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서울 송파구 잠실5단지 재건축 조합은 지난 9월 CM(건설사업관리)업체 선정 입찰공고를 내면서 한국CM협회 능력평가 점수를 배점 기준에 포함했다. 협회에 실적신고를 하지 않은 업체는 자동으로 감점을 받았다. 일부 업체들은 '불리한 경쟁'이라며 참여를 포기했다. 결국 입찰 업체수가 모자라 입찰이 무산됐고, 조합은 재입찰 공고를 내야 했다.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 조합들이 공사 전 과정을 관리하는 CM업체 선정기준으로 특정 협회의 평가자료를 활용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전체 1300여개 CM업체 중 해당 협회에 실적신고를 한 업체는 47개 뿐이다. 대표성이 부족한 선정기준이 적용되면서 우량 업체를 포함한 대다수가 입찰에서 사실상 배제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올해 CM업체를 선정한 잠실5단지 재건축, 목동6단지 재건축, 한남5구역 재개발 조합 등은 CM협회의 '능력평가' 자료를 업체 심사표에 반영했다. 배점비율은 조합별 최대 20%에 달했다. 그 결과 한국CM협회에 실적 신고를 하지 않은 업체들은 평가점수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한국CM협회는 매년 8월말 국토교통부 건설산업지식정보시스템(KISCON)에 능력평가를 공시하는데, 올해 CM능력 평가를 받은 CM업체는 47개사에 그친다. 전체 CM업체 중 3% 수준이다. 실적신고 업체 수가 적은 것은 법적 의무사항이 아니라서다. 신고 실적에 연동해 협회에 납부할 금액이 생기기 때문에 국내 CM업체 대다수는 한국CM협회에 실적을 신고하지 않고 있다.
더구나 한국CM협회의 CM능력 평가는 회원사들이 '제출'한 자료를 자체 집계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신고금액이 높을수록 납부금액이 높아지니 업체가 실적을 축소 신고하는 관행도 자리잡았다는 전언이다.
조합이 CM업계 상황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로 CM 선정기준을 정하면서 시장의 혼선이 커지고 있다. 조달청 등 공공 발주자는 CM협회 능력평가 자료를 공식 입찰 배점에 포함시키지 않고 있다. 반면 민간 정비사업 조합들은 CM협회의 자료를 공신력있는 평가체계로 보고 적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CM업계 한 관계자는 "조합이 '능력평가'라는 이름에만 의존하고 CM협회의 자료 구조를 검증하지 않은 채 반영하는 것은 명백히 불공정한 시장 왜곡"이라며 "CM업체 대다수가 CM협회에 실적을 신고하지 않고 있는 현실에서 특정 협회의 자료가 입찰 판도를 좌우하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과거엔 재건축 조합이 시공사와 직접 협상하며 공사를 진행했다. 하지만 최근 서울 주요 정비사업장들에서 조합의 CM 수요가 크게 늘고 있다. 시공사와 조합 사이에서 격화하는 공사비 증액·원가 갈등 때문이다. 시공사들이 원자재·인건비 상승 등을 근거로 비용 인상을 요구할 때 전문성이 부족한 조합은 자료 검증과 비용 협상에서 불리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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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과정에서 사업비, 공정, 계약관리 전 영역을 조합 편에서 객관적으로 수행하는 CM 역할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실제로 압구정, 목동, 한남, 잠실 등 대형 사업지에서 CM 도입이 일반적인 흐름으로 자리잡는 분위기다.
하지만 조합이 CM 공모 평가기준을 만들 때 참고할 만한 공신력있는 CM 능력검증 체계가 사실상 없다는 게 문제다. 이같은 상황에서 한국CM협회 능력평가 자료가 일부 조합에서 대체재처럼 사용되고 있다. 그 결과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협회 미신고 CM 업체들은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됐다.
법무법인 제현 이일규 변호사는 "입찰 공정성 훼손으로 이어질 경우 분쟁에 휘말릴 수 있다"며 "발주처가 CM제도를 활용하려면 특정 단체의 자료를 활용하기보다 전자공시 등 명확한 재무제표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공신력있는 통합 CM실적·정보 플랫폼 구축 등 대안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