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노믹스가 바꾸는 지역소멸
지역의 인구 감소와 소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와 변화를 조명합니다. 새로운 인물과 아이디어, 지역 자원을 활용한 혁신 사례를 통해 시골 마을의 활력과 가능성을 소개합니다.
지역의 인구 감소와 소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와 변화를 조명합니다. 새로운 인물과 아이디어, 지역 자원을 활용한 혁신 사례를 통해 시골 마을의 활력과 가능성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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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96명 시골 폐교, 도축 직전 구조된 '꽃풀소' 5마리가 되살린다━ 지난 4일 찾아간 강원도 인제군 남면 신월리. 험준한 산악 지형에 소양강이 둘러싸 외부인의 발길이 닿기 어려운 '육지 속 섬마을'로 유명하다. 1973년 소양강댐 조성으로 인해 도로가 수몰되면서 외부와 단절됐기 때문이다. 2022년 터널이 뚫리긴 했지만 50년 가까이 단절된 탓에 신월리 인구(10월 기준 96명)는 어느새 100명 밑으로 줄었고, 이 마저도 대부분 70대 전후의 고령으로 구성돼 있다. 1955년부터 마을의 중심을 채워준 부평초등학교 신월분교도 2014년 입학생 3명을 끝으로 학생들의 발길이 끊기면서 2019년 2월 결국 폐교 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주민들 사이에 골칫덩이가 돼버린 폐교는 최근 마을을 되살려줄 수 있단 기대를 받고 있다. 놀랍게도 폐교에 새로 숨을 불어넣고 있는 주인공은 '꽃풀소'라 불리는 소 5마리다. 엉·머위·메밀·부들·창포란 이름을 가진 꽃풀소는 2021년 시
인구 96명에 불과한 강원도 인제군 남면 신월리 주민들 중엔 영국 옥스포드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엘리트가 2명이나 있다. 이지연 신월리 청년회장(동물해방물결 대표)과 전범선 이사가 그 주인공이다. 두 사람은 민족사관학교를 졸업한 수재들이다. 이 회장은 고려대 국제학부를 거쳐 옥스포드 대학원에서 환경지리학 석사 학위를 받았고, 전 이사도 미국 다트머스 대학과 옥스포드 대학원에서 역사학을 전공했다. 2017년에 동물해방물결을 창립한 이들은 2022년 인천에서 도축 직전 꽃풀소 5마리를 구출해 오면서 신월리 주민으로 전입했다. 지난 4일 만난 이 회장은 "저는 누구보다 전공을 잘 살리고 있다고 생각하고, 현재 하고 있는 일에 만족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 이사는 현재 밴드 '양반들'의 보컬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해외 경험이 풍부하고, 동물권에 관심이 높았던 이 회장은 국내에선 아직 생소한 '팜 생크추어리(Farm Sanctuary)' 모델을 참고해 신월리 마을을 바꿔놓고 있다. '안식
지난 4일 찾아간 강원도 인제군 남면 신월리. 험준한 산악 지형에 소양강이 둘러싸 외부인의 발길이 닿기 어려운 '육지 속 섬마을'로 유명하다. 1973년 소양강댐 조성으로 인해 도로가 수몰되면서 외부와 단절됐기 때문이다. 2022년 터널이 뚫리긴 했지만 50년 가까이 단절된 탓에 신월리 인구(10월 기준 96명)는 어느새 100명 밑으로 줄었고, 이 마저도 대부분 70대 전후의 고령으로 구성돼 있다. 1955년부터 마을의 중심을 채워준 부평초등학교 신월분교도 2014년 입학생 3명을 끝으로 학생들의 발길이 끊기면서 2019년 2월 결국 폐교 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주민들 사이에 골칫덩이가 돼버린 폐교는 최근 마을을 되살려줄 수 있단 기대를 받고 있다. 놀랍게도 폐교에 새로 숨을 불어넣고 있는 주인공은 '꽃풀소'라 불리는 소 5마리다. 엉·머위·메밀·부들·창포란 이름을 가진 꽃풀소는 2021년 시민들의 모금으로 시작한 인천 소 구하기 프로젝트 후원금을 통해 도살장에서 구
"'작지만 강한 양구'는 스포츠마케팅으로 인구의 한계를 뛰어넘어 성장하고 있습니다." 서흥원 강원 양구군수(사진)는 최근 머니투데이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접경지역으로 군부대에 의존한 경제구조와 계속되는 인구감소로 경제침체를 이겨낼 새로운 대안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라고 전제한 뒤 '스포츠마케팅'을 그 해답으로 제시하면서 이같이 강조했다. 실제로 양구군은 1990년대 초부터 약 30년간 스포츠마케팅을 중점 사업으로 추진 중이다. 양구군스포츠재단이 운영하는 12개 시설 이외에도 각 읍면에서 관리하는 생활체육 시설까지, 축구·펜싱·역도·테니스 등 다양한 스포츠 경기를 진행할 수 있는 지방자치단체다. 그냥 방치하면 애물단지가 될 수 있는 체육시설을 적극적인 마케팅을 통해 매달 많게는 10회 이상의 체육대회와 전지훈련을 유치하고 있다. 또 스포츠마케팅으로 체육인들이 유입되면서 늘어난 생활인구와 관계인구가 지역경제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올해도 양구군은 상반기에 축구와 테니스, 펜싱 등
