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 지키는 양준호의 분노, 속사포 대사로 터뜨린 통쾌함
열등감 품은 선배서 든든한 동료로...한 인물에 담은 넓은 연기 폭

'로또 1등도 출근합니다'에서 양준호(서현우) 대리가 욕을 쏟아내자 막혔던 속이 뚫린다. 후배의 수모에 발끈한 그는 거래처 팀장에게 거침없이 욕설을 퍼붓는다. 상대의 기분을 맞추며 계약을 따내던 그 입으로 이번에는 상대를 몰아붙인다. 웃을 때의 능청스러움만큼 화낼 때의 기세도 제대로다.
로또 당첨금 13억 원을 품고 출근하는 팀장 공은태(이준혁)의 이야기를 그린 티빙 '로또 1등도 출근합니다'에서 양준호는 직장 생활의 복잡한 관계를 가장 흥미롭게 보여주는 인물이다. 후배 팀장을 못마땅해하던 선배에서 든든한 업무 파트너로, 사람 좋은 영업맨에서 후배를 지키는 성난 선배로 움직인다. 서현우는 그 변화마다 살에 닿는 현실감을 더해 직장인의 복잡한 속내를 드러낸다.
7~8회에서 글로벌 기업 CGM의 한국 진출은 양준호의 직장 홍성 인터내셔널을 궁지로 몰아넣는다. 거래 업체들은 재계약을 요구하고 이를 거절하면 계약을 해지하겠다고 압박한다. 갑을 관계가 뒤집힌 상황에서 거래처의 박스를 나르는 후배 박기태(홍진기)를 본 양준호는 참지 못한다. 거래처 팀장에게 달려가 욕설을 퍼붓고 후배를 데리고 나온다.
"너는 너희 엄마한테 전화해서 사과해. 이따위로 커서 죄송하다고. 뭔 말인지 알아듣냐? X도 힘도 없는 X 같은 팀장 X아" 폭풍 같던 욕설 끝에는 "이 바닥 갑을 항상 바뀐다"는 경고가 붙는다. 서현우의 대사는 빠르게 쏟아지면서도 말마다 힘이 실린다. 황당할 만큼 독한 질책이 웃음을 터뜨리고,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 분노가 장면의 긴장을 붙든다. 욕이 입에 붙는다는 감탄과 함께 양준호가 얼마나 화났는지도 선명하게 전해진다.

이 장면의 통쾌함은 지하 주차장에서 더 깊은 의미로 이어진다. 양준호는 박기태에게 "이건 박기태라는 인간이 박스를 나른 게 아니라 홍성이라는 법인이 파라디몰에서 시다바리 짓을 한 거"라는 말로 사회생활의 이면을 짚는다. 이 말을 건네는 서현우의 연기에는 현실 직장인의 내음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그 생활감은 공은태와의 관계를 풀어가는 과정에서도 빛났다. 극 초반 양준호는 팀원들을 살뜰히 챙기면서도 후배인 공은태를 상사로 대하는 데는 인색했다. 서현우는 동료들 앞에서 보이던 친근함과 팀장에게 건네는 형식적인 반응 사이에 차이를 뒀다. 노골적으로 적대하지 않아도 말투와 표정에서 못마땅한 심기가 읽혔다. 주변에서 한 번쯤 마주쳤을 법한 선배의 얼굴이다.
공은태와 충돌한 뒤 속내를 털어놓는 장면에서는 그 얼굴에 다른 감정이 들어선다. 양준호는 후배 팀장을 향한 열등감과 자신의 미숙함을 인정하며 퇴사까지 고민한다. 서현우는 능청스럽게 버티던 인물의 여유가 걷히는 순간을 섬세하게 살렸다. 얄미운 태도 뒤에 감춰졌던 자존심의 상처가 드러나면서 상대하기 불편했던 동료의 사정에도 귀를 기울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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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해 이후에는 사람을 대하는 능숙함이 제자리를 찾는다. 라크네스 협상에서 상대를 치켜세우다가도 진심으로 설득하는 모습에는 영업 베테랑의 실력이 묻어난다. 서현우는 상대의 반응을 받아치는 타이밍과 말에 힘을 싣는 정도를 조절하며 협상의 재미를 살린다. 이준혁과의 호흡도 한결 경쾌해진다. 공은태에게 날을 거두고 든든한 오른팔이 되는 과정에 그는 특유의 능청스러움과 인간적인 온기를 함께 싣는다.

서현우가 작품마다 다른 얼굴로 기억되는 이유도 인물의 욕망과 처지를 정확하게 읽는 데 있다. '클라이맥스'의 오광재, '아너 : 그녀들의 법정'의 박제열, '착한 여자 부세미'의 이돈, '킬러들의 쇼핑몰'의 이성조, '강매강'의 정정환까지. 그가 웃고 화내고 비굴해지는 순간마다 각자의 사정이 묻어난다. 같은 배우의 얼굴에서도 매번 다른 사람이 보이는 이유다.
양준호는 그 폭넓은 역량을 한 작품 안에서 확인하게 한다. 얄미운 선배도, 유능한 영업맨도, 후배 편에서 분노하는 동료도 모두 납득이 간다. 능청스럽게 대사를 살리다가도 관계의 무게가 필요한 순간에는 감정을 끝까지 가져간다. 웃음이 사람을 가볍게 만들지 않고 분노가 그간의 성격을 지우지도 않는다.
'대세 배우'라는 말의 근거는 이런 장면들에 있다. 맡길 수 있는 역할은 넓고, 맡긴 인물은 구체적이다. 이번에는 거래처에 욕 한바탕을 쏟아내는 대리의 얼굴로 그 실력을 보여준다. 서현우가 연기하면 욕을 잘하는 사람의 뒤에 화낼 이유가 있는 한 사람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