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의 성공 DNA]-2

대한민국의 30~40대는 1980년대 초반 청계천 세운상가 등을 중심으로 국내에 보급된 '애플컴퓨터'를 기억한다. 지적재산권 개념이 희미했던 당시, '청계천표' 클론(애플 복제품)을 통해 당시 컴퓨터 키드들은 신세계를 만났다.
당시 규모나 기술 모두 영세성을 벗지 못했던 국내 컴퓨터 제조업체들은 홍콩 등 해외에서 입수한 애플컴퓨터 회로도, 미군부대 컴퓨터 수리경험 등을 토대로 '한국형 애플II'를 만들어 냈다. 복제한 회로를 투박한 아이보리색 케이스에 넣어 자신들의 상표를 붙여 판매했다.
해외에서 개발된 수많은 소프트웨어(SW)와 하드웨어의 폭넓은 확장성에 애플의 첫 작품 '애플II' 은 이렇게 한국에 뿌리를 내렸다.
수십 년 전 '복사판 애플II' 만을 접했던 이들에게 애플컴퓨터는 단순한 추억의 컴퓨터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애플II는 수십 년 전의 고물컴퓨터가 아닌, 애플과 스티브 잡스의 철학이 깊숙이 담겨진 애플 신화의 시작이었다.
당시 애플을 제외한 어떤 컴퓨터 회사도 초기부터 제품의 디자인과 사용자 중심의 확장성에 눈을 뜨지 못했다. 설립 초기부터 애플은 불필요한 장식을 모두 없앤 '절제의 미학'에 매달렸다.
애플의 시작은 1976년 4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스티브 잡스는 자신의 침실에서 첫 컴퓨터를 만든 엔지니어 워즈니악을 설득해 애플컴퓨터를 설립하고, 첫 컴퓨터에 '애플 I'이란 이름을 붙였다. 당시 애플은 애플 I의 마더보드만을 판매했고, 사용자는 전원, 케이스, 키보드, 모니터 등을 직접 구해 연결해야 했다.

이후 워즈는 컬러그래픽과 게임 소켓을 내장한 후속작 설계에 나섰고, 1977년 4월 한 입 베어먹은 무지개 빛깔 사과 로고를 단 애플 II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여기부터 잡스의 고집과 철학이 제품에 담기기 시작했다.

하드웨어 디자인에 광적으로 집착했던 잡스는 일반 백색가전과 같은 컴퓨터를 만들고 싶어 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앞으로 10년이 넘는 시간동안에도 회사가 만든 전 제품에 공통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디자인 개발에도 목을 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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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스는 휴랫팩커드를 퇴사한 제리 마녹을 고용해 애플II의 케이스 디자인을 맡겼고, 이는 현대 개인용 컴퓨터의 원형이 됐다. '월드 클래스 디자이너' 발굴을 위해 실시한 애플의 디자인 공모전에서 우승한 하르트무트 에슬링거는 '스노우화이트'라는 디자인 프로젝트를 통해 애플 초기 디자인을 완성했다.
1979년 보다 향상된 기능의 '애플 II 플러스'를 내놓으며 폭발적인 성장을 한 애플은 1983년 개인용 컴퓨터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컴퓨터 중 하나인 '애플 IIe'를 출시한다. 성능이 대폭 향상된 컴퓨터는 1990년대 초반까지 생산된다.

1984년은 애플 역사상 중요한 해다. 현재까지 '아이맥' '맥북' 등으로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맥킨토시'가 처음 등장했다. 텍스트 중심의 인터페이스 대신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GUI)와 마우스가 사용되는 혁명이 일어났다.
손쉽게 들고 다닐 수 있는 슬림형 컴퓨터인 '애플IIc'(Compact)도 그해 모습을 나타냈다. 모든 장치를 도시락 크기의 박스에 집어넣은 컴퓨터로, 성능이나 디자인 측면에서 애플 초창기 모델의 대표적인 수작이다.

1986년에는 애플II 시리즈의 마지막이자 본격적인 맥킨토시 시대의 진입을 예고한 애플IIgs(Grapihic & Sound)가 출시됐다. 그래픽, 사운드 기능이 눈에 띄게 강화된 모델로 당시 미국의 초ㆍ중등학교에 널리 보급됐다.
상당수 애플 초창기 컴퓨터들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살아있다. 상대적으로 단순한 회로 설계 덕분에 일부 부품 교체만으로도 다시 생명을 되찾는다. 인터넷 연결 등 현대 사회에서 필요한 업무를 실행할 수 없지만, 여전히 전 세계 수많은 '애플팬'들이 '애플II 포에버'를 외치는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