지난 5일 찾은 강원 양구군 용하리에 위치한 용하체육관에는 충북도청 역도팀의 훈련 준비가 한창이었다. 헬스기구인 스쿼트 렉을 옮기며 바벨(역기)에 20kg이 넘는 원판을 4~5장씩 끼워넣었다. 웨이트 트레이닝 3대 운동 중 하나인 스쿼트를 하는 동안 여기저기서 신음이 터져나오기도 했다. 용하체육관은 전국에 몇 곳 없는 역도 전용 경기장으로 전국체전 등 대회가 가까워질 때면 전국 각지에서 선수들이 찾는 전지훈련 명소다. 양구군청에 따르면 양구군은 최근 3년간(2021~2023년) 총 24개 종목, 333개의 스포츠대회를 개최했다. 3년간 총방문 인원은 약 78만3000명으로 이에 따른 경제효과는 566억원에 달했다. 올 상반기에는 축구와 테니스, 펜싱 등 12개 종목 51개 스포츠대회, 6개 종목 52개 전지훈련을 유치해 167억원의 경제효과를 거뒀다. 강원도에서 가장 인구가 적은 지방자치단체지만 이같은 공격적인 스포츠마케팅으로 침체된 지역경제까지 되살리고 있다. 실제로 지난달 양구군
━카메라 켜면 그곳이 사진 명당…변신한 '폐공장', 강화도 살리는 효자로[르포]━ 일제강점기 때부터 선조들의 역사가 녹아든 방직공장이 지역소멸을 막을 대안의 하나로 떠올랐다. 인천 강화읍 신문리에 위치한 조양방직이 그 주인공이다. 갈라지고 떨어져나간 시멘트 벽과 천장 목재 트러스 구조 등 과거 폐공장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는 조양방직은 1933년 민족 자본으로 설립한 최초의 인견공장으로 약 60여년 만인 2017년 카페로 탈바꿈했다. 현재는 과거 방직공장 당시의 시설을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소품들로 내부를 가득 채웠다. 공장 작업테이블 등을 카페 탁자로 활용하거나 염색조를 어항으로 사용하는 식이다. 특히 십수년은 지난 것처럼 보이는 라디오와 오르간, 실제로 프랑스 미용실에서 쓰던 의자 등 오래된 골동품들은 고급스런 인테리어 장식이자 전시품 역할을 하고 있다. 이용철 조양방직 대표도 "조양방직의 모든 공간과 소품이 하나의 미술품"이라고 소개했다. 단순히 폐건물을 리모델링한 것이 아닌 하
조선시대 때부터 직물산업의 중심지였던 강화도엔 1936년 자본금 50만원에 조양방직이란 주식회사가 설립되면서 관련 설비를 갖춘 공장이 들어섰다. 하지만 직물산업 중심지가 대구로 옮겨가면서 강화도는 빠르게 몰락했다. 조양방직도 1958년 폐업했다. 직물공장도 반세기 넘게 흉물로 방치돼있다 2017년 한 사람의 손길을 거치면서 이젠 지역을 대표하는 휴식공간이자 랜드마크로 자리를 잡았다. 이 모든 성과를 만들어낸 이용철 조양방직 대표(59세)를 강화도에서 직접 만났다. 20년 가까이 서울 인사동에서 고미술품 등을 다뤄온 그는 우연히 조양방직을 소개받고 한눈에 반했다. 이 대표는 "대한민국을 벗어난 너무 특별한 곳에 와 있는 기분이었다"며 당시를 회고했다. 그가 조양방직을 처음 마주하고 느낀 매력에 이젠 수많은 사람들도 공감하고 있다. 이 대표는 "조양방직 자체가 하나의 미술품이라고 생각한다"며 "이곳을 찾아오는 사람들은 저랑 마찬가지로 내부 구조물의 아름다움, 이 안을 채운 소품들을 보
일제강점기 때부터 선조들의 역사가 녹아든 방직공장이 지역소멸을 막을 대안의 하나로 떠올랐다. 인천 강화읍 신문리에 위치한 조양방직이 그 주인공이다. 갈라지고 떨어져나간 시멘트 벽과 천장 목재 트러스 구조 등 과거 폐공장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는 조양방직은 1933년 민족 자본으로 설립한 최초의 인견공장으로 약 60여년 만인 2017년 카페로 탈바꿈했다. 현재는 과거 방직공장 당시의 시설을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소품들로 내부를 가득 채웠다. 공장 작업테이블 등을 카페 탁자로 활용하거나 염색조를 어항으로 사용하는 식이다. 특히 십수년은 지난 것처럼 보이는 라디오와 오르간, 실제로 프랑스 미용실에서 쓰던 의자 등 오래된 골동품들은 고급스런 인테리어 장식이자 전시품 역할을 하고 있다. 이용철 조양방직 대표도 "조양방직의 모든 공간과 소품이 하나의 미술품"이라고 소개했다. 단순히 폐건물을 리모델링한 것이 아닌 하나의 미술 작품으로 보고 손을 봤다는 설명이다. 폐허나 다름없던 '조양방직'이 강화
