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회 과학문학공모전 당선작
△장편 대상=김백상 '에셔의 손' △중·단편 대상=김초엽 '관내분실' △중·단편 우수상=해당없음 △중·단편 가작 5편=김선호 '라디오 장례식', 오정연 '마지막 로그', 김초엽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김혜진 'TRS가 돌보고 있습니다', 이루카(필명) '독립의 오단계'
△장편 대상=김백상 '에셔의 손' △중·단편 대상=김초엽 '관내분실' △중·단편 우수상=해당없음 △중·단편 가작 5편=김선호 '라디오 장례식', 오정연 '마지막 로그', 김초엽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김혜진 'TRS가 돌보고 있습니다', 이루카(필명) '독립의 오단계'
총 19 건
스무 살의 엄마, 세계 한가운데에 있었을 엄마, 책의 화자이자 주인공이었을 엄마. 인덱스를 가진 엄마. 쏟아지는 조명 속에서 춤을 추고, 선과 선 사이에 존재하는, 이름과 목소리와 형상을 가진 엄마. 지민은 엄마를 상상했다. 어쩌면 한때 그녀는 지민을 닮았을지도 모른다. 그녀도 아이를 가져서 설렜을까. 사랑해주겠다고 결심했을까. 좋은 것만 보고, 좋은 것만 주겠다고 생각했을까. 그렇게 지민 엄마라는 이름을 얻은 엄마. 원래의 이름을 잃어버린 엄마. 세계 속에서 분실된 엄마. 그러나 한때는, 누구보다도 선명하고 고유한 이름을 가지고, 이 세계에 존재했을 김은하 씨. 지민은 본 적 없는 그녀의 과거를 이제야 상상할 수 있었다. 그녀를 용서하거나 용서를 구할 생각은 없다. 그러기에는 너무 늦었다. 한때 그녀가 누구였건, 지민과 관계 맺었던 은하는 그녀에게 한 번도 제대로 된 사랑을 준 적 없는 형편없는 엄마였다. 살아있는 동안 너무 많은 상처를 주고받았다. 하지만 해야 할
애초에 엄마가 한때는 다른 일을 했을 거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지민이 생각하던 엄마는 언제나 집 안에서 무기력한 얼굴을 하고 있던 모습이었지, 밖에 나가고 어딘가에 소속되어 그녀의 이름이 쓰인 무언가를 만들어 낼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왜 하지 못했을까? 당연히 은하에게도 지민을 낳기 전의 삶이 있었을 것이다. 우울증이 재발하기 전, 아이라는 족쇄에도 걸리지 않고, 무언가를 진심으로 사랑했던 때가. 지민의 표정이 어두워지는 것을 본 현욱이 덧붙였다. “어차피 출판사는 다 망해가고 있었어. 미디어 회사들에 모두 통합되어서, 종이책만 출간하는 곳은 사양 산업이 된 지도 한참이었고.” 지민은 멍하니 엄마의 이름을 쳐다보았다. “뭐, 버티고 있었으면 일 년, 아니면 이 년쯤 더 일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게 의미가 있는 것 같지는 않다. 하필 그때 출산휴가를 낸 너희 엄마가 우선순위에 올랐을 뿐이지. 그게 네 탓은 아니었어.” 현욱은 지민의 표정이 굳는 것을
“왜 만나려는 거냐?” 현욱이 물었다. 지민은 말문이 막혔다. 현욱은 무신경하게 말을 이었다. “살아있는 동안 이미 서로에게 상처를 많이 주었다고 생각하는데. 그냥 그대로 놔두는 게 나을 수도 있어.” 이제 와서 마치 엄마를 생각해주는 것처럼 이야기하다니. 지민은 현욱에게 무어라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입을 다물었다. 사실 지민도 그렇다. 처음부터 엄마를 간절히 만나고 싶어 했던 것은 아니다. 시작은 충동에 가까웠다. 임신 때문에 호르몬이 변해서 지나치게 감상적으로 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가 분실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무언가 달랐다. 지민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직도 엄마에 대해서 모르는 게 너무 많아서요.” 엄마는 좋은 엄마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래도, 그렇게 원래 없었던 존재처럼 사라져서는 안 되는 거라고, 지민은 생각했다. 현욱은 지민을 집에 딸린 다락방으로 데려갔다. 그곳에 엄마의 유품을 보관해두었다고 했다. 그가 엄마의 흔적을 모두 내다 버렸을지도
