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 과학문학공모전 단편소설] 우수 '코로니스를 구해줘' <8회>

“그동안 뭔가 이상하다고 느낀 적은 없었어?”
넋이 나간 주노를 대신해 선생이 입을 열었다.
“기억이 사라진다거나, 외부와의 통신이 끊어진다거나, 갑자기 몸이 아프다거나. 그 밖에도 꽤 많은 일들이 있었을 텐데?”
사실 짐작 가는 데가 있었지만 주노는 일단 부정부터 했다.
“아니, 없는데?”
“또 거짓말을 하는구나.”
“난 거짓말한 적 없어.”
“아니. 넌 오늘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있어.”
그랬다. 주노는 그것을 떠올린 지 오래였다. 다만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을 뿐이었다.
선생은 어느새 아영이 뛰어내린 난간 옆에 서 있었다.
“8년 전 8월 18일. 네 친구 백아영이 이곳에서 자살했지.”
그녀는 난간 밖으로 상체를 길게 내밀어 교정을 굽어보았다.
“그로부터 8년 뒤, 넌 방송국에서 신작 VR게임을 하던 중 기계 오작동으로 혼수상태에 빠졌어.”
선생은 다시 몸을 돌려 주노를 바라보았다.
주노는 어느새 코피를 줄줄 흘리고 있었다.
그녀가 흘린 코피가 옷자락을 적시고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손을 들어 콧구멍을 막고 피 묻은 옷을 닦아보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곧 그녀의 귀에서도 굵은 피가 흘러나왔다. 주노는 자기 몸에서 솟구쳐 나오는 피를 천치처럼 내려다볼 수밖에 없었다.
“방송 중 전류가 지나치게 많이 사용된 탓이었을 거야. 기계 정비를 게을리 한 방송국의 과실이었지. 네 의식을 게임에 연결한 헤드기어의 전자기파가 멋대로 폭주하기 시작한 건 말이야. 그 밖에도 여러 기술적인 문제가 겹쳐서…….”
주노는 방송을 시작하기 전 게임기기 정비로 분주했던 스텝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독자들의 PICK!
― 글쎄요. 스튜디오 화면과 게임 캡슐 연결에 조금 오류가 생겼다는데요. 금방 해결될 테니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화재가 나자 방송국은 아수라장이 됐어. 구조대가 너를 간신히 밖으로 데리고 나왔지만, 불행히도 넌 깨어나지 못했지. 너는 지금도 VR 게임기에 연결된 상태로 ‘잠자는 숲속의 공주’처럼 누워있어. 현재 네 신체에서 살아 남아있는 부분은 전두엽과 측두엽, 그리고 연수뿐이야.”
“말도……안 돼.”
주노는 울컥 선지피를 토해냈다.
“대체, 언제부터.”
“네가 처음으로 흰 까마귀를 보았을 때.”
선생은 파마머리를 돌돌 말았다 풀기를 반복했다.
“그 대목이 너희 게이머들이 말하는 속칭 ‘엔딩 분기점(分岐點)’이었단다. 어때, 이제 설명이 좀 되었니?”
설명이 되었을 리가 없었다. 주노는 목과 척추가 연결된 부위에 예리한 쇠꼬챙이가 찔려 들어오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그녀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목 뒤를 만졌다. 화상을 입어 부풀어 오른 상처가 손끝에 잡혔다. 그녀는 피 웅덩이 위로 무릎을 꿇었다. 선생은 가만히 서서 그녀를 쳐다보았다.
“넌 지금 죽어가고 있어.”
그녀는 감정이 실려 있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의사들은 지난 석 달 동안 너를 깨우기 위해 온갖 방법을 다 사용했어. 그런데 넌 번번이 그 기회를 날려버렸지.”
“당신이, 내게 무슨 기회를 줬다는 거야?”
주노는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선생은 이맛살을 찌푸렸다.
“비록 혼수상태에 빠졌지만 너의 뇌는 여전히 자신이 게임을 하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지. 몇 번이고 방송을 시작했던 날로 되돌아가면서 말이야. 의사들은 네 뇌가 아직 게임기에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착안해 색다른 발상을 내놓았어.”
선생은 집게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두드렸다.
“네 머릿속에서 진행되고 있는 게임이 완벽히 끝난다면, 넌 스스로 혼수상태에서 깨어날지도 모른다고 말이야.”
의사들은 프로그래머들의 협력을 얻어 VR게임기에 새로운 캐릭터를 집어넣었다. ‘선생님’은 주노의 무의식 속에서 게임을 끝내도록 인도할 안내자 역할이었다. 의사들은 새로운 시도가 성공을 거두기를 기대했지만, 정작 프로그래머들도 새로운 캐릭터가 게임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할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내가 네 고등학교 담임 선생님인 신지수가 된 것도, 자살한 백아영이 게임의 최종 목표가 된 것도 모두 네 무의식 때문이었어. 난 최대한 너를 돕기 위해 애썼지만 결과는……굳이 말 하지 않아도 알겠지?”