"운탄고도1330이 '산티아고'나 '제주 올레'를 넘어서는 관광지로 만들겠습니다." 최성현 강원관광재단 대표는 최근 머니투데이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2022년 10월 운탄고도 정식개통 이후 이전보다 방문객이 600% 이상 늘었고 트레킹 행사만으로도 매년 3000여명 이상 방문하고 있다"며 이같은 포부를 밝혔다. '운탄고도1330'은 강원특별자치도 내 영월·정선·태백·삼척 등 과거 탄광이 위치해있던 4개 시·군을 아우르는 길로 평균 고도 546m, 총 길이는 173km에 이른다. '1330'은 운탄고도의 전체 길 중에 가장 높은 곳인 함백산 '만항재'의 높이를 뜻한다. 현재 운탄고도가 조성된 폐광지역은 지역 최대기업인 강원랜드의 의존도가 높다. 사실 폐광지역 특별법에는 "석탄산업의 사양화로 인해 낙후된 폐광지역의 경제를 진흥시켜 지역간의 균형 있는 발전과 주민의 생활 향상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한다"는 내용이 명시돼있다. 하지만 지역경제 활성화를 목적으로 설립된 강원랜드를 제외하면 답
지난달 강원특별자치도에 있는 국내 최대 탄광인 태백 장성광업소가 88년 만에 문을 닫았다. 내년 삼척 도계광업소까지 폐광하면 대한석탄공사 산하 광산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1960~70년대 석탄산업이 절정이던 당시 강원 지역을 이끌던 태백·삼척시와 영월·정선군 4개 폐광지역은 그만큼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석탄산업의 몰락은 예견된 수순이었지만 대체산업 마련이 요원해서다. 하지만 80년 가까이 태백산맥 자락에서 캐낸 석탄을 싣고 달리는 차량이 오가던 길은 이들 폐광지역을 이어주는 소중한 유산으로 그대로 남았다. 이를 지켜본 지역 최대기업인 강원랜드는 2015년 희망일자리 사업 등을 통해 폐광로 정비사업을 진행했고, 이후 폐광지역개발기금 투자를 받아 2022년 9월 전 구간을 걸을 수 있는 길로 선보였다. 4개 폐광지역 능선을 따라 동서구간 173km로 이어지는 '운탄고도(運炭高道) 1330'은 그렇게 탄생했다. '구름이 양탄자처럼 깔린 길을 걷는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각 지역마다 고려인 유치를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이미 형성된 일부 고려인 사회는 지역사회와 융화하지 못하고 단절돼 가는 모습이다. 대한민국이 저출생에 따른 인구소멸 위기에 놓인 만큼 고려인들이 안착할 수 있도록 행정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실제 고려인 집단거주지 상황을 들여다보기 위해 약 5000여명이 살고있는 광주광역시(이하 광주) 월곡동을 직접 찾았다. 2000년대 초반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소수의 고려인들이 정착하기 시작한 지역으로, 2014년 마을 공동체로 자리 잡았다. 이 마을에는 러시아어 간판으로 된 가게가 즐비해 있고, 거리에는 고려인 외에 내국인들이 눈에 띄지 않았다. 일부 가게들은 간판에 한국어를 병용해 달았지만, 사실상 고려인들만 드나들고 있었다. 고려인 마을이 형성된 지 10여년이 지난 현재는 기존 주민들은 떠나고 고려인 포함 외국인들만 남은 상황이다. 인근에 위치한 공단에 외국인 취업자가 늘면서 고려인 외에도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모여들었
"올해 고려인 300명을 시작으로 3년 안에 1000명, 장기적으로는 3000명 이주가 목표입니다." 김창규 충북 제천시장(사진)은 최근 머니투데이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고려인이 지방 기업의 인력난을 해소하고 생활인구를 증가시켜 지역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견인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앞서 행정안전부가 지정한 59개 인구감소지역에 포함된 제천시는 전국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가장 적극적으로 고려인 이주·정착을 지원하고 있다.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는 김 시장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실제로 그는 제18회 외무고시에 합격한 뒤 카자흐스탄과 러시아 대사관 근무를 거쳐 키르기즈공화국과 아제르바이잔 대사를 역임했다. 옛 소련(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 국가들을 두루 거친 경험은 자연스럽게 고려인들과의 접점을 늘렸고, 현지 사정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전문가로 만들어줬다. 고려인에 대한 애정도 그만큼 남다를 수밖에 없다. 김 시장은 "고려인 동포는 1860년 무렵부터 해방 전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