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AT 체험형 기술교육프로그램… 30개 중·고교서 '융합·창의인재' 육성

'혁신의 요람'으로 불리는 미국 실리콘밸리. 세계 최초이자 최대의 첨단기술집적단지인 실리콘밸리의 발상지는 각종 연장이 늘어져 있던 '차고(공작실)'다. 빌 휼렛과 데이비드 패커드는 1983년 팔로알토의 한 허름한 차고에서 휼렛팩커트(HP)를 세웠다. HP의 창업은 이른바 '벤처혁명'의 시작이었다.
'혁신의 아이콘' 고(古) 스티브 잡스가 애플을 세운 곳 역시 아버지 폴 잡스의 차고다. 중고차 수리공인 아버지의 차고에서 어린 시절부터 무엇인가를 직접 조립하거나 만들면서 기술에 대한 영감과 창의성을 키운 잡스는 HP 출신 스티브 워즈니악과 함께 그곳에서 애플의 신화를 시작했다.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인 '애플I'을 내놓은 것도 바로 그 차고였다.
제프 베조스는 동업자 2명과 컴퓨터 1대로 자신의 차고에서 아마존을 설립했고, 스티브 천은 동업자인 채드 헐리의 차고에서 유튜브의 첫 발을 띄었다.
모텔에서 창업한 '컴퓨터 황제' 빌 게이츠의 트라우마는 차고였다. 실제 그는 1998년 기자회견에서 "누군가 지금 차고에서 새로운 무언가를 개발하고 있지 않을까 두렵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해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차고에서 구글을 탄생시켰다.
스티브 잡스를 낳고 빌 게이츠를 두려움에 떨게 했던 차고. 하지만 정보기술(IT) 강국을 자처하는 한국에는 정작 그 공간이 없다. 아버지의 차고를 대신해 학생들에게 기술에 대한 영감과 창의성을 주던 학교 기술실마저 입시에 밀려 빠르게 모습을 감춰가고 있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에게도 실리콘 밸리의 '차고'를 만들어 주는 실험이 본격화되고 있다.

서울 마포구의 마포중학교. 공구가 여기저기 널려 있는 공작실에서 20여명의 학생들이 조별로 열띤 토론을 이어가고 있었다. 주어진 과제는 나만의 3차원(3D) 입체 이미지 만들기.
사전에 3D 이미지 원리에 대한 강의와 실제 제품 견학을 진행했다. 이어 조별로 토론을 통해 이미지를 정하고 디자인을 진행했다. 재료도 압축 플라스틱 등 실제 제품 등에 사용되는 것으로 정하고 각종 공구를 사용해 제작했다. 과제물의 완성도는 기존 상용품에 비해 투박했지만 아이디어와 디자인은 놀라웠다. 중학생의 과제물로 보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학생들이 이런 과제를 만들어낸 공간은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이 한국형 '기술의 대가(大家)를 키우기 위해 고안한 방과 후 체험형 기술교육프로그램 '기술공작실'이다.
학생들에게 기술·창의교육의 공간을 제공하는 기술공작실은 기술체험의 기회가 부족한 중·고등학생에게 기술실습 및 실험기회를 제공해 기술에 대한 흥미 및 관심도를 제고하기 위해 고안됐다. 기술실 부족과 비전공 교사 배치에 따른 현재의 이론중심의 교육으로는 창의적 인재를 육성하지 못한다는 위기감과 반성에서 비롯된 사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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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공간이 아닌, 학교에 시설과 도구를 마련해 기술에 대한 학생들의 창의력을 극대화 시킨다는 것이 특징이다. 무엇보다 학생들이 언제라도 찾을 수 있는 생활공간에 '직접체험(Hands-on)'할 수 있는 장소를 마련했다는 데에 큰 의미가 있다.
특히 과학과 기술, 공학, 수학, 미술 등 다양한 교과목을 융합한 통합 교육 시스템(STEM)으로 운영해 '융합형' 인재 육성에 공을 들이고 있다. 올해는 4억5000만원의 예산을 지원해 30개 중·고교에 기술공작실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정재훈 KIAT 원장은 "어릴 때부터 직접 물건을 만들고 부숴보기도 해야 기술에 재미가 붙고 창의적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다"며 "세상을 바꾸는 기술이 한국에서 나오지 않는 것은 이론 중심의 기술 교육으로 어릴 때 기술에 대한 흥미를 잃어 창의성이 죽어버리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직접 물건을 만들고 부숴보는 체험을 통해 학생들에게 '기술은 재밌다'는 인식이 확산되면 창의적 산업기술 문화는 자연스럽게 정착된다는 것이 정 원장의 설명이다.

69회에 달하는 기술공작실 프로그램을 내실있게 진행한 마포중은 15일 서울 광진구 능동로에 위치한 세종대에서 열린 기술공작실 우수 학교 포상에서 대상(산업통상자원부장관상)을 받았다.
마포중 기술공작실 총괄책임자인 권석영 기술교사는 "다양한 체험 활동을 통해 참여 학생들이 딱딱하게만 느꼈던 기술이 실제는 우리 주위에 가까이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됐고 또 흥미를 느끼고 있다"며 "90% 이상의 학생들은 내년에도 이런 수업이 있다면 다시 참여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