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4.0'을 열자
대한민국이 맹목과 궤변, 막말 등으로 가득한 '타락한 진영의식'에 갇혀있다. 타락한 진영은 시위와 농성, 폭력 등을 일으키며 생산적 정치를 가로막는다. 이를 그대로 방치하면 대한민국에 미래는 없다. 타락한 진영을 없애고 '건강한 진영의식'을 회복해 대화와 협상, 타협 등이 가능한 정치를 만들어야한다.
대한민국이 맹목과 궤변, 막말 등으로 가득한 '타락한 진영의식'에 갇혀있다. 타락한 진영은 시위와 농성, 폭력 등을 일으키며 생산적 정치를 가로막는다. 이를 그대로 방치하면 대한민국에 미래는 없다. 타락한 진영을 없애고 '건강한 진영의식'을 회복해 대화와 협상, 타협 등이 가능한 정치를 만들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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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모·박사모로 시작된 '팬덤', 어쩌다 국민분열 중심에 섰나━‘팬덤 정치’가 변질됐다. 자발적인 정치 운동이 ‘팬덤’ 간 사활을 건 혈투로 번지면서다. 극도로 예민해진 이들에게 수단과 방법은 중요하지 않다. 사실관계 파악과 이해관계 조정을 위한 노력은 곧 ‘해당’ 행위다. 이들은 개인의 이익과 거리가 먼 싸움에 투신한다. 축구 대표팀을 응원하듯, 특정 정치인과 세력에 감정을 이입한다. 각종 의혹 제기되거나 해소되는 데 일희일비한다. ‘월드컵 정치’의 시작이다. 정치권은 웃는다. 정치에 과몰입한 ‘팬덤’이 특정 세력의 안위를 위해 투신하기 때문이다. 정치권은 ‘팬덤’이 자기 세력의 이익에 앞장서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본다. ◇자발적 정치 참여…‘팬덤 정치’ 시작은 좋았다 정치권 ‘팬덤’의 기원은 크게 여권의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모임)와 야권의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로 양분된다. 이후 새로운 정치인의 등장과 굵직한 사건에 따라 분화, 확장, 통합을 반복했다.
━맹목, 궤변, 막말…'타락한 진영의식'에 갇힌 대한민국━대한민국 정치가 실종됐다. 보수와 진보, 중도 등 진영의 건강한 논리, 합리적 의식이 ‘타락’한 때문이다. 결과는 갈등과 분열이다. 국가는 망가지고 피해는 온전히 국민의 몫이다. 진영은 공기와 같다. 우리 삶, 우리 사회에 존재한다. 보수와 진보 등 진영은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 살아가는 방법, 바꾸는 방법 등을 말한다. 더 좋은 삶,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이념·가치·관점의 총합이다. 진영의 대표인 정당은 당헌·당규에 진영의 가치를 반영한다. 합리와 상식을 토대로 한다. 건강한 ‘진영 논리’ ‘진영 의식’의 결과물이다. 하지만 현실은 반대다. ‘타락한’ 진영 의식·진영 논리가 진영을 오염시킨다. 해악적이다. ‘궤변’을 무기삼아 진영의 가치를 왜곡한다. 합리적 비판은 맹목적 지지에 밀린다. 타락한 진영 의식은 정치마저 쫓아낸다. 타협과 협의는 설 곳이 없다. 정치가 다수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라면 타락한 진영 의식은 배제·배
