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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정세, 경제, 기술 등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이슈를 깊이 있게 분석하고, 현장의 목소리와 흐름을 전달합니다. 복잡한 글로벌 이슈를 쉽게 풀어내 독자들이 넓은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도록 돕는 코너입니다.
국제정세, 경제, 기술 등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이슈를 깊이 있게 분석하고, 현장의 목소리와 흐름을 전달합니다. 복잡한 글로벌 이슈를 쉽게 풀어내 독자들이 넓은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도록 돕는 코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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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 경제의 금리가 제로에 가까웠던 시절, 경제학자들은 금리의 하락이 수십 년, 수백 년 또는 수천 년에 걸친 추세의 산물인가를 두고 논쟁을 벌였다. 오래 전 일도 아니건만 이젠 금리가 얼마나 오랫동안 높은 상태를 유지할 것인가가 화두다. 금리에 대한 장기 기대치를 반영하는 미국 10년물 국채 수익률은 최근까지 1% 미만이었으나 10월 18일, 2007년 이후 최고치인 4.9%를 기록했다. 같은 날 30년물 국채 수익률은 5%를 넘었다. 당시 뱅크오브아메리카의 애널리스트들은 금리가 "5000년 중 최저치에서 벗어났다"고 선언했다. 다소 격앙된 듯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경제학자, 투자자, 그리고 모두가 금리가 영원히 낮을 것으로 예상하던 시절 끌어썼던 대출을 상환해야 하는 불편한 입장에 처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비슷한 심정이다. 금리가 '더 높게 더 오래' 유지되리라는 확신이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유로존은 2021년에 마이너스 금리를 기록했으나 이제 독일은 10년짜리 국채를
헨리 키신저가 타계했습니다. 지난 5월 100세를 맞아 성대한 생일파티를 가졌고 수많은 언론과 인터뷰를 하면서 '작별인사'를 했던 이 원로 외교가(外交家: 키신저에게는 'diplomat'보다는 고풍스러운 'diplomatist'라는 표현이 어울립니다)는 100년 전 독일에서 유대계 부모 밑에서 태어나 자라다가 1930년대 후반 나치의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이민 갔습니다. 2차 세계대전에 병사로 참전하면서 미국 시민권도 얻고 전쟁이 끝난 후 하버드대에 입학해 정치학을 공부했고, 하버드에서 박사 취득후 교수로 학생들을 지도했습니다. 키신저는 좋게 말하면 실천과 실무에 관심이 많았던 학자, 나쁘게 말하면 권력에 기웃거리는 '폴리페서' 이미지가 미국 학자들 사이에 강합니다. 키신저가 타계한 후 나온 각종 매체들의 부고(obituary) 기사들 역시 호오(好惡)가 확실히 나뉘었습니다. 명분보다는 실제의 성과를 중시하는 정치현실주의(Realpolitik) 이론가이자 실천가로 미중(美中)의 역
나이지리아의 경제 수도 라고스에서는 볶음밥이 인기 있는 메뉴다. 하지만 최근에는 많은 사람들이 볶음밥을 주문하지 않는다고 레스토랑 매니저 토니 알라데코모는 말한다. 고급 비즈니스 지구인 빅토리아아일랜드에 위치한 레스토랑 '그레이매터소셜스페이스'의 지배인 알라데코모는 1년 전 1500나이라(2400원)였던 볶음밥의 가격이 4000나이라(6300원)까지 치솟으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더 이상 저렴하지 않다"고 한다. 나이지리아에서 쌀은 가장 많이 소비되는 식량이며 국민 요리인 졸로프라이스(jollof rice)의 근간이 된다. 그러나 나이지리아 통계청의 최근 데이터에 따르면 수입 쌀 1kg의 가격은 8월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46.34% 상승했다. 나이지리아가 20년 만에 가장 심각한 인플레이션과 씨름하면서 물가가 전반적으로 상승한 가운데, 세계 최대 쌀 수출국인 인도가 생산량 부족과 국내 물가 상승에 대한 우려로 쌀 수출을 단속하면서 쌀 가격이 급등한 것으로 보인다. 작년에 나
미국에 방문하거나 체류하는 동안 독립기념일(Independence Day)을 맞이했던 경험이 있다면 누구나 그 넘쳐나는 불꽃들을 기억할 것이다. 국토의 전역에서 터지는 폭죽의 밝은 빛은 미국 시민이 아닌 이들조차도 축제의 분위기로 빠져들게 하며, 곳곳에서 울리는 '성조기여 영원하라'의 힘찬 노랫소리는 주변 여기저기로 벅찬 감정을 전염시킨다. 한국에서 TV로 중계되던 광복절 기념식의 다소 딱딱하고 건조한 느낌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미국 독립기념일의 반짝이는 불빛은 전혀 새로운 경축의 방식으로 다가온다. 밀집한 군중들이 잔디밭에서 불꽃놀이를 지켜보는 장면은 모두가 하나 되는 흥겨운 정서를 전해 주며, 매년 이런 의례를 거치면서 미국이라는 국가는 새로이 거듭나는 과정을 반복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프래니 최(Franny Choi)가 '좋은 시절을 경축하라'(Celebrate Good Times)에서 그려내는 독립기념일의 풍경은 이런 즐겁고 낭만적인 분위기와는 딴판이다. 2022년에 발간된