“나를 도와주는 캐릭터라고?”
그녀는 선생을 있는 힘껏 노려보았다.
“웃기는 소리 마. 당신이 날 몇 번이나 죽였는지 기억 안 나?”
“나는 항상 너를 올바른 엔딩으로 안내했어. 하지만 넌 마지막 순간마다 잘못된 선택을 했지. 알다시피 플레이어의 최종 선택에 NPC는 관여할 수가 없거든.”
주노는 여전히 선생을 노려보고만 있었다. 선생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도 실패하면 의사들도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을 거야.”
“결단이라니, 무슨, 뜻이야?”
“생명유지 장치를 떼어내는 것.”
선생이 대답했다.
“내일이면 보호자 동의서에 사인을 받게 될 거야.”
그 말을 들은 주노는 퓨즈가 끊긴 것처럼 의식을 잃었다.
주노는 의식과 무의식 사이에서 헤엄치는 물고기가 되었다.
물고기는 지느러미를 이리저리 흔들며 기억을 나누는 경계선 사이를 헤집고 들어갔다.
준오의 아버지는 그녀의 이름을 남자아이처럼 지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그는 딸이 아닌 아들을 원했기 때문이다. 애초에 아버지는 가정을 실수로 갇혀버린 감옥처럼 취급했다. 그는 준오가 초등학생이었을 때 집을 나갔고,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준오는 자신의 이름을 좋아한 적이 없었다.
단 한 번도.
“난 네 이름이 멋있다고 생각해.”
친구 백아영이 말했다. 준오는 그녀와 초등학교 4학년 때 같은 반이 되면서 처음 만났다. 두 사람은 같은 동네에 살았기 때문에 가끔 함께 집에 가곤 했다.
“널 사랑하는 아빠가 지어주신 거잖아. 다른 아이들이 놀린다고 해서 너까지 네 이름을 부끄럽게 생각하면 안 돼.”
아영은 외모는 예쁘장했지만 가정형편은 좋지 못했다. 성격 또한 극도로 내성적이어서 친해지기 전까지는 말 한마디 먼저 안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러면서도 가끔 주제넘은 충고를 하곤 했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인기가 없었다.
골목 모퉁이를 돌아가자마자 아영을 마중하러 나온 그녀의 아버지가 보였다. 아영은 아버지에게 달려가 볼에 뽀뽀를 하고 널찍한 품에 안겼다. 아영 아버지는 준오에게 아영과 친하게 지내줘서 고맙다며 꼬깃꼬깃한 오천 원짜리 지폐를 용돈으로 주었다. 준오는 얌전히 돈을 받고 돌아섰다.
준오는 집 근처 시궁창에서 지폐를 조각조각 찢어서 하수구에 버렸다.
“우리 아빠는 회사 일 때문에 아르헨티나로 가셨어. 가끔씩 선물을 보내시는데 다 내가 싫어하는 것들뿐이야. 얼마 전에도 곰 인형을 선물로 보내더라니까? 난 벌써 5학년인데 말이야.”
“너희 아빠 참 대단하시다. 그런데 아르헨티나는 어디에 있는 나라야?”
“굉장히 더운 나라래.”
준오는 아영에게 대꾸하면서 머릿속에 있는 메모장에 이번 이야기의 허점을 기록했다. 미국이나 일본 같은 나라는 아이들이 잘 알고 있어서 거짓말이 들통 나기 쉽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생소한 아르헨티나를 내세운 것인데, 아영이 이런 질문을 해올 거라고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엄마가 제대로 얘기해주지 않아서 나는 잘 몰라.”
“그렇구나.”
아영은 고개를 끄덕이고 입을 다물었다. 준오는 다음부터 제대로 된 증거물을 들고 와 반 친구들에게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준오는 초등학교 전교 백일장에서 1등상을 받았다. 아영은 장려상을 받았기 때문에 시상대에 오르지 못했다. 준오는 교장선생님에게 직접 상을 받은 뒤 아영을 바라봤다. 그녀는 웃으면서 박수를 치고 있었다.
글짓기는 평소에도 말을 잘 꾸며내는 사람이 유리하게 되어있다.
아영은 지금까지 자신이 하는 거짓말을 한 차례도 눈치 채지 못했다. 아무리 예쁘고 똑똑한 아이라 해도 모자란 점 하나쯤은 있는 것이다.
단상에서 내려온 준오는 아영의 축하인사를 받았다. 준오는 이번에 운이 좋았을 뿐이라며 짐짓 겸손한 척했다.
상장을 들고 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혼자 밥을 차려 먹었다. 일을 하러 나간 외할머니는 밤늦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두 사람은 다른 중학교로 진학했다. 중학생이 되어 영악해진 아이들에게 준오의 어설픈 거짓말은 더 이상 통하지 않았다. 준오는 학교에서 철저히 짓밟히고 고립되면서 교훈을 얻었다.
