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시청률에 안보는거지 제자리걸음이라는 시선은 오해
말괄량이 소녀서 인생의 쓴맛 아는 어른으로 성장 중
'그대에게 드림'서 한층 성숙된 연기력으로 호평세례

세상 모두가 성장통을 겪지는 않는다. 가볍게 지나가는 사람도 있지만, 어떤 사람은 심하게 앓는다. 배우 이혜리는 후자에 가깝다.
이혜리는 ‘응답하라 1988’(2016)이라는 출세작으로 배우로서 입지가 수직 상승한 이래 내내 자신과의 싸움 중이다. 매번 ‘응답하라 1988’에서의 덕선을 넘어서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혜리는 한 발짝씩 나아가고 있지만, 대중은 쉽게 인정해 주지 않는다. 그래서 성장하고 있지만 아픔이 훨씬 크게 느껴지는 것이다.
묘하게도 그 시간들이 현재 이혜리가 나서고 있는 ENA 월화극 ‘그대에게 드림’(극본 정은비, 연출 유선동) 속 주이재의 시간과 너무나도 겹쳐 보인다. 10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제자리걸음밖에 하지 못했다는 후회나 두려움이 있을지라도 다시 용기 내어 도전하고 도약하려는 그 모든 여정이 꼭 닮은 것이다.
‘그대에게 드림’에서 주이재는 한때 영화감독을 꿈꾸던 소녀였다. 고등학생 주이재는 꿈이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했다. 이혜리는 그 시절의 주이재를 싱그럽게 살려냈다. 흥겨운 사투리 연기와 특유의 생기 넘치는 표정, 꿈을 이야기할 때 반짝이는 눈빛은 꿈꾸며 사는 사람의 행복을 생생하게 전하기에 충분했다.

남자주인공 우수빈(황인엽)은 그런 주이재를 보며 덩달아 꿈꾸게 됐고, 서로에게 첫사랑이 되었다. 그러나 시련은 모든 걸 바꿔놓았다. 사랑도 꿈도 순식간에 물거품이 되고, 10년이 넘는 시간을 흘려보내게 했다.
그런데 영화감독은커녕 영화와는 전혀 상관없는 프리랜서 리포터로 하루하루를 버티는 주이재 앞에 첫사랑 우수빈은 세계적인 영화감독이 되어 돌아왔다. 초라한 현실을 가장 보여주고 싶지 않은 사람 앞에서 확인하게 된 주이재는 부끄러움과 짜증, 불편함 등 온갖 복잡한 감정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다.
우수빈이 같이 영화를 만들자고 제안했을 때는 몇 번을 거절하다가, 결국에는 수락했다. 다시 새롭게 꿈에 도전하기로 용기를 낸 것인데, 함께 작업하는 과정 중에도 여러 마음이 수없이 교차한다.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는 설렘과 그보다 더 큰 열등감, 자존심 때문에 밀어내면서도 흔들리는 마음을 섬세하게 오간다.

이혜리는 그 감정들을 때로는 극적으로, 때로는 현실적으로 보여주며 시청자들의 마음을 흔든다. 사랑했던 사람 앞에서 작아지는 사람의 심리를 흡인력 있게 표현하며 공감을 자극한다. 사랑스러우면서도 짠하기 그지없는 이재를 응원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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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6회 엔딩은 짠하고 가여운 주이재를 더욱 가슴 절절히 느끼게 했다. 주이재가 큰 수술을 받은 다리로도 잘 달릴 수 있다는 걸 증명하려 힘차게 운동장을 질주하는 모습은 우수빈에게 기대지 않겠다는 의지였다. 우수빈은 그런 주이재의 마음을 존중한다며 한 발 물러서는데, 그런 우수빈을 등지고 돌아서는 주이재의 얼굴은 일그러지고 말았다.
주이재의 표정을 읽은 시청자들의 마음은 미어질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로맨스의 관점에서는 더없이 아픈 장면이었다. 이혜리는 이렇듯 복잡하게 뒤엉킨 주이재의 감정선을 호소력 있게 전달하며 팬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이제 이혜리의 연기는 단순히 밝고 청량한 매력에만 기대지 않는다. 자존심과 열등감, 설렘과 불안, 홀로 서고 싶은 마음과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얽히고설킨 인물의 내면을 한층 성숙한 연기로 표현하고 있다. 이혜리의 연기가 분명히 여물고 있다는 증거다.
다만 시청률이 따라주지 않아서 이혜리의 연기마저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는 분위기다. 시청률이 높지 않다고 해서 이혜리의 연기까지 제자리걸음인 것은 아닌데 말이다. 극중 주이재가 아무리 애쓰고 성장해도 주변에서는 쉽게 알아주지 않는 것처럼, 이 작품을 포함해 이혜리가 그동안 얼마나 노력했고 얼마나 달라졌는지 충분히 발견되지 않은 듯하다. 그래서 아프고 힘든 시간이다.
그럼에도 이 성장통 같은 시간은 언젠가 이혜리가 배우로서 한 뼘 더 깊어진 순간으로 기억될 게 분명하다. ‘그대에게 드림’은 훗날 증명될 그 순간의 기록이 되고 있다.
조성경(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