35년 전 1월, '강대국의 흥망'의 출간이 세상에 큰 반향을 일으켰는데, 전혀 예상치 못했었던 내 책의 영향은 지금 돌이켜봐도 놀라울 뿐이다. 1987년 말, 내 책의 편집자였던 제이슨 엡스타인은 이 책이 "보통의" 역사 서적과는 판매에 있어서 다른 길을 가게 될 것임을 직감하고 있었다. 그는 미국의 보수주의 지도자인 노먼 포드호레츠가 워싱턴포스트 칼럼에서 내 연구를 맹공격한 것을 보고는 출판사인 랜덤하우스에 책을 더 많이 찍어낼 것으로 지시했다고 말했다. 또 당시 뉴스테이츠먼에 기고한 글에서 크리스토퍼 히친스는 '흥망'이 마치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서 유출된 문서 마냥 서방 각국 각료들과 대사들에게 읽히고 있다고 했다. 2011년 미국 특수부대는 아보타바드 소재 오사마 빈라덴의 은신처를 습격했을 때 빈라덴 서재에서 '흥망' 한 권을 발견하기도 했다. 도대체 이런 일이 왜 벌어졌고, 도대체 왜 이런 식으로 상황이 전개되었던 것일까? 1988년과 1989년은 역사적인 해였다. 전 세
북한이 발사한 정찰위성이 일단 궤도에 진입한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은 두 차례 정찰위성 발사에서 실패한 이후 김정은 위원장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정상회담에서 푸틴이 북한의 로켓 발사에 협조하겠다고 밝혔고, 이번의 세번 째 시도에서 일단 궤도에 올려놓는데 성공했습니다. 당시 정상회담에서 북한은 로켓 관련 기술을 얻고 러시아는 그 댓가로 포탄 등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사용할 무기를 얻었던 것으로 관측되었습니다. 아직 완전한 성공인지는 의견이 분분합니다만, 궤도에 제대로 올라 한반도 상황을 정찰할 수 있다고 해도 카메라 장비의 성능은 높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1차 정찰위성 발사 실패후 우리 당국이 잔해를 수거해 분석해봤더니 촬영장비 수준이 그렇게 높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이번 정찰위성의 발사를 볼 때, 우리는 두 가지를 나눠 봐야 합니다. 하나는 발사체인 로켓입니다. 로켓은 인공위성을 달고 날아오를 수도 있지만, 인공위성 자리에 탄두(彈頭) 즉 폭탄을 달고 날아오르면
사랑을 찾는 것은 나이를 불문하고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특히 60세를 넘긴 남녀에게는 독특한 난관과 결심이 따른다. 75세의 리넷 헐틴과 앵거스 데이비스가 한창 그럴 때다. 리넷은 매사추세츠주 트루로에 거주하며 인근에 딸과 손자가 있다. 앵거스는 차로 6시간 거리에 있는 버몬트주 존슨에 산다. 2년의 장거리 연애는 두 사람 모두를 지치게 만들었다. 둘은 오랜 고민 끝에 해결책을 내놓았다. 리넷은 버몬트로 이사를 가지만 원래 살던 트루로 마을 내 또는 인근의 타운하우스를 임대해 살던 동네를 완전히 떠나지 않도록 할 것이다. "저는 철새가 아닌 텃새 같은 사람이에요. 집은 제 모든 것과 다름없죠." 그는 말한다. 20년 전 이혼했고 집을 직접 수리하는 법을 익힌 그는 "독립성을 포기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고 말한다. 요즘 '황혼의 로맨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72세의 홀아비 제리 터너가 새 아내를 찾는 과정을 담은 ABC의 TV 시리즈 '골든 베첼러' 덕분이다. 이 프로
4~5년 전 어느 날, 나는 스타트업을 창업하기로 결심했다. 당시 나는 20대로 중견급 IT 기업에서 일하고 있었지만 뭘 창업할지 혹은 어떤 분야에 집중하고 싶은지에 대한 전반적인 느낌조차 없었다. 하지만 나는 창업자가 되는 것이 올바른 다음 단계라고 확신했다. 대학에서 나는 인문학 분야를 전공했다. 철학자나 작가가 되고 싶었지만 가난을 감수할 배짱이 없었다. 중상류층에서 탄탄하게 자랐음에도 불구하고--혹은 그 때문에--늘 가난해지는 것이 걱정거리였다. 자본가가 되고 싶다는 나의 열망은 졸업 후 몇 년이 지난 후, 내 모교에서 가르쳤던 전직 교수님의 신간 출판기념회에 참석했을 때 구체화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청중석에서 나를 본 교수님은 수상 경력에 빛나는 작가, 인기 있는 서점의 주인, 저명한 평론가 등 여러 저명한 문인들과 함께 하는 호화로운 만찬에 나를 초대했다. 유명 작가들에 대해 수다를 떨며 즐거운 저녁 시간을 보냈지만 계산서가 도착했을 때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대신 우리
