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조율 한번 해주세요

[MT시평]조율 한번 해주세요

최희갑 기자
2012.05.29 06:00

점입가경이다. 새삼스러울 일도 아니다.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괴물이 한국의 전설이 된 지는 오래되었다. 그러나 백주 대낮에 국민들 시야에 이들이 들어온 것은 이번이 처음일 것이다. 초등학교 4학년 학생도 아는 선거의 원칙이 철저히 찢겨졌다. 목적마저도 얼마든지 바꾸어간다. 권력 투쟁이 어느새 지고지순한 목적이 되어 있다. 답답한 마음에 많은 현자들이 전설의 유래를 이리 저리 설명하려 한다. 하지만 목소리 큰 놈이 이기는 법이라는 막장의 진리로 설명하면 충분한 듯싶다.

전설의 괴물이 출몰하자 그 파장에 대해 많은 얘기들이 오가고 있다. 대부분이 정치 산술과 남북관계에 그치고 있기에 경제 얘기를 더하고자 한다. 전설의 괴물이 진보와 남북관계를 넘어 경제에 관련되는 것은 경제원론에서 찾아볼 수 있다. 교과서는 자원배분의 방법을 시장과 정부로 양분한다. 그러나 자원배분의 많은 부분에 조직 또는 네트워크가 관련된다. 대표적으로 가족, 기업, 노동조합과 노사관계, 시민사회, 산업 클러스터, 기업 네트워크, 업종별 협회, 비영리기관을 통해 중요한 자원배분이 이루어지고 있다.

노사협상을 통해 임금이 결정되고 비영리기관이 사회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며, 협회나 클러스터를 통해 기업들의 공동행동이 이루어진다. 유럽의 일부 국가에서는 산업별 노조가 노동기준을 설정하고 전국 단위의 사용자 집단과 노조대표가 만나 임금이나 근로조건을 결정한다. 시장도 정부도 빠져있다. 시장 거래에 필요한 정보가 불확실하거나 정부의 관료적 행태가 낳는 문제가 클 때 이러한 조직이나 네트워크가 필요하다. 조직과 네트워크가 자원배분에서 소기의 성과를 얻기 위해서는 '신뢰' 또는 '사회적 자본'이 핵심이다. 믿을 수 없는 조직과 네트워크라면 차라리 시장이나 정부로 돌아가야 한다.

전설의 괴물이 경제문제가 되는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이다. 하나는 전설의 괴물이 한국의 모든 조직 또는 네트워크에 이미 퍼져 있거나 어떤 형태든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합리적 의심 때문이다. 괴물 덕분에 우리 사회의 자생적 조직과 네트워크는 기능 마비의 위기에 처했다. 특히 노조와 시민사회는 아주 난감한 상황에 빠졌다. 문제는 지금 한국은 노조와 시민사회의 필요성이 어느 때보다도 크다는데 있다. 독일과 유사한 산업별 숙련형성 체제로 당장 옮겨가기 어려운 상황에서 근로자들의 숙련형성이나 유연 전문화 생산을 위해서는 노사 간의 협조적 관계가 긴요하다. 환경, 사회복지, 지역발전 등 산적한 한국경제의 선진화 문제를 다원화된 가치체계를 반영하며 갈등 없이 풀어내기 위해서는 정부가 어떤 형태로든 시민사회의 광범위한 네트워크에 의존해야 한다. 그런데 의심스럽다.

둘은 전설의 괴물이 믿고 따르는 원리 때문이다.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그리고 목소리 큰 놈이 이긴다는 원리가 바로 그 것이다. 노동조합, 시민사회, 산업 클러스터, 업종별 협회, 기업단체 등이 이들의 투쟁 원리를 따른다면 어찌될까? 이탈리아 북부의 중소기업 클러스터, 대만의 강한 중소기업, 평생고용을 떠받치는 일본의 기업별 숙련형성체제, 양극화를 완화하는 독일의 업종별 숙련형성체제와 복지 네트워크,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의 보편적 복지, 미국의 벤처 네트워크 그 무엇 하나 한국에는 발붙일 틈이 없을 것이다.

이어지는 대기업들의 분별없는 행태로 이미 크게 상처받았고 저축은행 사태로 정부에 대한 신용은 땅에 떨어졌다. 그나마 어두운 곳에서 벌어지니 애써 외면할 수 있었으나 이제는 백주 대낮에 전설의 괴물까지 출몰 한다. 하늘님의 조율 외에는 답이 없다는 것인가?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