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턴'서 경력 37년 차 실버 인턴 기호 役
"현장서 '어쩔티비'부터 '느좋'까지 유행어 배워"

로버트 드 니로가 앉았던 인턴 자리에 이번에는 최민식이 출근한다. 영화 '인턴'에서 경력 37년 차 실버 인턴 기호로 변신해 극장가로 돌아온다. 한소희가 이끄는 패션 회사의 막내가 된 그는 현장에서도 후배들과 어울리며 '어쩔티비'와 '느좋'을 배웠다. 익숙한 선배 자리에서 내려와 새로운 동료들을 만나는 일. 최민식은 이번 출근이 꽤 즐거웠던 모양이다.
"요즘 친구들은 한마디로 쫄지 않아요. 저는 신인 때 '레디, 액션' 하면 발발 떨었는데 '인턴'을 같이 찍은 배우들은 '한 번 더 할게요' 하고 자기 목소리를 내요. 저 때는 감독님한테 그런 말을 하면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졌죠. 요즘 젊은 배우들은 자기표현에 주저함이 없고 용감해요. 그래서 제가 현장을 리드한 게 아니라 그 친구들의 의연한 태도가 저한테 전염됐죠. 같이 놀았어요."
오는 16일 개봉하는 '인턴'은 패션 스타트업 우투투를 이끄는 젊은 CEO 선우(한소희)의 회사에 경력 37년 차 실버 인턴 기호(최민식)가 입사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낸시 마이어스 감독의 2015년작 'The Intern'(디 인턴)을 '82년생 김지영', '만약에 우리'의 김도영 감독이 한국 정서로 리메이크했다.
최민식이 맡은 기호는 출판사에서 은퇴한 뒤 다시 회사 생활을 시작하는 인물이다. 나이도 경험도 많은 자신을 불편해하는 젊은 대표와 낯선 방식으로 일하는 동료들 사이에서 조금씩 자리를 찾는다. 최민식은 기호의 중심에 여유를 놓았다. 달라진 풍경 앞에서 자신의 경험을 내세우기에 앞서 궁금해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봤다.
"기호에게 우투투 사옥은 예전에 근무했던 출판사 건물이라 고향집에 간 듯한 묘한 기분일 거로 봤어요. '3년 만에 매출 100억 원을 달성했다고? 비결이 뭘까?' 하는 궁금증도 있죠. 마음에 여유가 있는 거예요. 거기서 출발했어요. 서양 아저씨보다는 한국 아저씨가 궁금해할 만한 관점을 염두에 뒀고요. 선우에게 조언하는 장면에서는 순간적으로 내 딸 같은 마음이 드는 거죠."

함께 영화를 이끈 한소희에게도 궁금증이 컸다. 세대가 다른 배우와 어떤 호흡을 만들 수 있을지 기대했다. 그는 "내가 언제 한소희와 작업을 해보겠냐. 무슨 복이 있어서 이렇게 만났나 싶었다. 언감생심"이라며 "밤길에서 마주치고 싶지 않은 얼굴의 남자 배우들과 호흡을 많이 맞추지 않았느냐"고 너스레를 떨었다.
촬영하며 발견한 한소희의 장점은 작품을 향한 적극성과 털털함이었다. 한소희가 먼저 '인턴' 출연 의사를 강하게 피력했다는 이야기는 현장에서 보인 의욕과 맞닿아 있었다. 최민식은 그 추진력에서 선우와 닮은 면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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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촬영하니까 목숨을 거는 게 보였어요. 본인이 누구보다 하고 싶다고 제작진에게 피력했다더라고요. 그만큼 의욕적으로 나서는 사람이 하는 거죠. 호흡해 보니 굉장히 멋지고 자세가 좋았어요. 까탈스럽지 않을까 우려한 것도 사실인데 아주 털털하더라고요. 같이 어울려주고 잘 대해줘서 오히려 선배로서 고마웠죠."
젊은 배우들과의 호흡은 유쾌한 배움이기도 했다. 철이 좀 지났지만 '어쩔티비', '킹받네', '느좋' 등의 유행어를 모두 이번 현장에서 익혔다. 최민식은 "'어쩔티비' 다음에 왜 냉장고와 세탁기가 나오는지 모르겠더라. 미친 건가 싶었다. '느좋'은 처음에 듣고 욕하는 건 줄 알았다"며 웃었다. SNS로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도 새롭게 다가왔다. 다만 직접 SNS를 할 생각은 없다. 그는 "나쁘다는 게 아니라 다르다는 거다. 저는 얼굴을 맞대고 소통하는 게 좋다"고 했다.

