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응답하라 1988' 택이가 파도를 가르고 저 머나먼 제주 섬으로 건너가 더 깊고 단단히 뿌리내린 모습이었다. 10년의 세월과 함께 성숙해진 건 외관뿐이 아니었다. 내면 연기는 그보다 더 무르익어 배우 박보검의 진면목을 보게 했다. 양관식이라는 인물 그 자체였던 '폭싹 속았수다'의 박보검은 인생 캐릭터를 새로 썼다.
박보검은 넷플릭스 시리즈 '폭싹 속았수다'에서 청년 관식을 연기했다. '폭싹 속았수다'는 1960년대 제주를 배경으로, 청춘 남녀 삶의 희로애락을 섬세하게 풀어낸 작품이다. 박보검은 과묵하지만 묵묵하게 사랑을 실천하는 관식을 통해 다시 한번 배우로서의 깊이를 입증해 냈다. 특히 박보검은 작품에 관해 이야기하는 내내 말 끝마다 "감사하다"라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그만큼 '폭싹 속았수다'는 그에게 의미가 깊은 작품이었다.
"대본을 읽었을 때, 살아보지 않은 시대였지만 어머니, 아버지 세대의 삶이 떠올랐어요. 관식을 통해 그런 시절을 연기할 수 있어서 정말 기뻤습니다." 박보검의 첫마디는 작품에 대한 깊은 애정으로 시작했다. 그는 관식을 '사랑 농사꾼'이라고 표현했다. 말보다 행동으로 마음을 표현하는 관식은 꽃방석을 챙겨주고, 조기를 손에 쥐여주며, 묵묵히 애순(아이유)을 돕는다. 겉보기엔 수동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그 속에는 진심과 행동에서 능동성이 담겨 있다는 게 그의 해석이다.
"작품 속 약자를 보호하는 어른들이 멋있었어요. '이토록 따뜻한 사람들과 가족이 주변에 있을까?'라는 질문을 되뇌어 보게 됐죠. 그래서 대본을 읽자마자 꼭 출연하고 싶었죠. 임상춘 작가님의 이야기에 매료됐고, 앞으로 또 어떤 이야기를 쓰실지 기대가 돼요. 작가님과 또 한번 작업하고 싶어요. 작가님은 '씨앗 저장소'이자 '영혼을 위한 사골국' 같아요(웃음)."

과묵한 성격의 관식을 연기하기 위해 박보검은 목소리 톤, 몸짓, 체격까지 신경 써 준비했다. 운동선수 출신이라는 설정에 맞춰 증량도 감행했다.
"관식이라는 인물은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사람이에요. 그래서 애순이에게도 그렇게 사랑을 표현할 수 있었던 거죠. 그런 부분을 최대한 담으려고 했어요. 또 누군가는 관식을 수동적인 인물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말없이 자신의 감정을 행동으로 다 보여주는 게 오히려 능동적이라고 생각했거든요. 멋있게 느껴졌어요. 말이 많지 않은 인물이라 말보다 눈빛이나 몸짓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걸 표현하는 게 이번 연기의 가장 큰 숙제였죠. 캐릭터를 위해 몸무게도 일부러 늘렸어요."
박보검은 10대에서 20대, 점점 어른이 되어가는 관식을 연기하며 가정을 책임지는 마음가짐 같은 내면의 변화를 함께 체험했다. 관식은 어린 나이에 아버지가 됐고, 말보다 행동으로 자식을 돌보는 인물이다. 그는 촬영 현장에서 실제 아역 배우들의 부모를 집요하게 관찰하며 캐릭터에 더 몰입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독자들의 PICK!
"부모 연기는 저도 처음이었어요. 쉽지는 않았지만, 아기를 워낙 좋아하고 애순 역의 아이유가 제 역할을 잘 해준 덕분에 일찍 철든 가장의 느낌을 잘 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특히 촬영장에 온 아기 배우들의 부모님을 보면서 많이 느꼈어요. 아이들을 챙기고 지켜보는 그 따뜻한 시선이 인상 깊었어요. 저도 그렇게 아기 배우들을 바라보려고 노력했고, 어느 순간 아역들이 저를 아빠처럼 바라봐주는 눈빛을 느꼈어요. 그 덕분에 연기가 더 자연스러워졌죠."

애순 역의 아이유와의 호흡도 이야기했다. 박보검은 아이유를 '조약돌' 같다고 표현했다. 그는 "작고 귀하지만 반짝이는 존재. 관식에게 애순은 그런 사람이었어요. 아이유가 애순이라는 인물을 정말 잘 표현해 줘서 연기하기도 편했고, 함께할 수 있어서 감사했어요"라고 말했다.
애순에게 외면당하고 제주를 떠나려 했지만, 저 멀리 애순의 부름에 다시 제주로 헤엄쳐오는 수영신에서는 대역 없이 직접 바다에 뛰어들었다. 물살이 거셌지만, 해녀 이모들의 응원 소리에 힘입어 완주했다.
"현장에서 해녀 이모님들이 '보검아 화이팅!'이라고 응원해 주셨어요. 그 응원이 없었으면 그 장면을 그렇게까지 해낼 수 있었을지 모르겠어요. 직접 뛰어들고 나서 화면을 보니 정말 잘한 결정이었단 생각이 들었어요."
이번 작품은 그에게 봄 같은 존재였다. 군 제대 후 처음 선보이는 드라마였고, 작품을 통해 다시 한번 연기의 기쁨을 되새길 수 있었다. "일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환경이에요. 그 안에서 저의 에너지를 모두 쏟아내고 싶었어요."

박보검이 연기한 관식은 소년에서 어른으로, 연인에서 남편으로, 그리고 자식에서 부모로 변화해 가는 인물이다. 이에 따라 2막(8부) 이후 분량이 줄어 시청자의 아쉬움을 샀지만, 박보검은 그 흐름을 진심으로 꿰뚫었다. 그리고 아역과 장년 관식에게 지금의 인기 공로를 돌렸다.
"분량이 줄어들어 아쉽다는 소리를 많이 해주시는데 저도 아쉬워요(웃음). 그런데 저는 작품에 나오는 모든 인물이 제 위치에서 가장 적소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청년 관식을 연기한 저는 어린 관식과 장년 관식을 연기한 배우님들 덕분에 더 큰 그림을 완성할 수 있었어요. 아역부터 청년, 장년까지 관식은 한 사람이에요. 모두가 주연이었던 작품이죠."
박보검은 빛나는 외모만큼이나 순수하고 너른 내면을 더 어여삐 여길 수밖에 없는 배우다. 박보검은 이번 작품으로 그 매력을 십분 발휘하며 배우로서 더 높은 지점으로 도약했다. 악인 연기에 대해서도 열린 마음을 내비쳤다.
"누군가에게 추천할 수 있는 작품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어요. 또 추천할 수 있더라도 작품 안에 제가 여러 면이 공감되고 표현할 수 있는 능력치가 있을 때 해야 한다고 봐요. 확실히 그 능력치가 입대 전보다는 넓어졌어요. 악역은 조금 더 무르익었을 때 하고 싶어요. 그런데 그 무르익음이 멀게 느껴지지는 않아요. 그래서 앞으로 저의 선택이 기대되고 기다려져요. 어떤 악역이 가능할지, 이야기가 재밌고 추천하고 싶은 소재라면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크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