거짓말을 진실로 만들기 위해서는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마저 잊어버려야 한다는 것을.
준오는 고등학생이 된 아영과 다시 만났다. 그녀는 어린 시절보다 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성장해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낯가림은 더욱 심해진 상태였다. 아영은 오랜만에 만난 준오도 본체만체 했다. 준오는 예상치 못한 그녀의 변화에 몹시 놀랐다.
“백아영 쟤, 중학교 때 잘나가는 남자애들 사이에서 양다리 걸치다가 친구 남친도 빼앗았잖아.”
아영과 같은 중학교를 졸업한 여학생이 말했다.
“그래서 거의 1년 넘게 전교 왕따였어.”
그럼에도 준오는 아영과 이름표를 바꾸었다.
그 때는 중고등학교 여학생 사이에서 서로의 이름표를 바꿔다는 것이 진실한 우정의 증표였다. 준오도 중학교 때 왕따를 당했고, 나이가 들어도 과거의 경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에서 아영과 비슷했다. 그녀에게 있어 소문의 진실 여부는 중요하지 않았다. 아영이 예전처럼 자신의 말을 믿어주는 한.
아영은 여전히 아이들이 자신을 싫어하는 이유를 모르고 있었다. 어른들은 아영을 예쁘고 착한데다 글도 잘 쓰는 문학소녀라고 말했다. 반면 아이들은 그녀가 남자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일부러 연약한 척, 착한 척을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영의 모습은 계산이 아니라 천성이었다. 준오는 아영을 보며 거짓말도 공부나 운동에 대한 재능처럼 타고나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준오의 가슴에는 ‘백아영’이라고 쓰인 이름표가 매달렸다. 그녀는 아영에게 자신의 이름표를 건네주며 말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너는 내 친구야. 그러니까 너도 날 믿어줘야 해. 알았지?”
아영의 눈시울이 순식간에 붉어졌다. 그녀는 울면서 거듭 약속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난다 해도 준오의 말을 믿겠다고 말이다.
어느 날 조례 시간에 신지수 선생님이 말했다.
“아영이와 준오는 날이 갈수록 더 닮아가는구나. 마치 쌍둥이처럼 말이야.”
두 사람을 향해 반 아이들의 시선이 쏠렸다. 준오는 의기양양하게 턱을 치켜들었다.
그녀는 아영을 따라 등허리까지 머리를 길렀고 미백 화장품을 발랐다. 작은 키를 늘일 수는 없었기에 일부러 굽이 높은 신발을 신었다. 살을 빼기 위해 사흘씩 급식을 건너뛰고 매일 줄넘기를 천 개씩 뛰었다. 아영의 말투와 목소리, 심지어는 웃을 때 손을 입으로 가리는 모습까지 따라했다.
그렇지만 준오가 유일하게 아영을 따라잡지 못하는 부분이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두 사람이 글짓기로 순위를 다투었지만 고등학교에서는 상황이 역전되었다. 준오의 글은 더 이상 선생님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아영은 꾸밈없는 단순한 어휘만으로도 사람들에게 열화와 같은 반응을 얻어냈다. 준오는 유일한 재주인 글짓기마저 아영에게 빼앗겼다는 생각에 시달렸다.
준오는 아영에게 글짓기 노하우를 알려달라며 매달렸다. 아영은 딱히 노하우라고 할 만한 게 없다며 난색을 표했지만 준오는 끈질겼다. 아영은 어쩔 수 없이 그녀가 쓴 글에서 부족한 점을 짚어주었다.
“네 글을 보면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아. 현실은 비참한데 억지로 그쪽을 바라보지 않으려고 애쓰는 느낌이랄까. 성냥팔이 소녀가 성냥을 계속 그으며 환상을 찾아도 결국 현실은 추운 겨울밤일 뿐이잖아. 독자들은 그 점을 본능적으로 알아볼 수 있어.”
그 말인즉슨 준오는 글을 통해 꾸준히 진실에서 도피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준오는 온몸의 털이 곤두설 정도로 화가 났지만, 순진한 얼굴로 바라보는 아영에게 차마 퍼부어댈 수는 없었다.
“그래. 네 말이 맞는 것 같아.”
준오는 일단 화를 접어두기로 했다. 아영의 건방진 태도에 분노하는 것보다 당장의 상 점수가 더 중요했다.
다음 교내 대회에서 준오는 아영의 뒤를 이어 2등 상을 받았다. 아영은 준오의 수상을 축하해 주었지만 그녀는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모자랐지만 앞으로 조금만 더 있으면 아영을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다.<☞9회로 계속>
*제목은 연재를 위해 편의상 붙인 것으로 원작품엔 부제가 없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