편하게 어울렸다고 연기까지 느슨하게 한 건 아니다. 인턴 동기 주성 역의 김요한과 손동작을 맞추는 장면도 고군분투하며 연습했다. 애드리브처럼 보이는 동작 하나까지 작품의 분위기에 필요한지를 따졌다. 댄스 파티에서는 실제 클럽에 온 듯 놀다가도 감정 장면에 들어서면 집중의 방향을 바꿨다.
"놀면서 찍었다고 해도 예민한 더듬이는 항상 세우죠. 그냥 쉽고 거저먹는 건 없어요. 항상 그 장면이 요구하고 작품이 요구하는 최선을 찾으려고 해요. 예민할 것은 예민하게 보고 어울릴 때는 어울려야죠. 후배 배우들과 잘 지내는 것도 다 작업의 일환이에요."
단정한 슈트 차림을 위해 체중도 줄였다. 건강이 좋지 않아 관리가 필요했던 시기와 맞물려 운동과 식이요법을 병행했다. 그는 "작품을 위해서도 했지만 제 건강을 위해서도 했다. 그런데 잘 안 빠지긴 한다"고 말하며 웃어 보였다.
기호를 연기하며 오래 붙든 질문은 '좋은 어른'이었다. 최민식은 세대와 성별을 둘러싼 갈등 속에서 좋은 어른과 리더를 바라는 마음이 크다는 사실을 느꼈다. 그렇다고 누군가의 기대에 맞춘 모범답안을 내놓기는 어려웠다. 그가 생각을 이어간 곳은 타인의 평가보다 자기 삶을 대하는 태도였다.
"좋은 어른이 된다는 게 뭔지 잘 모르겠어요. 그게 꼭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한 건 아니잖아요. 내 스스로 좋은 사람이 돼야 하는 거죠. 좋은 사람의 기준도 다 주관적이고요. 남에게 기준을 맞추기보다 내가 내 인생을 괜찮게 살고 있는지를 알고 나쁜 짓 안 하고 양심껏 사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배우로서 자신에게 요구하는 것은 새로운 시도다. 최민식은 다른 인물의 옷을 입을 때 두려움보다 설렘이 더 크다고 했다. "매니저가 없어 직접 영업을 뛰고 있다"는 농담 뒤에는 아직 보여줄 얼굴이 많다는 의욕이 묻어났다.
"창작하는 사람들이 경계해야 할 게 매너리즘 같아요. 작품을 선택할 때 여러 조건이 있지만 다 차치하고 지금의 내가 새로운 시도를 해봤다는 것 자체가 자극제가 돼요. 새로운 세상에서 새로운 인물로 대중과 소통할 때 기대와 설렘이 있어요. '인턴'도 그랬고요. 앞으로도 그런 도전을 계속할 것 같아요."
추석 극장가 경쟁을 앞둔 마음도 유연하다. 최민식은 관람을 권하는 말에 힘을 싣지 않았다.
"관객에게 봐주십사 강요하고 싶지는 않아요. '추석 때 볼만한 가족영화예요'라는 말도 하고 싶지 않고요. 우리만의 해석을 우리나라 관객들이 어떻게 봐주실까 궁금해요. 그냥 궁금한 마음으로 와서 봐주시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