지난해 서초동과 광화문엔 각기 다른 구호를 외치는 시민들이 몰렸다. ‘타락한 진영 의식’이 만들어 낸 2개의 광장이다. 그런데 이 광장엔 대한민국의 오늘과 내일을 살아갈 1990년대생, 20대가 빠졌다. 20대는 건전하지 않은 진영에 ‘무관심’으로 일관한다. 보수와 진보의 특정 진영에 편중된 어느 한 쪽도 편들지 않는다. 한국갤럽이 지난 2월20일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18~29세 가운데 지지정당이 없는 ‘무당층’은 47%에 달한다. 20대 청년 2명 중 1명은 국회 안 어느 편에도 공감하지 않는다. ━◇정치에도 ‘Show me the money’…진영 대신 ‘실용성’ 따지는 20대━20대의 관심사는 ‘자신의 삶과 미래’다. 이들은 진영에 개의치 않는다. ‘그래서 대체 어느 편이 이익을 가져다 주는지’를 묻는다. 학업·직업상 경쟁에서 게임의 룰을 지키는 ‘합리성’에 엄격한 것도 90년대생의 특성이다. 대내·외 경기 악화로 지속되는 고용 한파, 치열해진 입시·취업 경쟁 등이 주원인
보수, 진보 등 진영은 가치를 토대로 논리를 갖춘다. 선악의 문제가 아니다. 경쟁의 관계다. 하지만 어느 순간 서로를 ‘적’으로 규정하고 파괴하려는 흐름이 생긴다. 타락한 진영 의식이다. 궤변, 막말 등으로 무조건적 믿음을 만들며 선전·선동한다. 대화를 거부한다. 타락한 진영 의식이, 오염된 진영 논리가 대한민국을 병들게 했다. 어느새 만성화되고 있다. 만병통치약은 없다. 행태, 제도, 의식 등 전반의 노력이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정치인·시민사회·언론이 개혁에 뜻을 모을 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민주정치의 관건은 ‘설득’━민주주의는 다수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그렇다고 수적으로 많다는 게 옳고 그름을 의미하지 않는다. 다수는 언제나 변한다. 또 누구도 전능하지 않고, 무능하지 않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누군가 전능하다면 민주주의는 필요없다. 진영이 ‘경쟁’, ‘타협’ 등을 통해 대안을 찾는 것은 민주주의 대표적 모습이다. 반면 타락한 진영 의식은 항상 옳다고
‘빠’들의 전성시대다. 한 때 사회적 ‘멘토’ 역할을 했던 이들이 ‘선전·선동’의 전위에 섰다. 매일같이 쏟아지는 다층적·다원적 현안 앞에서 시민들은 그들의 책과 목소리를 찾았다. “내가 하고 싶었던 얘기를 속 시원히 해준다”며 대중은 열광한다. ‘멘토’ 현상의 종말은 ‘빠’들의 성장과 무관치 않다. 각 분야 ‘빠’들이 그렇듯, 내용은 물론 표현까지 과격하다. 내 삶에 영향을 주는 길잡이가 부재한 탓에 정치와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진보와 보수의 진영 갈등은 깊어진다. ━◇‘오빠 부대’ 거쳐 ‘빠돌이’ ‘빠순이’로…정치권으로 전이 ━‘빠’는 연예인 팬클럽에서 유래했다는 목소리가 설득력이 있다. ‘오빠 부대’를 거쳐 1990년~2000년대초 남성 팬은 ‘빠돌이’, 여자 팬은 ‘빠순이’로 변주했다. ‘빠’는 부정적 함의를 지닌다. 이들은 온·오프라인 공간에서 자신의 ‘우상’에 대해 맹목적 신뢰를 보낸다. 반대는 ‘적’이다. 간혹 ‘빠돌이’, ‘빠순이’ 간 큰 싸움까지 벌어
‘팬덤 정치’가 변질됐다. 자발적인 정치 운동이 ‘팬덤’ 간 사활을 건 혈투로 번지면서다. 극도로 예민해진 이들에게 수단과 방법은 중요하지 않다. 사실관계 파악과 이해관계 조정을 위한 노력은 곧 ‘해당’ 행위다. 이들은 개인의 이익과 거리가 먼 싸움에 투신한다. 축구 대표팀을 응원하듯, 특정 정치인과 세력에 감정을 이입한다. 각종 의혹 제기되거나 해소되는 데 일희일비한다. ‘월드컵 정치’의 시작이다. 정치권은 웃는다. 정치에 과몰입한 ‘팬덤’이 특정 세력의 안위를 위해 투신하기 때문이다. 정치권은 ‘팬덤’이 자기 세력의 이익에 앞장서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본다. ━◇자발적 정치 참여…‘팬덤 정치’ 시작은 좋았다━정치권 ‘팬덤’의 기원은 크게 여권의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모임)와 야권의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로 양분된다. 이후 새로운 정치인의 등장과 굵직한 사건에 따라 분화, 확장, 통합을 반복했다. 초기 ‘팬덤’은 긍정적 측면이 있었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정치 참
