핏빛 야망 장승조 VS 환장의 불효 전혜진·진구
주말 안방극장 점령한 독한 빌런들

대중문화에는 늘 비교가 따라붙는다. 같은 시간대에 공개되는 작품, 비슷한 위치에 놓인 배우와 가수, 한 장르 안에서 보여주는 다른 선택, 한 인물이 만들어낸 색다른 얼굴까지. 우리는 이미 일상적으로 'VS'를 떠올리며 보고 듣고 말한다. 이 코너는 이런 비교를 출발점 삼아 '차이'가 어떤 재미와 의미를 낳는지를 살핀다. 같은 판에 놓였지만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는 대상들을 나란히 놓고 각각의 방식과 매력을 면밀히 짚는다. <편집자 주>
제법 기세가 오른 더위에 숨이 턱턱 막히는 계절, 안방극장 역시 후텁지근한 날씨 못지않게 독한 악인들의 무대로 달아올랐다.
SBS 금토드라마 '멋진 신세계'의 장승조와 JTBC 토일드라마 '신입사원 강회장'의 전혜진·진구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장승조는 전생과 현생을 홀로 짊어지며 두 명의 악인을 소화하고 있고, 전혜진과 진구는 서로를 짓밟으며 환장의 불효 경쟁을 벌이는 중이다. 두 드라마 모두 높은 시청률과 화제성을 자랑하며 주말 안방극장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시공간을 가로지르며 극강의 서스펜스를 뿜어내는 장승조의 '1인 2역' 핏빛 질주, 아버지의 명줄을 놓고 아귀다툼을 벌이는 전혜진과 진구의 징글징글한 쌍둥이 빌런 콤비. 서로 다른 방식으로 시청자의 숨통을 조이고 혈압을 높이는 두 작품 속 악인들을 살펴본다.

# '멋진 신세계' 장승조, 두 얼굴로 완성한 절대 악
'멋진 신세계' 속 장승조의 악은 그야말로 치명적인 독을 숨긴 파인다이닝 같다. 고급스럽게 세팅돼 있지만 입에 넣는 순간 치명적인 독이 퍼지는 맹독성 요리다.
현대의 최문도는 철저하게 자신을 숨긴 채 삼촌 차달수(윤주상) 회장 앞에서 비굴할 정도로 고개를 숙이지만, 고개를 돌리는 순간 먹잇감을 노리는 독사의 눈빛을 번뜩인다. 이방원을 롤모델 삼아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왕자의 난을 준비하는 지략가의 면모는 혀를 내두르게 한다.
반면 전생의 안종은 이미 권력의 정점에 선 절대군주다. 형제들의 피를 묻히고 왕좌에 오른 그는 타인을 철저히 자신의 전리품이거나 사냥개 취급한다.
장승조의 무기는 단연 눈빛이다. 차분한 목소리와 세련된 귀공자 마스크를 뚫고 나오는 섬뜩한 이중성은 압도적인 존재감의 근원이다. 소리를 지르거나 물건을 집어 던지지 않아도 빙긋 웃는 얼굴 뒤에 도사린 살기가 화면 너머까지 전해진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무자비한 폭군과 치밀한 야심가를 오가는 그의 1인 2역 차력쇼는 로맨틱 코미디의 온기를 때때로 서늘한 스릴러로 탈바꿈시킨다. 그야말로 동정할 여지 없는 순도 100% 매운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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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입사원 강회장' 전혜진X진구, 불효로 뭉친 환장의 쌍둥이
반면 '신입사원 강회장'의 강재경(전혜진)과 강재성(진구) 남매가 보여주는 악행은 불효자들의 협주곡이다. 이들은 장승조처럼 세상을 쥐락펴락하는 거대한 지략가는 아니지만 그래서 더 시청자들의 혈압을 상승시킨다.
전혜진이 빚어낸 강재경은 서늘한 일상의 정수를 보여준다. 병상에 누운 아버지의 얼굴을 베개로 짓누르면서도 자책 하나 느끼지 않는다. 남편에게 "아버지가 천천히 깨어나시도록 노력해"라고 당부하고, 새어머니를 "집사"라고 부르며 괄시하는 그의 악독함은 고요해서 소름이 돋는다. 목표를 향해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은밀하게 돌진하는 그의 무자비함은 섬뜩함을 안긴다.
여기에 50초 먼저 태어난 쌍둥이 오빠 강재성(진구)이 끼어들며 악행의 양상은 더 넓어진다. 동생에 대한 지독한 자격지심과 열패감에 사로잡힌 그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비겁한 수를 쓰지만 번번이 헛발질을 날린다. 비자금 3,000억 원을 날려 먹고 이를 만회하려다 더 큰 사고를 치는 그의 모습은 거창한 야심에 비해 턱없이 작고 허술한 그릇을 보여준다. 진구는 끝없는 탐욕에 허당기를 절묘하게 배합해 분노를 유발하면서도 어딘가 짠하고 안쓰러운 블랙 코미디적 빌런을 탄생시켰다.

# 마라의 매운 맛 VS 혈압 오르는 단짠 콤보
누가 더 나쁜가를 묻는다면 기준에 따라 갈린다.
공포심과 서스펜스의 밀도를 따진다면 장승조다. 타인을 철저히 장기말로 취급하며 시공간을 넘어 피바람을 일으키는 그의 악행은 그 스케일과 깊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시청자들로 하여금 절대 마주치고 싶지 않은 압도적인 절대 악의 정석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의 밑바닥을 긁어내는 불쾌함과 피로도를 묻는다면 전혜진과 진구 남매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피를 나눈 가족을 향해 일말의 가책 없이 이빨을 드러내고, 자신의 무능함을 가리기 위해 주변을 파멸로 몰고 가는 이들의 이기심은 뉴스를 틀면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우리 사회의 민낯과 다소 닮아있다. 전혜진의 뼈 시린 독기와 진구의 환장할 헛발질이 만들어내는 악행 화음은 목덜미가 뻐근해지는 뒷맛을 남긴다.
장승조가 극의 장르를 바꾸는 장르 체인저로서 서스펜스를 쥐고 흔든다면, 전혜진과 진구는 치열한 밥그릇 싸움으로 징글징글한 인간 군상의 파닥거림을 보여준다. 결국 이 매력적인 빌런들의 활약 덕분에 시청자들은 매 주말 기꺼이 핏대를 세우고 TV 앞으로 모여들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