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DO
국제정세, 경제, 기술 등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이슈를 깊이 있게 분석하고, 현장의 목소리와 흐름을 전달합니다. 복잡한 글로벌 이슈를 쉽게 풀어내 독자들이 넓은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도록 돕는 코너입니다.
국제정세, 경제, 기술 등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이슈를 깊이 있게 분석하고, 현장의 목소리와 흐름을 전달합니다. 복잡한 글로벌 이슈를 쉽게 풀어내 독자들이 넓은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도록 돕는 코너입니다.
총 726 건
할리우드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드라마 크리에이터, 스튜디오 사장, 에이전트, 사업자에게 전화를 걸어 지금 텔레비전 산업의 상태가 어떠냐고 물으면 이런 답변을 듣게 될 것이다. "지금은 이 매체의 역사상 비교 대상이 없을 정도로 최악의 시기입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암울합니다." "끔찍한 재앙이죠, 안그래요?" "시스템 전체가 망가진 것 같습니다." "기존 업체들이 탁월하게 성공적었던 비즈니스 모델을 갖고 있었는데 잘 될지 아닐지 알 수 없는--그러나 거의 확실히 기존 모델만큼 잘 되지는 않을--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에 찬동하면서 기존 모델을 파괴해버렸습니다." "모든 것이 빅테크가 되었어요. 즉 '실제로 돈을 벌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주가 상승만 보여주면 돼요'라는 식의 아마존 사업 모델 말이에요. 모두가 '좋아, 그게 나아가야 할 방향인 듯하군'하고 말했지만 실은 '모두 자살 의식을 치르자. 진정으로 돈을 찍어내듯 벌어준, 현대사의 혁신이었던 케이블 텔레비전 송출 시스템을 끝장내
20세기 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상은 아마도 통제되지 않은 인구 증가가 기근과 전쟁, 전반적인 자원 부족으로 이어지리라는 토머스 맬서스의 가설일 것이다. 1910년대 보스턴은 국가 주도 우생학 운동을 추진하던 자문단의 본거지였으며 우생학은 이후 유럽에서 많은 고통을 야기했다. 1912년 하버드대학교 명예 총장이 "나약한 정신의 소유자"에 대한 "강제 불임 수술"을 촉구했을 때, 당시 진보적인 엘리트 중 누구도 이에 반발하지 않았다. 1980년, 중국은 악명 높은 한 자녀 정책을 시행하면서 맬서스 이론을 역사에 구현했다. 맬서스의 1798년작 '인구의 원리에 관한 에세이'는 여러 가지 이유로 잘못되었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세상의 '하층 계급'이 자원을 소모하리라는 그의 생각에 내재된 인종차별이 문제였다. 서품을 받은 성직자였던 맬서스는 "기아와 질병은 인구 폭발을 막기 위해 하느님께서 실시하신 것"이라는 독실한 견해를 갖고 있었는데 이 또한 잘못된 것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2021년 9월 중국의 지도자 시진핑이 "중요한 연설"을 했을 때, 그 내용은 듣기 좋은 상투적 표현을 모아 놓은 것 같았다. 그는 인간과 자연의 조화가 필요하며 경제발전이 모두에게 혜택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내용이 별로 없어서 세계 언론은 대체로 이 연설을 무시했다. 하지만, 이후 그 내용이 구체성을 점차 갖게 됨에 따라 그 연설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띠게 되었다. 시진핑이 그 연설에 기반해 '글로벌 발전 구상'이라는 새로운 계획을 제안했기 때문인데, 이 구상은 미국이 주도하는 서방의 세계질서에 도전하는 대안적 세계질서를 위한 중국측 청사진의 기초로 인정되고 있다. 표면적으로 '글로벌 발전 구상'은 개발도상 국가들을 위해 발전을 도모하고 빈곤을 줄이고 보건을 개선하는 중국 주도의 계획이다. 하지만, 시진핑이 제안한 두개의 후속 구상, 즉 '글로벌 안보 구상'과 '글로벌 문명 구상'과 함께 '글로벌 발전 구상'은 글로벌사우스의 지지를 모아내기 위한 중국의 가장 대담한 움
