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집밥', 여백을 채우는 이준익 감독의 존재감

'아버지의 집밥', 여백을 채우는 이준익 감독의 존재감

정수진(칼럼니스트) ize 기자
2026.09.09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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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롯데시네마 단독 개봉, 17일 24일 레진코믹스서 공개

이준익 감독의 첫 숏드라마 연출작인 '아버지의 집밥'이 9일 롯데시네마에서 단독 개봉했다. 고라타 작가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가부장적인 남편 하응이 아내 순애를 대신해 집밥을 차리며 벌어지는 고군분투를 담았다. 국내 최초의 세로형 시네마로 제작되어 인물의 내면과 감정에 집중할 수 있는 신선한 관람 경험을 제공했다.
사진제공=레진코믹스 
사진제공=레진코믹스 

모바일 플랫폼에서 보는 세로형 콘텐츠를 영화관에서 본다고? 이준익 감독의 첫 숏드라마 연출작으로 관심을 모은 ‘아버지의 집밥’은 여러모로 궁금한 작품이다. 극장가 한편엔 1,000만을 넘기고도 여전히 더 넓은 화면으로 보고자 ‘오디세이’ 아이맥스 상영관 예매에 도전하는 관객들이 있는데, 다른 한편에선 화면의 양옆 상당 부분이 검은 화면을 차지하는 세로형 영화가 걸린다는 사실이 재미나다.

‘아버지의 집밥’의 출발은 영화가 아닌 숏폼 드라마다. 레진코믹스에서 연재된 고라타 작가의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하며, 레진엔터테인먼트의 숏드라마 플랫폼 레진스낵에서 회당 2분 단위의 숏폼 콘텐츠 61회 분량으로 공개될 예정이다. 극장에 걸리는 국내 최초 세로형 시네마 ‘아버지의 집밥’은 모든 분량을 이어 붙여 편집한 146분짜리 버전. 그러니까 이 작품은 ‘집에서 편하게 스마트폰으로 볼 수 있는 것을 왜 극장까지 가서 봐야 하느냐’에 대한 의문이 필연적으로 뒤따르게 되는 셈이다.

아내에게 삼시세끼 집밥을 받아먹던 가부장적인 남편이 있다. 하응(정진영)은 까다로운 입맛으로 젊은 시절 걸핏하면 밥상을 뒤엎어버리던 ‘밥상 위의 폭군’이었으나 어느 날 갑자기 주방으로 내몰린다. 아내 순애(이정은)가 교통사고 후유증 때문인지 ‘요리백지증’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증상을 보이며 요리를 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기회는 이때다 싶었던 것일까, 순애는 하응이 만든 첫 된장찌개를 조용히 쏟아 버리며 ‘된장 맛 나는 음식물 쓰레기’라고 냉정하게 평가한다. 거기에 앞으로 만든 음식이 맛이 없을 땐 벌점을 1점씩 부여하고 10점이 되면 이혼하겠다는 엄포까지 놓는다.

사진제공=레진코믹스 
사진제공=레진코믹스 

40년간 밥을 받아먹던 하응이 집밥을 차리게 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고군분투가 코미디와 버무려지고 누구나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것은 긍정 요소다. 또한 ‘아버지의 집밥’은 당연하다 여겼던 일상이 사실은 한 사람의 노고와 희생으로 굴러갔다는 당연한 사실을 깨닫게 되는 하응의 모습과 함께, 하응과 순애가 지금의 모습이 되기까지의 젊은 시절을 교차로 보여주며 집밥을 넘어 부부와 가족의 의미를 되짚어보게 한다. 여기에 하응과 순애의 아들 명복(변요한)과 며느리 자영(박지연) 부부의 이야기도 삽입되면서 세대에 따른 가족상의 변화와 인식의 변화도 담아낸다.

인상적인 건, 60~70대 아버지 세대뿐 아니라 30~40대 자녀 세대도 은연중 당연하다 여긴 것에 대한 인식을 와장창 깨뜨리는 일갈들. 아들 명복이 어머니의 된장찌개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순애에게 쏟아놓자 순애가 “난 누군가의 밥으로 기억되고 싶지 않다”라고 말하는 장면, 통쾌하지 않나? 맞벌이하는 워킹맘임에도 여전히 요리와 엄마의 자격을 같은 선상에 놓으며 괴로워하는 자영의 모습은 답답하면서도 어느 정도 공감이 가는데, 이에 어린 딸 도혜(박지윤)가 또랑또랑 집밥의 의미를 설명하는 장면도 재미나다.

정진영, 이정은, 변요한 등 이준익 감독의 전작에서 활약했던 배우들은 여전히 믿음직하다. 실제로 있을 법한 우리네 아버지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그려내면서도 연신 ‘밥, 밥, 밥’을 외쳐 관객으로 하여금 치를 떨게 하는 정진영의 연기가 웃음을 만들고, 여러 작품으로 지금 이 시대 국민 엄마로 자리잡은 이정은의 친숙한 듯 하면서 새로운 얼굴의 엄마 연기도 맛깔스럽다. 새신랑이 된 변요한과 ‘참교육’ 우진 엄마로 친숙한 박지연의 합도 좋은데, 깨알 재미는 도혜를 연기하는 박지윤의 잔망스러운 연기에 있으니 기대해도 좋다.

사진제공=레진코믹스 
사진제공=레진코믹스 

그렇다면 왜 극장까지 가서 세로형 콘텐츠를 봐야 하느냐에 대한 의문에 대한 답은? 극장에서 세로형 시네마 ‘아버지의 집밥’을 보는 경험은 꽤 신선했고, 또 볼 만했다. 시원하게 펼쳐지는 풍광이나 세밀한 미장센은 없지만, 세로형 화면을 고려한 영리한 구도들이 적절히 배치돼 눈길을 끈다. 없어진 여백만큼 인물에 집중하며 감정이 더욱 진하게 응축되어 배어나는 느낌도 절묘하다. 이준익 감독은 “가로 영화가 풍경화라면 세로 화면은 초상화다. 인물의 내면에 더 깊이 집중할 수 있어, 심리 드라마 같은 느낌”이라고 말했는데, 매우 적절한 표현이라 생각한다. 한껏 포커싱한 인물을 쫓으며 세심하게 인물들의 감정에 몰입하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화면비율을 덜 신경 쓰인다. 그릇이 화려하고 아름다워 눈에 띈다 한들, 그릇에 담긴 맛난 음식을 맛보면 그때부턴 음식이 주인공인 것처럼.

물론 누구나 부담없이 즐길 수 있다는 긍정 요소는 그만큼 무난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준익이라는 네임드 감독에 대한 기대치나 요즘 관객들의 높아진 극장 방문 문턱을 고려하면 ‘아버지의 집밥’은 지나치게 안정적일 수 있다. 그래도 추석 시즌, 스마트폰이나 노트북보단 큰 화면에서 가족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싶은 노년층과 중장년층이 있는 가족들이라면 괜찮은 선택으로 보인다. ‘아버지의 집밥’은 9월 9일, 롯데시네마에서 단독 개봉한다. 러닝타임 146분. 이후 레진스낵을 통해 오는 17일과 24일에 1부와 2부로 나뉘어 순차 공개된다.

정수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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