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직 시간제, 대한민국의 실험-3]50~60대 장년층 '새 삶', 라파엘복지재단 사례

하얀색 마티즈가 언덕길을 올라왔다. 운전대에서 바삐 내린 윤옥자씨(54)는 "오늘 일은 오후부터 있다"며 "시간에 맞춰 어르신을 돌보러 가야한다"고 말했다. 윤씨는 경기도 양평에 위치한 재가노인복지시설 라파엘복지재단의 요양보호사다. 하루에 4시간만 일하지만, 기본적 근로조건을 보장받는 '정규직 시간제' 근로자이기도 하다.
"일이 없었을 때는 집에서 늦게까지 잤어요. 강아지 한 마리가 있긴 하지만 무료하죠. 일을 하니 시간에 맞춰 다니잖아요. 내가 안가면 어르신이 굶게 되고, 보호자와 약속을 했으니 책임감도 생기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니까 몸도 건강해져요. 이 나이에도 정규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있는 게 얼마나 좋아요. 아니면 식당일을 해야 하는데, 일반 식당도 45세 이상은 자격이 안돼요."
정규직 시간제 일자리는 육아 부담이 있는 기혼 여성뿐만 아니라 장년층에게도 효율적인 일자리로 자리잡고 있다. 퇴직 전후를 맞은 50~60대들에게 안정적인 제2의 인생설계의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다. 실제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본격화하면서 지난 2002년 59.5%였던 장년층(55~64세) 고용률은 지난해 높아졌다. 하지만 이들이 하는 일은 편의점, 주유소, 식당일 등 단순 아르바이트에 그쳐 고용 불안정성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돼왔다.
윤씨는 보통 오전 10시에 재가 방문으로 어르신을 돌보고, 2시에 퇴근한다. 목욕, 방 정리, 점심식사 준비가 주된 일이다. "잘 계셨냐 여쭤보고 주물러드리고, 이부자리 손봐드리고 정리해요. 어제는 어르신이 편찮으셔서 모시고 나와 병원에 갔어요. 혈관주사 맞춰드렸죠. 할머니가 좋아하시죠. 말 나눌 사람이 생겼다며 반가워하세요."
윤씨가 취직한 것은 지난해 6월. 시간제이지만 4대보험은 물론이고 퇴직금도 나온다. 라파엘복지재단은 요양시설의 특성상 장시간 근로와 업무피로도가 높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용노동부의 컨설팅을 받고 정규직 시간제 일자리로 요양보호사 5명 등 7명을 고용했다. 8월에는 수를 15명으로 늘렸다. 윤씨는 "재단에서 운영하는 기관에서 요양보호사자격증을 따놓아 연락을 받았다"며 "일이 생활에 꼭 맞아 좋다"고 만족해했다.

정규직 시간제 일자리는 특히 체력이 부족하고 여가시간을 즐기고자하는 장년층에게 알맞다. "그냥 집에 있기는 싫죠. 자식들도 다 나이 먹고 직장에 나가니까요. 그렇다고 아직 할머니는 아니잖아요. 자녀들에게 용돈 받으면서 활동하기엔 아직 이른데, 시간제로 일하니까 틈새시간을 활용할 수 있고 손 안 벌려도 되는 게 가장 좋아요. 윤씨는 주 20시간을 일하고 월급으로 70여만원을 받는다. 가정 생활비로는 부족하지만, 남편과 아들이 따로 벌기 때문에 개인 용돈으로는 충분하다는 설명이다.
어르신을 돌봐드린 이후에는 양평여성회관에서 교육하는 오카리나 연주를 배우러 간다. 저녁때는 운동 삼아 발리댄스도 배운다. "직접 번 돈으로 취미생활도 할 수 있으니 좋아요. 남편이 벌어온 돈으로는 옷 사입고 악기 사달라고 하기가 힘들죠. 일할 수 있을 때까지 하고 싶어요. 주위 친구들도 저를 보고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준비하고 있어요."
독자들의 PICK!
라파엘복지재단은 피크타임에 맞춰 시간제근로자의 근로시간대를 나눴다. 초기에는 시간제 근로자들이 일찍 퇴근하는데 대해 기존 직원들이 불만을 느끼기도 했지만, 목욕, 식사 등 업무 분담을 분명히 하면서 문제가 빠르게 해결됐다는 설명이다.
이규화 라파엘복지재단 대표는 "이전에는 과다한 업무를 이유로 이직한 직원이 더러 있었으나, 시간제 일자리를 도입한 후 지금까지 기존 직원들의 이직률이 0%다"며 "요양보호사가 장기근속을 하면 입소자 입장에서 요양의 질도 높아진다. 시간제근로자가 원할 경우 통상 근로자로 전환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 고위 관계자는 "우리나라의 유연근로 활용 비율은 선진국의 10분의 1 이하 수준"이라고 아쉬워했다. 이 관계자는 "퇴직기 장년층에게는 양질의 일자리로서의 시간제 일자리 수요가 있다. 장년층 인구의 지속적인 증가와 고령화 추세를 반영해 퇴직 후에도 일을 통한 제2의 인생 설계가 가능하도록 지원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