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자(들)'의 손익분기점 돌파가 의미하는 것 [IZE 진단]

'암살자(들)'의 손익분기점 돌파가 의미하는 것 [IZE 진단]

최재욱 ize 기자
2026.10.23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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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왜곡 논란과 극심한 비수기 뚫고 손익분기점 330만 돌파
직접 보고 확인하려는 집단지성의 발현에 표현의 자유 지켰다

허진호 감독의 영화 '암살자(들)'이 역사 왜곡 논란과 정치적 상영 거부 압박을 뚫고 손익분기점인 330만 관객을 돌파했다. 정치권의 상영 중단 촉구와 온라인상의 사이버 총공세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은 직접 보고 판단하겠다는 집단지성을 통해 표현의 자유를 지켜냈다. 이 영화는 국내 흥행뿐만 아니라 제37회 싱가포르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는 등 해외에서도 장르적 성취를 인정받았다.
사진제공=(주)하이브미디어코프 
사진제공=(주)하이브미디어코프 

영화는 극장이라는 열린 광장에서 관객의 온전한 시선으로 완성된다. 1974년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소재로 한 허진호 감독의 영화 '암살자(들)'이 정치적 외풍과 집단적 상영 거부 압박을 뚫고 손익분기점인 330만 명 돌파를 이뤄냈다. 비수기 극장가에서 20일 넘게 한국 영화 박스오피스 1위를 지켜낸 결과이자, 2026년 한국 영화 흥행 톱4에 안착한 의미 있는 발걸음이다.

이번 흥행은 단순한 상업적 성공을 넘어 한국 사회의 문화적 성숙도를 시험하는 과정이었다. 개봉 직후 영화는 진영 대립의 한복판으로 강제 소환됐다. 영화 속에 존재하지도 않는 ‘박정희 전 대통령 배후설’을 근거로 삼은 정치권과 일부 세력은 ‘역사 왜곡’이라는 낙인을 찍으며 상영 중단을 촉구했다. 국민의힘 지도부가 관람 거부 포스터를 공유하고 감독의 국정감사 출석을 요구하는 사이, 주연 배우 유해진의 자택 앞 시위와 광고주를 향한 계약 해지 압박이 이어졌다.

특히 이번 사태에서 가장 위험했던 단면은 ‘영화를 직접 보지도 않은 채, 자극적으로 편집된 유튜브 쇼츠와 온라인 렉카의 확증편향만으로 작품을 단죄하려 했던 집단적 움직임’이다. 영화의 전체적인 맥락과 결을 확인하는 최소한의 수고조차 생략한 채, 온라인 알고리즘이 부추긴 파편화된 분노에 기댄 ‘사이버 총공세’가 극장 문을 닫으려 들었다. 그 결과 이동진 평론가의 리뷰를 비롯해 대형 유튜버 지무비, 역사 강사 최태성의 해설 영상까지 악플 테러 속에 비공개로 전환됐다. 텍스트를 마주하기도 전에 선동된 여론이 창작자와 해설자의 입을 틀어막는, 극히 위험한 선례가 만들어질 뻔한 셈이다.

그러나 관객의 발걸음은 이 뒤틀린 확증편향의 굴레를 깼다. “소문과 선동 대신 내 눈으로 직접 보고 판단하겠다”며 극장으로 향한 330만 관객의 선택은, 유튜브의 단편적 분노보다 훨씬 단단했다. 정치가 그어놓은 ‘보지 말라’는 금기와 알고리즘이 조장한 혐오를 거부하고, 140여 분의 상영 시간 동안 스크린이 던지는 질문을 온전히 대면하겠다는 집단지성이 비로소 작동한 것이다.

한국 영화사는 억압에 맞선 표현의 자유와 함께 성장해왔다. 1970~80년대 사전검열이라는 가위질에 묶여 침체를 겪던 한국 영화는 1996년 영화법 사전검열 위헌 결정 이후에야 비로소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절대 보지 않는다”에서 “봐줘야 한다”를 거쳐 “보고 싶고 볼 만하다”로 진화한 한국 영화의 저력은 ‘금기’를 깨부순 창작자들의 도전과 이를 극장에서 지지한 관객의 연대 덕분이었다.

사진제공=(주)하이브미디어코프 
사진제공=(주)하이브미디어코프 

국내 관객이 보여준 집단지성의 힘은 해외 무대로도 이어졌다. 부산국제영화제의 파행과 상영 중단 압박 속에서도, 제37회 싱가포르국제영화제는 22년 만에 한국 영화를 개막작으로 선정하며 객석의 뜨거운 기립박수로 화답했다. 토론토국제영화제 국제 관객상 러너업에 이어 싱가포르 영화제 제레미 추아 집행위원장이 “언론의 자유와 진실이 왜 중요한지를 시의적절하게 일깨워 준다”고 호평했듯, 세계 무대 역시 영화가 던진 질문의 무게와 장르적 성취를 높게 샀다.

표현의 자유가 영화의 모든 결점을 덮어주는 방패는 아니다. 영화의 빈틈이나 역사적 상상력의 한계가 있다면 치열한 비평과 논쟁을 통해 검증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보지도 않고 정죄하는 혐오와, 상영 자체를 가로막으려는 정치적 압박은 비평이 아니라 폭력일 뿐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 영화에 맞서는 가장 건강한 방법은 상영관 폐쇄가 아니라 객석에서의 확인과 정당한 비판이다.

330만 관객이 남긴 궤적은 분명하다. 스크린 위의 이야기를 판별하고 숨결을 불어넣는 주체는 자극적인 유튜브 썸네일도, 정치적 확성기도 아닌 ‘극장 안의 관객’이라는 사실이다. '암살자(들)'의 흥행은 어떤 소음도 대중의 눈과 귀를 온전히 가릴 수 없으며, 한국 사회의 성숙한 관객들이 여전히 표현의 자유라는 가치를 든든히 지탱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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