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볼거리와 빠른 전개로 연 4회…이질감 사이로 살아난 아는 맛
신민아의 기품과 '이종새'의 사랑스러움…우려 덜어낸 캐릭터 구현

흔히 아는 맛이 무섭다고 한다. 익숙한 만큼 그 힘이 강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때로는 모르는 맛도 무섭다. '재혼 황후'가 그렇다. 국내 드라마에서 좀처럼 보지 못한 질감은 호기심을 당기지만, 그 낯섦이 불쑥 어색함으로 돌아와 항마력을 시험하기도 한다. 재미있어서 빠져들다가 민망해서 잠깐 멈칫하는, 두 가지 의미로 무서운 출발이다.
지난 3일 총 10부작 중 4회까지 공개된 디즈니 '재혼 황후'는 동대제국 황후 나비에(신민아)의 자리가 흔들리는 과정을 빠르게 그린다. 황제 소비에슈(주지훈)는 도망 노예 라스타(이세영)에게 빠져 그를 정부로 들인다. 평생의 동반자라 믿었던 남편이 다른 여인을 감싸는 동안, 서왕국 왕자 하인리(이종석)는 나비에의 외로움에 다가선다.
서양풍 황실이라는 포장을 벗기면 사랑과 배신, 질투가 뒤엉킨 꽤 익숙한 치정극이다. 다른 여자에게 반한 남편과 배신에 상처받은 아내, 그런 아내에게 다가오는 새로운 남자까지. 막장극에서 숱하게 본 관계가 황실 안에서 펼쳐진다.

신년회에서 라스타와 춤을 춘 소비에슈가 정작 나비에와 하인리의 춤에는 질투를 드러내는 장면도 치정극의 뻔하지만 확실한 재미를 살린다. 새 사랑은 누리고 싶지만 오래 곁을 지킨 아내도 여전히 자신만 바라봐야 한다는 이기심이다. 배신한 쪽이 되레 상대의 마음까지 단속하려 드니 그 뻔뻔함에 화가 난다. 익숙한 K-드라마의 막장 문법이 낯선 황실 안에서도 아는 맛의 재미를 낸다.
신민아의 비주얼은 단연 백미다. 장면마다 달라지는 드레스와 화려한 장식을 보는 즐거움이 크다. 옷이 황후를 만들어주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옷을 입은 신민아 본연의 아름다움과 우아한 아우라가 나비에의 기품을 완성한다. 주지훈과 이세영도 배역 분위기에 자연스럽게 들어맞는다. 주지훈은 황제의 권위에 두 여인을 모두 제 곁에 두려는 남자의 이기적인 욕망을 겹쳐 소비에슈의 뻔뻔한 면모를 살린다. 이세영은 처음 누리는 호의에 들뜬 해맑음과 더 많은 것을 갖고 싶어 하는 욕망을 함께 놓는다.
그러나 초반부 가장 뜻밖의 활약을 하는 존재는 사람이 아니다. 새가 된 하인리, 퀸이다. 나비에를 위기에서 구한 뒤 거듭 찾아오는 퀸(하인리인 줄 모르는 나비에가 새에게 붙여준 이름)은 황후가 상처받을 때마다 곁을 지킨다. 사람들 앞에서는 감정을 다잡아야 하는 나비에가 작은 새에게는 마음을 내어준다.

무엇보다 퀸의 실사 비주얼이 무척 귀엽고 영롱하다. 나비에가 퀸이 수컷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으쓱하며 가슴을 부풀리는 모습부터 웃음이 난다. "새는 엉덩이를 쓰다듬으면 좋아한다던데"라는 나비에의 말에는 기다렸다는 듯 엉덩이를 내밀고 씰룩인다. 사람이라면 지나치게 능청스러웠을 행동이 새의 몸짓을 거치니 사랑스러운 구애가 된다.
독자들의 PICK
지금 1,307명 읽는 중
이종석과의 연결도 매끄럽다. 뽀얗고 영롱한 외형에 장난스러운 움직임이 더해지면서 인간 하인리의 다정하고 능청스러운 매력이 이어진다. 백옥 같은 이종석의 피부와 새의 뽀얀 깃털을 연결한 색감 설계도 두 모습을 낯설지 않게 묶는다. 사전 공개 영상에 '이종새'라는 별명이 붙은 것이 괜한 일이 아니다. 새가 나올 때도 하인리를 보고 있다는 감각이 유지된다는 점에서 실사화의 중요한 고비를 넘었다.

극 전반 화면의 규모감도 기대 이상이다. 독일의 성과 체코의 정원은 황실을 단순한 배경 그림이 아닌 인물들이 살아가는 공간으로 만든다. 넓은 연회장과 복도, 샹들리에와 가구, 배우들이 입은 의상까지 한 세계의 압도적 분위기로 묶인다. 국내 드라마에서 흔히 보던 풍경이 아니라는 신선함이 분명하다. '고급 버전 서프라이즈'가 되지 않을까 했던 우려는 이 공간과 배우들의 어울림 속에서 상당 부분 잦아든다.
물론 어색함이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익숙한 배우들이 서양풍 차림으로 나비에와 소비에슈라는 이름을 부를 때는 인물보다 설정을 먼저 의식하게 된다. 웹소설 특유의 과장을 실제 배우의 말과 몸짓으로 받아들이는 일에도 익숙해질 시간이 필요하다. 이 낯선 조합이 흥미로운 판타지로 보일지, 민망한 재현으로 보일지는 시청자의 취향에 따라 갈릴 것이다.

다만 세계관의 약속을 받아들이고 나면 이야기를 따라가는 일은 어렵지 않다. 남편의 변심과 새로운 여인의 등장, 상처를 알아봐 주는 또 다른 사람이라는 관계가 분명하고 전개도 빠르다. 낯선 세계를 공부하기보다 누군가에게 화를 내고 다른 누군가를 응원하며 보게 된다. 네 회를 한꺼번에 공개한 선택은 이질감에 머물던 시선을 인물의 다음 행동으로 옮기는 데 효과적이다.
국내 최초의 서양풍 로맨스 판타지 실사화라는 시도만으로 완성도를 보증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첫 네 회는 낯선 장르가 감수해야 할 위험에 비해 제법 능숙하게 재미를 확보했다. 앞으로는 황후의 아름다움과 새의 사랑스러움을 넘어 나비에가 제 삶을 선택하는 과정을 설득해야 한다. 일단 다음 회를 볼 마음의 문은 열렸다. 모르는 맛이 궁금해서 시작했는데, 어느새 아는 감정 때문에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