드디어 세계 최강국 미국과 중국의 지도자가 만났습니다.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과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은 샌프란시스코에서 개최된 APEC 정상회의 참석을 계기로 미중정상회담을 갖고 양국 현안을 논의했습니다. 바이든은 1년 남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미국이 소홀히 할 수 없는 국제문제 현안을 껴안고 있습니다. 시진핑은 무엇보다 경제가 문제입니다. 리더십의 위기를 느끼고 있는 두 사람이 우역곡절 끝에 한 자리에 앉았습니다. 이번 회담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우선 홍보와 의전이었습니다. 중국측은 회담 전 시진핑 주석이 젊은 시절 샌프란시스코를 방문해 금문교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을 공개했습니다. 우호적인 제스처입니다. 그리고 정상회담과 관련한 의전을 놓고 중국측이 많은 것을 요구했다고 합니다. 멀리까지 간 시 주석이 미국측의 환대를 받았다는 이미지를 중국인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미국측의 환대 이미지를 만드는데 집착했던 것은
지난 10월 7일 하마스가 수백 명의 이스라엘 민간인을 살해한 몇 시간 뒤 이 기습공격을 기획한 인물이 드물게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하마스의 SNS 채널로 내보낸 영상에는 하마스 군사지도자 무함마드 데이프의 실루엣이 나타났고, 이 실루엣 뒤로 미리 녹음해둔 육성이 흐르며 성명을 발표하고 있었다. 그의 묵직한 목소리는 1400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테러공격을 선언하면서도 이상할 정도로 차분했다. 하마스는 이슬람 조직이다. 하지만, 데이프의 성명은 종교에 대해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그는 "레바논, 이란, 예멘, 이라크, 시리아의 형제 이슬람 저항세력이 싸움에 참여해달라"고 요청했지만, 다른 종교를 가진(또는 가지지 않은) 전 세계 시민들에게도 시위를 벌여달라고 부탁했다. 성명서를 다 읽은 후 그의 모습은 사라졌고 공포만 남겨졌다. 현재 살아있는 사람들 중에 데이프만큼 이스라엘인을 많이 죽인 사람은 없다. 그는 싸움 중 입은 부상을 치료하던 시기를 빼고 1990년 중반부터 하마스
4월 14일, 한 50세 스페인 여성이 안달루시아 언덕 70미터 지하에 있던 임시 거주지에서 나왔다. 베아트리스 플라미니는 이날까지 500일 동안 자연광도 들어오지 않고 뉴스도 들을 수 없으며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도 볼 수 없는 동굴에서 살아보는 실험을 하면서 외부와 단절되어 있었다. 플라미니는 암벽 등반과 등산 분야에서 유명한 익스트림 스포츠 선수로 오랫동안 "경험한 사람이 거의 없는 일"을 찾아다녔다. 그라나다대학, 알메리아대학, 무르시아대학의 시간생물학자들이 보기에 플라미니의 탐험은 하루를 구성하는 일상적인 신호의 자극을 받지 않는 인체를 관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일상 생활의 알람시계, 업무 일정, 예약은 자유롭게 흘러갈 수 있는 자연의 세계에 경직된 틀을 씌우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하지만 생태계에도 이와 비슷한 시계들이 넘쳐난다. 기원전 4세기에 알렉산더 대왕 휘하에 있던 한 배의 선장은 타마린드 잎이 밤에는 닫혔다가 해가 뜨면 열리기 시작해서 한낮이 가까
토니 모리슨은 오늘날 가장 널리 읽히는 작가이자 가장 영향력있는 미국작가중 한 명이다. 흑인여성작가로서 모리슨은 그동안 미국문단에서 상대적으로 비중이 낮았던 흑인문화와 역사, 특히 인종차별과 젠더억압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리는 흑인여성의 이야기를 시적인 문체로 진솔하게 그려내는 것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대중적 인기와 비평적 찬사를 동시에 누린 모리슨은 1993년 흑인여성으로서는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고 『빌러비드(Beloved)』로 1988년에 퓰리처상을 받았다. 2019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모리슨은 11권의 소설을 발표했으며 여러 에세이집과 아동문학작품을 남겼다. 또한 1989년부터 프린스턴 대학에서 교편을 잡은 그녀는 2006년 명예교수로 퇴직할때까지 인문대 학장을 지내기도 했다. 2012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그녀에게 "자유훈장(Medal of Freedom)"을 수여했으며 2019년 모리슨의 임종을 접하고 "그녀는 국보(national treasure)"였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