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담] '누가 농민인가'…농지 전수조사가 던진 또 하나의 질문

[농담] '누가 농민인가'…농지 전수조사가 던진 또 하나의 질문

세종=정혁수 기자
2026.10.0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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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의 주인과 농사의 주인은 다를 수 있어…투기 단속 너머 경작자 보호
농업인 기준은 문턱보다 현장의 삶 살펴야…예산 지원도 정책 목적 맞게

[편집자주]  농업의 큰 변화는 때로 아주 작은 장면에서 시작됩니다. 한 그릇의 밥, 한 알의 씨앗, 농부의 한마디, 연구자의 오랜 기다림 속에도 우리가 미처 보지 못했던 농업의 이야기가 숨어 있습니다. '농담(農談)'은 그런 주변 이야기들을 찾아 사람과 농업, 정책과 삶을 잇는 공간입니다. 작은 농업의 이야기를 담아, 더 큰 농업의 이야기를 나눕니다

땅에는 두 종류의 이름이 있다. 등기부에 적힌 이름과, 그 땅에 씨를 뿌리고 수확을 기다리는 사람의 이름이다.

두 이름이 같을 때도 있지만 다른 경우도 있다. 농지를 빌려 농사짓는 사람에게 땅은 자기 소유가 아니어도 삶의 터전이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농지전수조사는 이 두 이름 사이의 거리를 살피는 일이기도 하다.

정부가 농지를 조사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농사보다 땅값 상승을 기대하며 농지를 사들인 사람을 가려내고, 땅이 본래 쓰임을 되찾도록 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투기를 잡는 일과 농사를 지키는 일이 저절로 함께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소유자의 잘못을 바로잡는 과정에서 그 땅을 빌려 경작하던 사람까지 농사를 멈춰야 한다면, 단속의 부담은 엉뚱한 곳으로 옮겨간다.

그래서 조사는 땅의 주인을 확인하는 데서 끝날 수 없다. 누가 실제 농사를 책임지는지, 조사 이후에도 그 사람이 계속 씨를 뿌릴 수 있는지 물어야 한다.

농지전수조사가 농지를 농업인에게 돌려준다는 목적을 이루려면 먼저 누구를 농업인으로 볼 것인지부터 분명해야 한다. 농지 전수조사는 결국 '누가 농업인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전남광주=뉴시스] 29일 오전 전남광주 북구 건국동 신룡마을 들녘에서 농부들이 벼를 수확하고 있다. (사진 = 전남광주 북구 제공) 2026.09.29. photo@newsis.com /사진=이영주
[전남광주=뉴시스] 29일 오전 전남광주 북구 건국동 신룡마을 들녘에서 농부들이 벼를 수확하고 있다. (사진 = 전남광주 북구 제공) 2026.09.29. [email protected] /사진=이영주

농업인은 땅을 가진 사람일까, 직접 흙을 만지는 사람일까. 농촌의 삶은 어느 한 가지 답으로 정리하기 어렵다.

자기 땅 없이 농지를 빌려 생산을 책임지는 사람이 있고, 나이가 들어 기계작업은 다른 사람에게 맡기면서 농사를 이어가는 사람도 있다. 가족이 함께 일하지만 서류에는 한 사람만 경영주로 드러나는 경우도 있다.

이 현실을 놓치면 명목상 농사짓는 사람을 가려내려던 기준이 실제 농업인을 밀어내는 문턱이 될 수 있다.

반대로 형식적인 요건만 확인하면 영농을 내세운 투기성 소유를 제대로 걸러내기 어렵다.

'누가 농업인인지' 묻는 일은 전수조사에 덧붙이는 별도의 과제가 아니다. 조사의 정확성과 농업인 보호를 함께 좌우하는 질문이다.

현행 기본법 시행령은 1000㎡ 이상 농지를 경영하거나 경작하는 사람, 농산물 연간 판매액이 120만원 이상인 사람, 연중 90일 이상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 등을 농업인으로 규정한다.

[수원=뉴시스] 김종택 기자 = 쌀의 날인 18일 경기 수원시 권선구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 중북부작물연구센터 들녘에서 관계자가 누렇게 익어가는 벼를 살펴보고 있다.   쌀의 날은 한자 쌀 미(米)를 팔·십·팔(八·十·八)로 풀이한 데서 유래했다. 쌀 한 톨을 생산하기까지 농업인의 손길이 여든여덟 번 필요하다는 의미를 담아 농식품부가 지정했으며 올해로 12회를 맞았다. 2026.08.18. jtk@newsis.com /사진=김종택
[수원=뉴시스] 김종택 기자 = 쌀의 날인 18일 경기 수원시 권선구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 중북부작물연구센터 들녘에서 관계자가 누렇게 익어가는 벼를 살펴보고 있다. 쌀의 날은 한자 쌀 미(米)를 팔·십·팔(八·十·八)로 풀이한 데서 유래했다. 쌀 한 톨을 생산하기까지 농업인의 손길이 여든여덟 번 필요하다는 의미를 담아 농식품부가 지정했으며 올해로 12회를 맞았다. 2026.08.18. [email protected] /사진=김종택

땅을 일정 면적 이상 소유한다고 자동으로 농업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법은 농업활동을 요구하지만, 면적과 판매액, 종사일수가 그 활동을 얼마나 충실히 보여주는지는 따져볼 문제다.