4·15 총선을 앞두고 머니투데이가 제시한 화두 ‘대한민국 4.0’은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말하기 위한 키워드다. 구체제, 낡은 정치 문법으로는 미래를 살 수 없다는 절박함에서 시작됐다. ━◇대한민국 1.0부터 4.0까지━해방 이후 수립된 대한민국 정부의 토대는 약했다. ‘민주공화국’으로 출범한 ‘대한민국 1.0’ 시대는 열악했다. 해방 전후 좌·우파 대립은 이어졌다. 건국 이념 등을 두고 진영간 다툼이 끊이지 않았다. 정치는 이해 갈등 조정이 아닌 체제 선택 혹은 체제 경쟁을 부추기는 역할을 했다. 전쟁 중에도 국회의원 선거를 할 정도로 ‘형식’은 중시됐지만 부정선거 등 ‘내용’은 저급했다. 1961년 박정희 정권 이후 30년은 군부독재와 산업화로 정리된다. ‘대한민국 2.0’은 철저히 국가주도의 시대였다. 정치는 타협이 아닌 권력의 폭력으로 행사됐다. 희소한 자원을 배분하는 정치의 역할을 ‘억압적’으로 실천했다. 정치는 산업화의 수단일 뿐이었다. 1987년 전두환 정권이 서서
타락한 진영 의식은 이성의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다. 무조건적인 믿음만 강요한다. 오염된 진영 논리는 진영이라는 집단의 논리를 한 개인이 자신의 논리로 치환하는 걸 넘어 맹신한다는 걸 의미한다. 합리적 토론이나 논리적 공방 없이 무조건 상대 진영을 비난하게 만든다. 진영 내 철학이 빈곤한 탓이다. 가치 논쟁으로 진영이 성숙한 사례가 거의 없다. 한국 정치는 대중적 지지와 카리스마를 가진 정치인에 의해 좌지우지돼 왔을 뿐이다. 선거 시점에 맞춰 정계개편이 이뤄지는 등 ‘인물정당’, ‘선거정당’이 출몰해왔기 때문에 공공 철학의 기반이 약할 수밖에 없다.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약 200년의 역사를 가진 영미권의 현대 정당들은 다양한 계급과 대중 조직의 이익을 수렴해 자신들의 노선을 형성했다”며 “그러나 우리나라의 정당은 일관된 노선 대신 정치 상황 등에 맞춰 표심에 따라 유동적 모습을 보였다”고 지적했다. ━◇철학이 빈곤한 보수와 진보…자정작용 사라졌다━보수와 진보, 각 진영 간
대한민국 정치가 실종됐다. 보수와 진보, 중도 등 진영의 건강한 논리, 합리적 의식이 ‘타락’한 때문이다. 결과는 갈등과 분열이다. 국가는 망가지고 피해는 온전히 국민의 몫이다. 진영은 공기와 같다. 우리 삶, 우리 사회에 존재한다. 보수와 진보 등 진영은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 살아가는 방법, 바꾸는 방법 등을 말한다. 더 좋은 삶,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이념·가치·관점의 총합이다. 진영의 대표인 정당은 당헌·당규에 진영의 가치를 반영한다. 합리와 상식을 토대로 한다. 건강한 ‘진영 논리’ ‘진영 의식’의 결과물이다. 하지만 현실은 반대다. ‘타락한’ 진영 의식·진영 논리가 진영을 오염시킨다. 해악적이다. ‘궤변’을 무기삼아 진영의 가치를 왜곡한다. 합리적 비판은 맹목적 지지에 밀린다. 타락한 진영 의식은 정치마저 쫓아낸다. 타협과 협의는 설 곳이 없다. 정치가 다수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라면 타락한 진영 의식은 배제·배타의 원리를 작동시킨다. 타락한 진영 의식은 다른 진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