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면보단 외면이 더 보여지는 요즘 세상이다. SNS가 일상인 시대, 온라인에 떠다니는 모습이 나를 표현하는 명함이 됐다. 허구가 많아지고 복제가 쉬워질수록, 정보는 많아지지만 진실을 찾기는 더 어려운 법이다. 사람과 마주해도 상대가 내 진실된 모습을 바라보는지, 아니면 허상만 좇고 있는지를 가늠하기 힘들다. 하여 요즘은 만남은 쉬워도, 사랑은 어려운 시대가 됐다.
존 F. 케네디 주니어는 이런 삶을 일찌감치 시작했다. 그는 1990년대 미국, 소셜 미디어도 없었을 시절, 시대를 앞서간 당대 최고의 슈퍼 인플루언서였다. 탄생부터 역사적이자 가십이었다. 미국이 가장 사랑했다는 제35대 미국 대통령 존 F. 케네디와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의 아들로 태어났다.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한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작은 손으로 거수경례를 하던 세 살배기 소년의 모습은 미국 시민의 가슴에 인으로 박혔다.
성인이 된 후에는 조각 같은 외모로 1988년 피플지가 선정한 '가장 섹시한 남성'에 이름을 올렸고, 마돈나, 대릴 한나, 사라 제시카 파커 등 최고의 스타들과 염문을 뿌렸다. 세상은 그를 '미국의 왕세자'라 부르며 완벽한 환상을 투영했다. 하지만 그 무거운 왕관과 세상의 눈부신 스포트라이트 속에서, '인간 존'의 진짜 모습을 보는 이는 드물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앞에, 캐롤린 비셋이 나타났다.

사랑은 자신과 비슷한 동류를 좇기도, 혹은 본인과 전혀 다른 사람에게서 자신의 부족함을 채우기도 한다. 존에게 캐롤린은 후자였다. 캘빈 클라인의 홍보 담당자였던 캐롤린 비셋은 자신만의 확고한 세계를 가진 여성이었다. 캐롤린은 존의 거대한 배경 앞에서 결코 주눅 들지 않았다. 모두가 존의 허상을 칭송하며 가십거리로 소비할 때, 캐롤린은 존의 진실을 보고 평범한 한 남자로 사랑했다.
디즈니 에서 선보이는 시리즈 ‘러브스토리: JFK 주니어 & 캐롤린 비셋’(이하 러브스토리)은 이 세기의 커플이 남긴 찬란하고도 위태로웠던 발자취를 따라간다. 이미 많은 사람이 알고 있을 두 사람의 결말이지만, 드라마의 몰입도가 상당하다. 세기의 커플이었던 두 사람의 피상적인 모습을 벗어나 두 사람이 나누었던 진실된 교감을 섬세하게 그려내기 때문이다. 굳이 주인공이 존과 캐롤린이 아닌 평범한 남녀였더라도 매우 특별했을 사랑이 녹아있다.
그리고 두 사람의 사랑을 중심으로 또 하나의 진실 찾기가 펼쳐진다. 바로 케네디 일가의 이야기다. 작품은 그들의 이야기를 에피소드가 아닌 영화적인 방법으로 살며시 풀어낸다. 덕분에 자극적이다 못해 원색적으로 수많은 호사가의 입방아에 오르내렸던, 이제와 아직까지 ‘케네디가의 저주’라 불리는 그들의 삶은 ‘러브 스토리’를 통해 남녀의 사랑을 넘어 가족의 사랑 이야기로 정화된다.
첫 시작부터 그들에게 다가가는 보법이 다르다. 현실에 있던 루머들을 자연스럽게 해명한다. 캐롤린이 패디큐어를 받다 지각했기에 비행기를 탔고, 이에 비극적인 사고가 일어났다는 루머는 서로의 배려이자 사랑으로 치환된다. 존의 여성편력은 물론 재혼으로 수많은 소문을 낳았던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의 삶에도 새로운 시선을 부여한다. 파파라치 등 렌즈 넘어 허상으로 살아야 했던 케네디 일가는 이제서야 다시 카메라를 통해 그들의 속사정을 대중에게 비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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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적인 연출도 훌륭하다. 특히 에피소드3에서 나오미 왓츠가 열연하는 댄스신은 울림이 상당하다. 존 F. 케네디가 생전에 즐겨 들었다는 뮤지컬 ‘카멜롯’에서 리처드 버턴이 부른 마지막 사운드트랙 ‘Finale Ultimo’가 흘러나온다. ‘카멜롯 시대’라고 불리었던 존 F. 케네디의 백악관 시절을 추억하고 추모하는 ‘러브스토리’의 방식이다. 이외에도 수많은 미장센과 메타포들이 세월의 흐름 속에 변해가는 주인공들의 심경과 현실들을 그려내고 있다. 미국의 현대사를 공부한다면 이 작품을 더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이유다.
배우들의 싱크로율과 열연 역시 대단하다. 시대의 섹시가이로 불렸던 존 F. 케네디 주니어를 신예 폴 앤서니 켈리가 완벽하게 표현했다. 숨만 쉬어도 뿜어져 나오는 매력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나오미 왓츠와 그레이스 거머가 JFK 일가의 이야기를 완성한다. 미국의 미망인과, 미국의 왕세자, 그리고 유일하게 생존해 있는 캐롤라인 케네디가 적절하게 무게중심을 맞춘다.
그리고 사라 피전이다. 그가 있기에 ‘러브스토리’는 그간 수없이 그려졌던 ‘JFK 시리즈’와 다른 길을 걷는다. 만약 사라 피전이 힘을 잃었다면, 캐롤린은 현대 미국사가 그러하듯 ‘존 F. 케네디 주니어의 아내’로만 인식됐을 것이다. 극 중 캐롤린이 가장 걱정했던 지점이다. 명성과 권력 앞에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고뇌, 그럼에도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존을 향한 연심 등 캐롤린의 복합적인 내면이 사라 피전을 통해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간 우리는 로열패밀리나 재벌이 등장할 때 '신데렐라 스토리'로 귀결되는 수많은 로맨스 작품에 충분히 지쳐왔다. 그래서 ‘러브스토리’의 가치는 선명하게 와닿는다. 실화가 바탕이기에 더 의미 깊다. 현실 세계에 비출 때 신데렐라는 존재하지 않음을, 그저 판타지라는 걸 가늠케 한다. 그럼에도 그 안에 품고 있는 사랑은 동화보다 진실되고 훨씬 아름답게 빛난다.
결국 ‘러브스토리’는 새드엔딩의 길을 걸어갈 터다. 역사 속의 두 사람의 로맨스는 1999년 7월, 마서스비니어드 앞바다로 추락한 경비행기 사고로 비극적인 막을 내렸다. 그럼에도 마냥 슬플 일은 아니다. 평생 ‘진짜’를 갈망하며 살아온 두 사람과 한 가족은 이제서야 자신들의 가장 깊은 내면과 진실된 감정을 비칠 수 있게 됐다. 물론 극적 재미를 위해 허구가 가미됐을 수 있다. 허나 이 작품의 본질은 흔들리지 않는다. 온기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추모이자 애가, ‘러브 스토리’다.
한편, 디즈니 시리즈 ‘러브스토리’는 지난 13일 3개의 에피소드를 공개됐으며, 이후 매주 한 편씩 총 9개의 에피소드를 공개할 예정이다.
권구현(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