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리가 떨어져도 힘들고 올라도 힘들고, 뭐 이런 산업이 다 있습니까?"
최근 만난 보험업계 고위 관계자는 금리 때문에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라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금리가 인하되면 과거에 팔았던 고금리 상품의 역마진 리스크가 커지고 금리가 오르면 자본 확충 부담이 생기는 '금리 딜레마'에 빠졌다는 것이다.
통상 보험업계는 금리가 오르면 '웃고' 떨어지면 '우는' 경우가 많다. 금리는 보험사의 부채와 자산에 영향을 미치는데 금리가 오르면 부채와 자산 모두 현재가치 평가금액이 줄어든다. 보험사는 부채 규모가 크고 부채의 만기도 길기 때문에 자산 변동 폭보다 부채 변동 폭이 더 크다.
자산과 부채 모두 현재가치가 떨어질 경우 부채가 더 크게 떨어지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 금리가 오르는 걸 반긴다. 하지만 최근에는 금리가 오르는 데도 여기저기서 '곡소리'가 들린다. 사상 최대 실적을 냈다는 손해보험사들도 웃지 못하고 있다.
보험사들이 금리에 발목 잡히게 된 이유는 새로 바뀌는 회계기준 때문이다. 보험업계는 오는 2021년 새 국제회계기준(IFRS17)을 받아들여야 한다. IFRS17이 시행되면 보험사의 부채를 원가가 아닌 시가로 평가한다. 이렇게 되면 보험사들은 부채가 늘어나고 그만큼 자본확충 부담을 지게 된다.
금융당국은 보험사들이 제도 변화에 대비해 미리 자본을 쌓게 하기 위해 '보험사 재무건전성 선진화 로드맵'을 마련해 시행하고 있다. 2018년까지 보험부채 평가 제도를 순차적으로 개선하는 것을 목표로 부채 평가기준을 조정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로드맵의 하나로 보험사의 RBC 비율(보험금 지급여력비율)이 갑자기 떨어지지 않도록 지난 2년간 RBC 비율 산정에 적용되는 위험계수를 단계적으로 상향해 왔다. RBC 비율은 보험사의 건전성을 측정하는 지표인데 RBC 비율이 100%라면 보험금을 100% 지급할 수 있는 자본 여력을 갖췄다는 의미다. RBC 비율은 가용자본을 요구자본으로 나눠 구한다. 위험계수가 상향 적용되면 RBC 비율을 구할 때 분모에 해당하는 요구자본이 늘어나 RBC 비율이 하락한다. 여기에 예상보다 빨리 금리가 오르면 자산가치가 떨어져 분자인 가용자본이 감소하니 RBC가 더 크게 떨어진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자본확충도 금리 때문에 가로막혔다. 보험사가 자본을 조달하는 방법은 후순위채나 신종자본증권 발행, 평가이익 사용, 주식 발행 등이다. 금리 상승이 이어지면 채권 발행 비용이 올라가고 평가이익은 줄어들어 채권 발행과 평가이익을 자본 확충 방안으로 사용하기가 쉽지 않다. 대주주의 자금 여력과 상장 여부에 따라 증자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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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리가 오를 때 부채는 원가 그대로 남고 자산 평가손실만 인식하는 현재의 평가기준 불일치는 2021년 부채를 시가 평가하게 되면 해결된다. 문제는 그때까지 버티지 못하고 문닫는 보험사가 나올 것이란 우울한 전망이 제기될 정도로 보험사의 재무건전성이 위태롭다는 데 있다.
미국은 올해 3번의 추가 금리인상을 예고한 상태다. 이에따라 국내 시장금리가 출렁거릴 경우 보험사들은 2021년까지 재무건전성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추가적인 안전장치가 시급하다. 금융당국은 금리 상승시 부채를 시가평가해 줄어든 부채 일부를 가용자본으로 인정해 주거나 현재 150%인 금융감독원의 RBC 권고기준을 일시적으로 완화해 주는 등 보완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