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NA 월화드라마 '연애박사'의 임유진은 자주 흔들리는데 이를 연기한 김소현을 보는 마음은 편안하다. 사랑에 서운해하고 낯선 공부 앞에서 작아지다가 이별 앞에서는 속절없이 무너진다. 그런데도 이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여기까지 왔는지는 선명하다. 김소현이 유진의 서툰 말과 행동 뒤에 놓인 마음을 놓치지 않고 감정 변화를 뭉근하게 설득해서다.
김소현이 '연애박사'에서 연기하는 유진은 의류학을 떠나 로봇공학에 도전한 석사과정생이다. 친구가 추행당하는 모습을 보고 나서고 사과를 종용하는 교수에게도 뜻을 굽히지 않는다. 또렷한 말투와 물러서지 않는 시선에는 제 판단을 믿는 사람의 기세가 있다. 김소현 특유의 반듯함이 유진의 맹랑함을 받친다.
그러나 단단한 사람에게도 약한 자리는 있다. 랩실 컴퓨터 배정을 두고 박민재(추영우)에게 서운함을 드러낼 때는 질투와 연구실에서 제 몫을 못 한다는 초조함이 포개진다. 김소현은 이를 귀여운 투정으로만 흘리지 않는다. 날카롭게 나가는 말 뒤에 나를 조금 더 알아봐 달라는 바람을 남긴다. 당당함이 흔들리는 이유가 보이기에 모난 반응에도 마음이 간다.

토라진 얼굴에 웃음이 번지는 순간에는 다른 솜씨가 보인다. 자존심을 세우는 말투와 먼저 풀려버리는 표정 사이에 아직 상대를 좋아하는 마음이 남는다. 추영우가 망설이며 말을 건네면 그 대답을 받아내는 얼굴이 대화의 온도를 바꾼다. 안판석 감독이 오래 들여다보는 일상의 대화에서 김소현은 말하는 순간만큼 듣는 순간을 충실히 채운다.
인물을 늘 옳은 편에 세우지도 않는다. 민재의 의족을 보고 당황해 자리를 피했던 유진은 자신의 태도가 준 상처를 돌아본다. 김소현은 거침없던 사람이 상대의 아픔 앞에서 조심스러워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자기 뜻을 밀어붙이는 씩씩함과 자기 태도를 돌아본 뒤 다시 다가가는 용기는 다르다. 유진의 미숙함을 감추지 않는 여유에서 오히려 배우의 어른스러움이 느껴진다.
그 깊이는 9·10회에서 더 뚜렷해졌다. 일방적인 이별 통보를 받고 1년을 견딘 유진은 민재를 원망하면서도 그의 건강과 행복을 빈다. 김소현은 담담한 말을 고르는 순간에도 상처를 다 거둬내지 않는다. 잊은 듯 말하려는 노력과 잊지 못한 마음이 함께 읽힌다. 미움이 사랑을 지워주지 않는다는 사실이 그 얼굴에 남아 있다.
돌아온 민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장면도 그래서 납득된다. 투병 때문에 떠났다는 사정을 이해하는 것과 버려졌던 시간을 용서하는 것은 다른 일이다. "나는 그때 죽었다고"라는 울분에는 그가 살아 있어 다행이라는 마음으로도 지울 수 없는 고통이 담긴다. 김소현은 참았던 말이 터지는 순간과 눈물 흘리며 돌아서는 순간을 이어 쉽게 걷히지 않는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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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현은 누군가의 어린 시절을 연기하던 아역에서 어느덧 작품을 이끄는 주연으로 성장했다. 차분하게 여러 배역을 거치며 쌓아온 내공은 이제 한 사람 안에서 엇갈리는 마음을 오래 붙드는 힘이 됐다.
특히 전작 '굿보이'의 한나가 행동으로 돌파하는 강단을 보여줬다면, 유진에게서는 해결할 수 없는 감정을 견디는 힘이 보인다. 총을 겨누던 집중력이 이번에는 상대의 말끝과 침묵에 머문다. 감정을 더 크게 터뜨려서가 아니라 서로 반대되는 마음을 함께 품기에 전작보다 한층 깊어진 인상을 준다.
김소현에게는 이제 해 질 녘의 노을 같은 분위기가 있다. 화사함은 여전한데 그 빛 아래 놓인 마음의 굴곡이 전보다 잘 보인다. 불완전한 청춘을 연기하면서 배우로서는 더 무르익은 모습이다. 인물이 흔들릴 때 함께 흔들려 주되 그를 이해할 길은 놓치지 않는, 김소현의 다음 얼굴을 기다리게 하는 것은 그렇게 깊어진 안정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