현욱은 여전히 전화를 받지 않았다. 지민은 현욱의 집을 직접 찾아가기로 했다. “괜찮겠어?” 같이 가주겠다는 준호의 제안에 지민은 고개를 저었다. 대답하든 대답하지 않든 그곳으로 가겠다는 문자 메시지를 남기고, 아빠가 살고 있을 집으로 향했다. 마지막으로 이사했던 곳은 도시 외곽에 있는 작은 주택이었다. 외곽의 오래된 도로를 달려 현욱의 집으로 향하는 길은 무척이나 길게 느껴졌다. 현욱에 대한 기억은 엄마보다도 더 적게 남아 있다. 그는 늘 일을 하느라 바빴다. 엄마의 상태가 악화된 이후에는 그녀를 돌보기보다 집에 들어오지 않는 편을 택했다. 지민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는 집에서 돈을 버는 유일한 사람이었고, 지민이나 유민에게 무관심 이상의 폭력을 가하지는 않았다. 지민은 현욱을 없는 아빠라고 생각했다. 집 앞에 도착하기 전까지, 몇 번이나 방향을 돌릴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초인종을 누른 다음에는 목이 바짝 말랐다. 여기까지 찾아왔는데도 혹시 만나는 것을 거절하면 어쩌나 하
유민이 어색하게 웃었다. “그야… 우린 별로 사이좋은 가족도 아니었잖아.” “하지만, 엄마랑 우리는 이십 년을 같이 살았는데. 어떻게 아무 흔적이 없지.” “그게 중요한가? 이제 와서 뭘 새삼스레 그래.” 유민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지민이 갑자기 그러는 이유를 알 수 없다는 듯한 태도였다. 설명할까. 짧은 고민을 하는 사이에, 유민이 무신경하게 덧붙였다. “송현욱한테 연락해봐. 양심이 있으면 뭐라도 갖고 있겠지.” 영상 통화를 종료한 지민은 힘이 빠져서 소파에 주저앉았다. 이제 와서 엄마를 동정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그녀는 지민과 유민을 정서적으로 학대했고, 제대로 된 사랑을 준 적도 없었다. 본인 스스로도 고립된 세계로 밀어 넣었다. 하지만 엄마를 그렇게 고립시켜 버린 것들이 대체 무엇이었는지 궁금했다. 그녀에게 남은 것은 왜 지민뿐이어야 했을까. 그럼으로써 세상에 단 하나도 흔적을 남기지 못하도록 만든 상황은, 필연적이었던 걸까. 그건 전부 그녀의 조울증 때문일까. 엄마는 지금
그날 퇴근해서 집에 있던 엄마의 유품 상자를 꺼냈다. 엄마가 죽은 이후에 현욱이 보낸 상자였다. 잡동사니들이 들어있다는 것만 알았지, 무엇이 들어있는지 제대로 볼 생각도 하지 않았었다. 이제야 이 상자를 열어보게 될 거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마인드 업로딩이 과거의 장례 문화와 봉안당을 대체한 이후로, 유품을 납골함 옆에 두거나 소각하는 문화는 사라졌다. 대개는 간직할 가치가 있는 물건들만 남기고 폐기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현욱이 굳이 상자에 가득 담길만한 물건들을 보내온 이유는 아마 어떤 물건이 남아있는지 제대로 살펴볼 의지도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상자에 담긴 물건들은 대개 엄마가 살아있던 시절에 사용하던 물건들이었다. 코트와 모자, 니트 스웨터를 보자 엄마가 죽은 계절이 겨울이었다는 것이 떠올랐다. 그때 지민은 지구의 남반구에 있었다. 찌는 듯한 더위 속에서 격무에 시달리다가 한 장의 부고 소식을 메일로 받았을 때는, 엄마에 대한 어떤 원망도 그리움도 다 지워졌