니제르에서 군사쿠데타가 발생한지 얼마되지 않았는데, 중서부 아프리카의 가봉에서 군사쿠데타가 또 발생했습니다. 가봉은 니제르와 마찬가지로 프랑스어를 쓰는 프랑스식민지였던 나라입니다. 2020년 이후 아프리카에 8건의 쿠데타가 있었는데, 짐바브웨를 제외한 7개 국가가 프랑스 식민지였던 나라입니다. 영국과 달리 프랑스는 식민지였던 나라에 직접 개입하는 외교정책을 유지하고 있는데, 가봉에도 프랑스군이 주둔하고 있습니다. 가봉은 한국에도 유명한 봉고 가문이 56년간 통치해왔습니다. 현재 가택연금 상태인 2대째 대통령인 알리 봉고는 3선에 도전했고, 군사쿠데타 터지기 몇 시간 전에 대통령 당선을 선언했습니다. 그런데, 이 선언이 있자마자 군부가 알리 봉고를 축출하고 쿠데타 성공을 선언한 것입니다. 이번 선거일 전후로 해서 가봉에서는 인터넷이 먹통이 되고 통금이 실시됐으며 해외선거감시단의 참관이 금지됐습니다. 해외언론은 야당후보가 압도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고 보도했는데, 선거결과는 알리 봉고의
"제가 처방을 해드리면 환자분이 제가 지금까지 처방한 사람 중 가장 마른 사람일 겁니다." '가장 마른' 이란 표현은 누군가 나더러 하는 것으론 익숙하지 않았다. 엄밀히 말하자면 나는 뚱뚱하진 않았지만 아슬아슬했다. 키 152cm에 몸무게는 69kg, 체질량지수(BMI)는 29.7로, 의학적으로 비만으로 간주되는 30에서 약간 모자란 정도였다. 문제는 2021년 10월 담당 의사에게 메일을 보낸 그날, 내 상황은 절망적이었다는 거다. 옷이 맞지 않았다. 카메라 앞에 서야 하는 불운한 순간을 맞고 나면 사진 속 내 모습을 보기가 고통스러웠다. "살찐 돼지"라는 독자 댓글이 적잖이 보였고 애써 떨쳐내려고 해도 그 말은 내게 상처였다. 이 에세이의 슬러그는 '뚱뚱한 칼럼니스트'(fat columnist)인데 이는 이제 내가 뚱뚱했다는 사실을 쾌활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가 됐음을 뜻하기도 한다. 어린 시절 나는 깡마른 아이였다. 그런데 중학교 때 가정 과목을 맡았던 휘트먼 선생님은 예지
400년도 더 전에 네덜란드의 작은 마을 미델뷔르흐에서 한 부자(父子)가 훗날 역사를 바꿀 발명품을 우연히 만들어냈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을 그저 쓸모없는 것으로 치부했다. 한스 얀센과 자카리아스 얀센이 유리 렌즈를 만지작거리다가 현미경을 발명한 것이다. 하지만 의도했던 발명은 아니었다. 얀센 부자는 수익성 높은 신흥 사업이던 독서용 안경 제작의 선두주자였다. 그들은 아주 인기 있는 사치품이었던 완벽한 안경을 만들려고 고심하다가 원통형 관에 두 개의 렌즈를 정렬하면 물체를 확대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들은 두 개의 렌즈를 결합하면 한 개의 렌즈만을 통해 보는 것보다 훨씬 더 확대된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하지만 시야가 너무 흐릿했고, 그들의 고객에겐 너무 거추장스러운 장비였기 때문에 자신들의 기발한 발견을 제쳐두었다. 얀센 부자의 확대경 기계는 다른 누군가 그것을 사용하기 전까지 근 백 년 동안 거의 알려지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다 초등학교 교육을 받은 네덜란드의 직물
폐쇄적인 워싱턴DC 무역 변호사의 세계에서 로버트 라이트하이저는 항상 아웃사이더였다. 그는 공화당과 민주당 행정부가 모두 자유무역을 추구하는 동안 철강 수입을 막기 위한 철강 업계의 투쟁을 수십 년동안 대변하면서 부유해졌다. 그는 마치 무역 협정이 타결되고 있는 워싱턴DC에서 멀리 떨어져 "갈라파고스에 사는 거 같았죠." 한 무역 변호사의 말이다. 하지만 라이트하이저는 도널드 트럼프에게서 자신의 보호주의 사상을 공유하는 대통령을 보았다. 트럼프와 라이트하이저는 미국의 경제 정책을 중국에 대한 '관여'에서 '대결'로 전환했다. 2016년 이전에도 이러한 움직임에는 속도가 붙고 있었지만 누구도 트럼프처럼 미국의 목표를 추구하기 위해 중국을 막대한 관세로 두드려 팰 의향은 없었다. 미국의 대중국 정책 전환은 아마도 트럼프 행정부의 가장 중요한 경제적 유산일 것이다. 저서 '무역은 공짜가 아니다'에서 라이트하이저는 트럼프의 미국 무역 대표부 대표로서--사실상 3년에 걸친 무역 전쟁을 진두
'황색 비'는 마이 더 방(Mai Der Vang)이 2022년에 출간한 시집의 제목이면서 같은 시인이 2016년에 자신의 첫 시집 '그 후의 나라'(Afterland)에 발표한 시의 제목이기도 하다. 이 '황색 비'란 말을 접하면 기후 변화와 대기 오염, 그리고 인간이 만들어낸 화학적 물질의 예기치 않은 역공이 저절로 연상된다. 내리는 빗물에 잠시 닿는 것조차 두렵게 하던 산성비, 봄이면 공기를 뿌옇게 만들던 황사, 그리고 아까운 여린 생명을 여럿 앗아간 가습기 살균제. 이런 암울하고 어두운 기억들 때문인지 '황색 비'란 말은 우리를 저절로 긴장시킨다. 맑고 투명해야 할 비를 도대체 무엇이 황색으로 물들였으며, 그래서 또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 것인가? 시를 읽기 시작하는 마음은 조마조마하고 불안하기 짝이 없다. 사실 '황색 비'는 베트남 전쟁이 끝나갈 무렵에 소수 민족인 몽(Hmong)족에게 크나큰 불행을 안겨다 준 비극적 사건이었다. 베트남 공산 정부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몽
