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일 오전 10시40분 서울 여의도 더현대 서울. 백화점 문이 열린 지 10분 남짓 지났지만 일본 축구만화 '블루 록' 팝업스토어 안은 이미 인파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매대 앞에 선 관람객들은 캔뱃지와 아크릴 굿즈를 손에 쥐고 진열대를 훑었다.
대기 행렬은 백화점 개장 9시간 전부터 시작됐다. 사전 온라인 예약과 별도로 낮 12시부터 입장이 가능한 현장 예약을 받는다는 소식에 팬들은 1일 새벽 1시 30분부터 백화점 입구 앞에 자리를 잡았다.
이번 '블루 록 2026 더 라스트 팝업 : 네오 에고이스트 리그'는 출판사 학산문화사가 현대백화점과 손잡고 연 첫 번째 단독 원작 굿즈 팝업이다. 학산문화사는 지난 3월부터 일본 원작사와 기획에 착수해 약 반년간 행사를 준비했다.

'블루 록'은 가네시로 무네유키 글, 노무라 유스케 만화로 2018년부터 일본 고단샤 '주간 소년 매거진'에 연재 중인 축구 만화다. 2018년 러시아 월드컵 16강 탈락 이후 일본축구협회가 세계 최고 공격수를 육성하기 위해 고교 선수 300명을 특수 시설에 가두고 벌이는 배틀로열을 그렸다. 국내 단행본 출판은 학산문화사가 도맡고 있으며, 일본 내 누적 발행 부수는 6500만 부를 넘어섰다.
흥행을 견인하는 핵심은 2030 여성층이다. 일본 카탈리스트데이터파트너스 분석에 따르면 굿즈 구매자의 90%가 여성이었으며 25~34세가 중심축을 이뤘다. 인기 캐릭터 나기 세이시로와 단짝 미카게 레오의 세트 구매율이 가장 높았는데, 단독 캐릭터보다 '인물 간 관계성'과 서사에 지갑을 연다는 분석이다. 각자의 '무기'로 살아남는 배틀로열 구조 역시 경쟁 사회를 사는 청년층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실제 이날 팝업 현장을 찾은 관람객 대다수도 여성이었다. 여영아 학산문화사 대표는 "국내 '블루 록' 팬덤 역시 90% 이상이 여성이며, 10~20대가 소비의 중심축을 이루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팝업의 핵심은 상반기 테스트 결과를 바탕으로 고도화한 상품군이다. 학산문화사는 상반기 두 차례 테스트에서 호응을 얻었던 기존 라인업에 더해 이번 팝업만을 위해 새로 개발한 13개 품목 등 총 24종에 달하는 상품 라인업을 구성했다. 도서 부문에서도 이번 행사에 맞춰 이 팝업에서만 파는 '킥오프 팩'(500세트 한정)과 정식 출간 전에 먼저 선보이는 '37권 한정판'을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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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눈길을 끈 제품은 '아크릴 시네마'다. 원작 만화의 명장면을 영화 프레임 형태로 입체화해 단순 캐릭터 상품을 넘어 '만화 속 명장면을 통째로 소장한다'는 몰입감을 안겼다. 원작 대사를 살린 '말풍선 메모지'와 '원화 판 스티커'는 일상 소품으로 쓰임새를 넓혔다.
일본 현지에도 없는 '아크릴 카라비너'와 말랑한 질감의 '말랑 캔뱃지', 원작 속 명문 클럽 바스타드 뮌헨 소속의 라이벌 이사기 요이치와 미카엘 카이저를 함께 담은 '듀오 유리컵' 등은 관계성에 열광하는 여성 팬덤의 심리를 저격했다. 한국 한정판이라는 희소성에 일본 등 해외 팬들의 발길도 이어졌다.
