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하나은행 1624억, 농협은행 296억, 국민은행 296억 등
시중은행 3곳을 포함한 13개 금융기관에서 수천 억 원대의 금융사고가 또다시 발생했다. 대기업 직원이 허위 서류를 꾸며 대출을 받고 이를 유용한 사건이다. 사건에 연루된 금융사들은 피해금액 회수에 문제가 없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지만, 최악의 경우 소송도 불사한다는 입장이다.
6일 금융권에 따르면 KT의 자회사 KT ENS의 김 모 부장은 이 회사 협력업체의 특수목적법인(SPC)에 나간 외상매출채권담보대출 중 일부를 횡령해 잠적했다. KT ENS의 협력업체들은 납품 과정에서 발생하는 외상매출채권을 유동화하기 위해 SPC를 설립했고, 금융사들은 SPC에 대출을 해줬다. 이 과정에서 김 모 부장은 대출서류를 조작했다. 사기에 이용된 SPC는 모두 9곳으로, 3~4곳 거래업체 명의를 바탕으로 설립됐다. 하나, 농협, 국민은행 등 은행권 대출잔액만 2200억, 저축은행 10곳을 합치면 3000억여원에 이른다.
◇은행권 대출잔액만 2200억…은행들 전혀 몰랐다=금감원은 초기의 매출은 정상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파악한다. 첫 거래를 맺은 것은 2010년으로 이후 어느 시점에선가 허위 매출이 시작됐다는 얘기다. 이후 금융기관 돌려막기를 통해 대출금액을 막는 과정이 진행됐다. 하지만 은행들은 이렇게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가공의 매출채권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정상적 대출관계가 있었던 데다, 일부 은행은 증권사 보증서를 담보로 잡는 등 대출의 사기성을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는 설명이다. KT ENS가 대기업인 KT 자회사라는 점도 신뢰를 더한 요인으로 파악된다. 금융기관 간 대출 돌려막기를 한 결과, 연체 등도 일어나지 않았다.
일부 저축은행 등은 KT ENS 직원에게서 채권 양도승낙서를 받은 것으로도 주장한다. 이 승낙서에는 KT ENS 직원의 서명과 회사 인감까지 있었지만, 현재 KT ENS는 매출채권 존재 자체를 부인하는 상황이다.
박세춘 금감원 부원장보는 "서류에 대부분 계약사가 공증이 돼 있어 특이점을 발견하기 어려웠다"며 "감시 과정에서 동일 차주에 대한 한도초과 혐의가 있어 서면검사를 실시하는 과정에서 사기 혐의를 발견했다"고 설명했다.
전체 사기대출 규모는 이보다 더 커질 수 있다. 박 부원장보는 "대출금을 돌려막기에 주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며 "최초 대출금액과 사용처 등은 확인 중"이라고 밝혔다. 드러난 대출 잔액이 약 2800억원이므로 관련한 신용공여액수는 더 많아질 가능성이 높다.
◇은행들 "자금 회수 문제없을 것, 소송도 불사"=하나은행(대출 잔액 1624억)과 농협은행(296억), 국민은행(296억)과 저축은행 등 해당 금융사들은 이번 사고에 연루 가능성을 부인하고 있다. 정상적인 거래로 이뤄진 대출인 만큼, 부당대출이 아닌 KT ENS 직원에 의한 횡령이란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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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은행 관계자는 "은행이 물품 이동 내역까지 다 확인할 수 없는 만큼, 서류상 문제가 없으면 정상적인 거래로 취급할 수밖에 없다"며 "확인절차를 거친 뒤 이뤄진 정상거래로, KT ENS 직원의 횡령으로 본다"고 밝혔다. 하나은행은 채권보전을 위해 앞으로 소송 등 모든 수단을 강구할 계획이다.
농협은행 관계자도 "대출 상당부분이 회수되는 등 정상적인 거래로 보였다"며 "부당대출과는 무관한 사안으로 대출금 회수를 위해 소송까지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은행 역시 "대출절차와 심사과정에 문제가 없었고, 신탁기관이 발행한 수익권증서를 담보로 대출을 실행했기 때문에 손실 가능성은 없다"는 입장이다.
저축은행 중 가장 대출 규모가 컸던 A 저축은행 등 저축은행들도 "대출 당시 서류상 문제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특히 외상매출채권담보대출에는 증권사 등 다른 금융사들의 보증도 포함돼 있어 은행들은 자금 회수에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전망했다.
금감원, 상시감시 통해 2~3주전 이상 포착 =은행들도 발견하지 못한 사기 대출을 발견한 데는 지난해 금감원이 새로 도입한 저축은행 여신 상시감시시스템이 공을 세웠다. 금감원은 지난달 말 상시감시시스템에서 일부 저축은행의 동일차주 한도초과 혐의를 적출해냈다. 이를 서면 검사하는 과정에서 대출 관련 서류 일부가 위조된 것으로 판명됐고 자금추적결과 대출금 돌려막기가 드러난 것이다.
현재 금감원은 관련된 금융회사들을 상대로 경위 파악 중이다. 여신심사 과정에서 허점 등이 발견되면 엄중히 조치할 예정이다. 이와 관련, KT ENS 직원은 경찰에서 조사를 받고 있으며, KT ENS도 피내사자 신분으로 조사 중이다. 이 직원은 부당대출 규모를 2300억 원으로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