾌재를 부르며 교탁을 쳐다보았다. 교탁에는 낡은 출석부 한권이 올라와 있었고, 마침 형광색으로 반짝거리고 있었다. 그녀는 망설임 없이 출석부를 펼쳐보았다.
출석부 가죽 표지는 물에 젖었다 마른 것처럼 쭈글쭈글했다. 종이가 누렇게 변색된 데다 사진이 붙어있는 페이지도 심하게 손상되어 있었다. 그녀는 손전등으로 사진들을 일일이 살펴보았다.
주노의 시선은 출석부에서 가장 눈에 띄는 사진 세 장에 머물렀다.
첫 번째는 담임 신지수 선생이었다. 그녀는 주노가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당시 30대 중반의 노처녀였다. 과목은 아마 국어였을 것이다. 아이들에게 크게 인기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까다롭게 굴지도 않았던 전형적인 만만한 선생이었다.
두 번째는 주노의 사진이었다. 꽤 예쁘장한 그녀의 얼굴에는 누군가 장난을 쳐놓았는지 까만 펜으로 칼자국 흉터가 덧그려져 있었다. ‘장준오’라는 이름이 쓰여 있어야 할 부분도 뾰족한 펜으로 구멍을 뚫어놓아 글자를 알아볼 수 없게 만들었다. 주노는 엉망이 된 사진을 얼른 손바닥으로 가렸다.
그 때 네티즌 실시간 반응이 도착했다. 주노는 덜덜 떨면서 채팅을 읽어 내려갔다.
- 주노 고딩 때 진짜 왕따 당했었나보네. 좀 불쌍하다.
- 누구냐? 주노 거짓말했다고 우겨대던 놈이?
- 우리나라 네티즌들은 이래서 안 된다니까. 개떼처럼 몰려들어서 마녀사냥 하던
것들은 꼭 이럴 때 없어지더라?
예상외의 호의적인 반응에 주노는 입을 벌렸다. 저절로 미소가 흘러나왔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철딱서니 없이 웃음을 터뜨렸다가는 동정론도 곧장 사라질 것이다. 그녀는 바로 마지막 사진을 관찰했다.
주노의 눈이 동그래졌다.
사람의 얼굴이 있어야 할 자리에 까마귀 머리가 그려져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사진 아래 쓰여 있는 이름을 소리 내어 읽었다.
“……백아영.”
주노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아영은 고2 때 자살을 선택했고, 학생들은 아영이 왕따였던 주노를 돕다가 함께 찍혀 괴롭힘을 당한 탓이라고 떠들어댔다. 주노는 친구를 잃은 충격에서 벗어나기도 전에 친구를 죽인 원인제공자로 손가락질 당하는 신세가 되었다.
까마귀 그림 위를 문지르자 검은 물감이 묻어났다. 주노는 무심결에 옷자락으로 물감을 닦으려 했다.
그때 갑자기 그림 속 까마귀가 부리를 쩍 벌렸다.
주노는 자기 눈을 믿을 수 없었다. 사진 속 아영의 얼굴을 뒤덮고 있던 까마귀 그림이 출석부를 뚫고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까마귀는 검은 부리를 벌리고 피거품을 쏟아냈다. 완전히 종이 밖으로 빠져나온 그것이 거대한 날개를 퍼드덕거렸다. 주노는 더 이상 까마귀를 마주보지 못하고 교실 밖으로 달려 나갔다. 날아오른 까마귀가 그녀의 뒤통수를 바짝 쫓아왔다. 주노는 머리카락을 부리로 물어뜯으려 하는 까마귀를 양팔을 휘둘러 떼어내고 정신없이 뛰었다.
더는 까마귀가 쫓아오지 않자 그녀는 겨우 달리기를 멈출 수 있었다. 입에서 단내가 나고 심장이 두방망이질 쳤다. 그녀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신음을 쏟아냈다. 마음 같아서는 엄마를 부르며 울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방송 중이고, 십여 년 전 재혼해 다른 가정을 꾸린 엄마와는 연락이 끊긴 지 오래였다.
주노는 어느새 교무실 앞으로 와 있었다. 교무실 벽에 붙어 있는 안내 게시판에는 한물 간 스타가 모델인 금연 포스터와 1학기 동안의 행사를 알리는 안내문 등이 붙어있었다. 주노는 1학기 행사 안내문에 인쇄되어 있는 년도를 읽었다.
200X년.
지금으로부터 8년 전.
주노와 친구 아영이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해이다.
이것으로 게임 속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다.
IOM2는 주노를 아영과 처음 만났던 17살 시절로 데리고 온 것이다.
주노는 뒤로 물러서며 머리칼을 마구 헤집었다. 얼굴이 새빨개진 그녀가 정신 나간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왜 하필이면 지금이야. 다른 배경도 많은데 왜 하필 학교냐고. 이해가 안 되네 진짜…….”
그때 갑자기 교무실 문이 벌컥 열렸다. 주노는 교무실 안에 있던 파마머리 여자와 눈을 마주쳤다.
무언가 날카로운 것이 목을 꿰뚫었다.
주노는 쇠로 만든 30센티미터 길이의 자에 목이 뚫린 채 그대로 절명했다.<☞4회로 계속>
*제목은 연재를 위해 편의상 붙인 것으로 원작품엔 부제가 없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