미국 하와이 마우이섬 산불 참사로 사망자가 100명을 넘었고, 실종자가 여전히 1000명 이상이어서 큰 인명피해가 예상됩니다. 이번 참사는 앞으로 여러 곳에서 비슷한 대형화재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경종을 울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르몽드는 이번 하와이 산불 참사는 전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건조화, 사막화 현상과 관련된다고 지적했습니다. 건조화는 점진적으로 이뤄지는데, 그 건조화가 어느 정도에 이르면 화재가 발생하면서 나무와 풀들을 싹 태워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와이 지역의 건조화는 오랫동안 진행되어 왔다고 합니다. 여기에 해수 온도가 상승하면서 태풍이나 허리케인의 바람이 예전보다 세졌습니다. 예컨대, 지금 멕시코만의 해수는 지난 40년간 최고 온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와이의 건조화가 해수 온도 상승에 따른 허리케인의 강해진 바람과 만나면서 이번 참사를 낳았습니다. 우리나라도 이번 하와이 산불참사를 반면교사로 삼아 대형 산불에 대비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한국은 세계에서
전쟁은 이른 새벽, 중국판 '충격과 공포' 작전에 해당하는 대규모 폭격과 함께 시작되었다. 중국의 항공기와 로켓들이 대만 해군과 공군을 파괴하는 동안, 인민해방군 육군과 해군이 100마일에 달하는 대만 해협을 가로질러 대규모 상륙 공격을 감행했다. 중국은 조 바이든 대통령의 대만 방어 공약을 진지하게 받아들였으므로, 인도-태평양 방면의 미군과 동맹군 공군 기지와 함정도 선제공격했다. 미국은 보다 정교한 잠수함과 B-21, B-2 스텔스 폭격기들을 중국의 방공구역 내로 침투시켜 한동안 힘의 균형을 맞출 수 있었지만, 미국은 며칠 만에 주요 무장을 소진하고 네트워크 접근도 차단당했다. 미국과 그 주요 동맹국인 일본은 수천 명의 병력과 수십 척의 함정, 수백 대의 항공기를 잃었다. 대만의 경제는 황폐화되었다. 중국의 포위망이 장기화되면서 미국의 재건 작업은 훨씬 더 느려졌다. 중국에 비해 매우 위축된 미국의 산업기반을 감안하면 함정을 교체하는 데에만 몇 년이 걸릴 것이다. "중국은 우리
2000년대 초, 냅스터가 기존의 음악 판매 모델을 부숴버린 이후 한 가지 아이디어가 급부상했다. 너무 많은 이가 되풀이하는 통에 일종의 클리셰가 되어버린 이 아이디어는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음악을 불법으로 다운로드하는 것보다 합법적으로 듣는 게 훨씬 쉬워야 사람들이 불법복제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를 현실화하는 데 가장 큰 기여를 한 기업이 바로 스포티파이(Spotify)다. 스포티파이는 현재 이용자가 5억 명이 넘고, 월 정기 구독자도 2억 명 이상 보유하고 있다. 스포티파이가 유럽에서 음악 불법복제가 가장 만연했던 나라인 스웨덴에서 출발했다는 사실은 놀라우면서도 한편으로 납득할 만한 일이다. 추정에 따르면 2000년대 중반 당시 스웨덴 인구 900만 명 중 불법복제 파일을 공유한 사람이 120만 명에 달했다. 파일 공유 서비스 중 카자(Kazaa), 뮤토렌트(μTorrent), 파이러트베이(Pirate Bay) 역시 스웨덴에 뿌리를 두고 있다. 적어도 일부 관계
세상에 전해지는 유럽 패션하우스 인수합병의 역사에서 가장 놀라운 사건으로 손꼽히는 것은 1999년 구찌가 LVMH에 인수될 뻔한 위기를 모면했던 일이다. 구찌는 1983년 형제들과 함께 회사를 경영했던 로돌포 구찌가 사망한 후 험난한 시기를 겪었다. 로돌포의 아들인 마우리치오 구찌가 구찌 지분의 50%를 상속받으면서 가문 내 내분이 수 년간 이어졌고, 최고경영자에 오른 마우리치오는 회사를 파산 직전까지 몰고 갔다. 1993년, 한때 구찌 가문의 변호사였으며 미국에서의 사업을 주도했던 도메니코 데 솔레가 CEO로 임명되었다. 수석 디자이너 톰 포드의 활약으로 구찌의 여성복 디자인이 세계적인 성공을 거뒀고, 데 솔레는 구찌를 적자 기업에서 수익을 내는 그룹으로 탈바꿈시켰다. 그러나 1999년, 수년 간 고조되던 권력 다툼이 수면 위로 드러나고 말았다. 럭셔리 패션 그룹 LVMH의 창업자인 프랑스의 대부호 베르나르 아르노는 조용히 구찌 내 자신의 지분을 늘리고 있었고 지분 35% 가량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