지민이 설명을 기다리며 눈을 깜빡이자, 남자는 헛기침을 몇 번 하더니 장황한 설명을 시작했다. 이미 지민도 들어서 알고 있는 대로, 마인드는 단순한 데이터의 묶음이 아니다. 마인드 업로딩이 사후에만 가능한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아직 뇌의 시냅스 패턴이 어떻게 자아를 구축하는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었다. 마인드 업로딩은 뇌의 시냅스 패턴을 직접 고해상도로 스캔하여, 패턴을 그대로 시뮬레이션으로 구현하는 방식이다. 스캔 과정에서 원래의 뇌는 손상되므로 업로딩은 뇌사 상태나 사망 선고가 내려진 사람, 그리고 생존 가능성이 없다고 판정받은 환자들만을 대상으로 시행되고 있었다. 과학자들은 마인드 시뮬레이션을 구현하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그 내부의 개별적인 데이터를 이해하는 데에는 아직 다다르지 못했다. 일반적인 데이터와는 다르게 물리적인 뉴런 세포는 근접한 모든 뉴런에 상호 연결이 가능하므로, 이론적으로 인간의 뇌가 포함하는 연결은 수십조 개가 넘는다. 마
엄마의 흔들리던 시선이 지민을 향했다. 어떻게 그런 말을? 또 그렇게 반응할 것이 뻔하다. “난 엄마가 해주는 밥이나 빨래, 설거지 같은 거 필요 없어. 굶어도, 집이 더럽고 냄새나도, 그냥 엄마랑 떨어져 있는 게 더 좋아. 엄마 노릇? 언제 엄마 노릇을 했어? 밥을 차려주면 나한테 내내 소리를 질러도 그게 엄마 노릇이 되는 건가?” 빈정거리는 지민의 앞에서 문득 엄마의 표정이 변했다. 그녀가 그렇게 상처받고 슬픈 표정을 지을 때마다, 지민은 다시 가슴을 팍 쑤시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엄마의 뺨을 타고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녀는 언제나 스스로를 피해자로 만들었다. 그럴 거면 우리에게 소리를 지르지 말지. 아빠에게 저주의 말을 퍼붓지 말지. 집 안의 유리란 유리는 다 깨고, 벽에 피를 묻히고, 우리가 한 시간만 전화를 받지 않아도 비명을 지르는 대신 그냥 떨어져 살지. 유민이가 집을 나갔을 때라도 정신을 차리지. 멀쩡할 때는 사랑한다는 말을 했다가 돌아서는 순간 너 때문에 인생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 심사과정에서 역경의 관문 중 하나는 이 당선자를 어떻게 할 것인가였다. 심사위원들이 블라인드 당선작 2편을 뽑은 뒤 수상자가 같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소위 ‘멘붕’에 빠진 것이다. 공모전에서 흔한 일이 아니었기에 고심이 적지 않았다. 결론은 명쾌했다. ‘상을 줄 수밖에 없는 훌륭한 작품’이라는 의견이 모이면서 공모전 사상 처음으로 동명 다작 수상자가 나왔다. 그 주인공은 중단편 대상작 ‘관내분실’, 가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두 편을 쓴 김초엽(여·24)씨다. 예심을 맡았던 심사위원 김보영 작가는 “문장과 구성, 아이디어, 장르적 이해, 과학적 정밀함 모두 탁월하다”며 만점을 줬다. 다른 심사위원들의 평가도 다르지 않았다. 특히 어떤 작품에서도 놓지 않았던 흠결이나 부족함에 대한 지적은 이 작가 작품에선 단 한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심사위원들은 시상식에서 “우아하고 아름다운…”이라는 표현까지 사용했다. “제가 평소 존경하는 심사위원들에게 그런