여영아 대표는 "단순히 캐릭터 얼굴을 인쇄하는 수준을 넘어 '팬들이 어떤 명장면과 대사, 인물 관계를 기억하고 간직하고 싶어 하는가'를 기획의 최우선 기준으로 삼았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이번 행사의 인기 비결로 출판사 특유의 '원작 이해도'를 꼽는다. 일본 만화 라이선스 굿즈는 원작사의 감수 기준이 까다로워 그림이나 설정이 조금만 어긋나도 상품화가 불가능하다.
학산문화사는 수십 년간 다져온 출판 편집 역량을 무기로 원작의 결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소장 가치를 살린 상품을 설계해 원작사의 탄탄한 신뢰를 얻어냈다. 애니메이션 굿즈가 넘쳐나는 시장에서 '원작 출판사가 만든 원작 굿즈'라는 점이 차별점이 된다는 설명이다. 팬들이 좋아하는 IP가 처음 탄생한 원천에서 나온 상품이라는 점이 두터운 신뢰로 이어졌다.
체질 개선을 이끈 핵심 조직은 전시와 굿즈 사업을 전담하기 위해 신설된 '코믹팝' 부서다. 학산문화사는 자체 동명 전자상거래(이커머스) 플랫폼인 코믹팝 운영과 함께 전담 부서에 영화 배급사, 프로축구 구단 마케터, 대형 캠페인 기획자 등을 대거 영입했다. 책을 팔던 전통적인 출판 마케팅을 벗어나 스포츠 팬덤 문법과 극장식 공간 기획을 결합해 팬 경험을 확장하고 있다.
여 대표는 "원작 만화의 원화를 활용하면 애니메이션 상품과는 또 다른 작품 본연의 매력을 전달할 수 있다"며 "출판사로서 축적해 온 원작에 대한 이해와 콘텐츠 해석 역량을 상품 기획으로 연결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학산문화사는 이번 '블루 록' 팝업을 시작으로 코믹팝 부서를 적극 키울 계획이다. 오는 10월 24일부터는 만화가 듀오 피치 핏(PEACH-PIT)의 데뷔 25주년 특별전을 연다.

1995년 창립된 학산문화사는 '귀멸의 칼날', '진격의 거인', '스파이 패밀리', '체인소 맨' 등 굵직한 해외 히트작의 국내 단행본 출판을 도맡아왔다. 최근 출판 부문에서는 '룩 백', '약사의 혼잣말', '장송의 프리렌', '디그 잇', '타몬 군 지금 어느 쪽?!' 등이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일본 만화 흥행에 힘입어 2020년 313억원이었던 매출액은 2025년 514억원으로 껑충 뛰었다.
학산문화사는 전통 출판을 넘어 자체 웹툰·웹소설 IP 확보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묵향 다크레이디', '회귀수선전', '영업천재가 되었다', '나혼자 진짜 재벌', '북부 대공', '사천당가의 막내딸을 납치했다' 등 대형 라인업을 확보했다. 웹소설 분야에서도 '회귀자의 프로파일링', '도시낭인 리로드' 등을 필두로 디지털 콘텐츠 저변을 다지고 있다.
다음 승부처는 자체 제작 웹툰과 비엘(BL, Boy's Love) 장르다. 학산문화사는 국내외에서 검증된 BL 및 웹툰을 기반으로 내년부터 오프라인 팝업과 협업 카페 사업을 본격 가동한다. BL 장르는 팬덤의 충성도와 결제 비중이 높고 해외 반응도 뜨겁다는 판단에서다.
중장기 로드맵도 구체화됐다. 코믹팝은 2027년 총 5~6개의 대형 프로젝트를 가동하고 게임과 일본 만화 IP 사업을 전방위로 전개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국내에서 기획·제작한 굿즈의 '글로벌 역수출'도 추진할 방침이다.
여 대표는 "출판사로서 축적해 온 원작에 대한 이해와 콘텐츠 해석 역량은 굿즈 기획에서도 독보적인 무기"라며 "출판과 디지털, 오프라인과 상품이 유기적으로 맞물려 IP의 가치와 독자의 경험을 함께 높이는 토털 콘텐츠 기업으로 도약하겠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