엄마와 딸이라는 관계는 흔히 애증이 얽힌 사이로 표현된다. 예컨대 딸을 사랑하지만 자신의 모습을 투사하는 엄마와 그런 엄마를 벗어나고 싶어 하며 엄마의 삶을 재현하고 싶지 않은 딸. 착한 아이 콤플렉스를 앓는 딸과 딸에 대한 애정을 그릇된 방향으로 표현하는 엄마. 여성으로 사는 삶을 공유하지만 그럼에도 완전히 다른 세대를 살아야 하는 모녀 사이에는 다른 관계에는 없는 묘한 감정이 있다. 대개는 그렇다. 한때는, 지민도 엄마와 자신의 관계가 그랬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그랬던 시기는 일찍 끝나버렸다. 그게 언제부터였는지 지민은 정확히 짚어낼 수 없다. 언젠가 엄마가 어린 시절 양극성 장애를 앓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아버지가 그런 병력을 알면서도 엄마와 결혼한 건, 그녀의 정신질환이 단지 어렸을 때의 일시적인 문제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엄마의 병은 지민을 출산한 이후에 재발했다. 많은 산모들이 출산 직후에 산후우울증을 겪는다고 한다. 대개는 일시적인 현상이다
아무리 그가 그렇게 말한다고는 해도, 지민의 입장에서는 엄마의 데이터는 접속할 수 없다면 소멸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지금 지민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는 의문이 있다. 만약 동생이나 아버지 중 누군가가 엄마의 인덱스를 지웠다면, 왜 하필 소멸이 아닌 실종을 택한 것일까. 다음 순간 한 가지 떠오른 답이 있었다. 모든 유족의 동의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허점을 이용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 관리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유족분들 사이의 합의가 전혀 없으셨던 것 같군요. 죄송합니다. 이런 상황을 미처 염두에 두지 못했습니다. 보통은 마인드를 소멸하는 것으로 처리하다보니….” 설마, 사과하는 것으로 본인들의 잘못은 더는 없다고 넘어갈 생각인가? 따져 물으려던 차에 관리자의 옆에 서 있던 직원이 갑자기 남자에게 무언가를 보여주었다. 패드에 띄운 자료는 반대편에서는 잘 보이지 않았다. 지민과 준호는 맞은 편의 두 사람이 소곤거리며 대화를 하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면서, 속으로 다른 생각
준호의 차를 타고 도서관으로 향하는 길은 조용했다. 준호는 어제 하루 종일 지민에게 단순한 시스템 착오일 테니 걱정할 것 없다며 위로한 차였기에 더더욱 그랬다. 도서관에 도착해 연락을 받고 왔다고 말하자 사서가 자리에서 일어나 누군가를 데려왔다. 마르고 피곤해 보이는 얼굴을 한 남자였다. 그는 자신을 이 도서관의 데이터베이스 관리자라고 말했다. 지민과 준호는 그를 따라 도서관 안쪽에 딸린 작은 방으로 향했다. 방문객을 접대할 때 사용하는 듯한 공간이었다. 소파 두 개와 테이블이 놓여 있었고, 몇 종류의 간식거리들이 갖춰져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된 거죠?” 한 여직원이 커피와 쿠키가 담긴 트레이를 들고 방으로 들어섰을 때, 지민은 결국 참지 못하고 먼저 묻고 말았다. “우선 여기 앉으세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이 도서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합니다.” “관리를 잘못하신 거 아닌가요?” 지민이 그의 말을 잘랐다. 책임을 회피하려는 의도의 중언부언이라면 딱 질색이었다. 남자는 굳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