숫자는 행정에 필요하다. 다만 같은 면적에서도 작물과 재배 방식에 따라 노동과 생산의 모습은 달라진다. 새로 농사를 시작한 청년에게 낮은 판매액은 정착 과정의 한 장면일 수 있다.

작은 밭을 지키는 고령농에게 농사는 소득뿐 아니라 일상의 질서이기도 하다. 규모가 작다는 사실이 곧 농업활동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그렇다고 농촌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농업인 자격을 인정하자는 것도 아니다. 생산을 결정하고, 비용을 부담하며, 수확의 성과와 실패를 책임지는 사람이 누구인지 살펴야 한다.

판매·출하 기록과 농자재 구매, 실제 경작 상황을 함께 확인하되 서류를 갖추기 어려운 농가가 설명할 길도 열어둘 필요가 있다.

[이천=뉴시스] 김종택기자 = 절기상 곡우(穀雨)인 20일 경기 이천시 대월농협 공동육묘장에서 관계자들이 모판에서 자라는 볏모 생육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봄비가 내려 온갖 곡식이 윤택해진다는 곡우는 본격적인 농사의 시작을 알리는 절기다. 2026.04.20. jtk@newsis.com /사진=김종택
[이천=뉴시스] 김종택기자 = 절기상 곡우(穀雨)인 20일 경기 이천시 대월농협 공동육묘장에서 관계자들이 모판에서 자라는 볏모 생육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봄비가 내려 온갖 곡식이 윤택해진다는 곡우는 본격적인 농사의 시작을 알리는 절기다. 2026.04.20. [email protected] /사진=김종택

최근 이재관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마련한 토론회에서도 농업인 자격과 농업경영체 등록, 지원사업 대상을 구분하자는 논의가 나왔다.

실제 농사를 짓고 판매했지만 임대차 계약서가 없어 경영체에 등록하지 못했던 경험도 소개됐다. 제도 안에 이름이 없다고 농사까지 없는 것은 아니다.

농업인 인정과 농지 소유의 적법성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농업인이라고 모든 소유와 임대차가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 법 위반은 법에 따라 판단하되, 앞으로의 기준을 손질하는 논의가 현재의 농업인을 새 잣대로 몰아세우는 일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조사 이후의 땅도 살펴야 한다. 투기성 소유를 적발해 시장에 내놓게 한다고 청년농이 곧바로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농사를 지어 얻을 소득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가격이라면 땅은 나와도 농업인에게 닿지 않는다.

농지를 연결하는 임대와 금융, 안정적인 경작 여건이 함께 마련돼야 한다. 땅의 명의가 바뀌는 것과 농사의 미래가 열리는 것은 다른 일이다.

(서울=뉴스1) = 28일 경남 함양군 지곡면 시목마을 한스타 복숭아 농장에서 청년농부가 직접 브랜드화한 겨울복숭아 '설도'를 첫 수확하고 있다. (함양군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2025.10.28/뉴스1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서울=뉴스1)
(서울=뉴스1) = 28일 경남 함양군 지곡면 시목마을 한스타 복숭아 농장에서 청년농부가 직접 브랜드화한 겨울복숭아 '설도'를 첫 수확하고 있다. (함양군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2025.10.28/뉴스1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서울=뉴스1)

한정된 농업예산을 나누는 문제도 마찬가지다. 농업인이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모든 지원을 결정하면 서로 다른 필요를 담기 어렵다.

생산시설을 늘리는 지원은 실제 경영과 투자 필요성을, 청년농 정착은 시작 단계와 농지 확보의 어려움을, 소농·고령농 지원은 소득과 생활의 취약성을 살펴야 한다. 환경을 보전하고 공동체를 유지하는 역할에도 그에 맞는 평가가 필요하다.

예산의 효율은 지원받는 사람을 얼마나 줄였느냐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지원이 닿았는지, 그 지원으로 농사가 이어졌는지가 중요하다. 농업인을 인정하는 범위와 사업별 지원 기준을 구분해야 하는 이유다.

전수조사의 성과 역시 적발 건수와 처분 면적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조사 뒤에도 농지가 생산에 쓰이는지, 경작자가 농사를 이어가는지, 새로 들어올 사람에게 기회가 생겼는지 살펴야 한다.

등기부는 땅의 소유자를 기록한다. 하지만 농정은 그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내일까지 살펴야 한다. 투기를 가려내는 조사가 농사를 지키는 개혁이 되려면, 누구의 땅인지 묻는 데서 나아가 누가 농사를 책임지고 어떻게 이어갈 것인지 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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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혁수 기자

머니투데이 경제부에서 농업분야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UNC) 저널리즘스쿨에서 1년간 연수를 마치고 돌아와 2013년부터 농식품부를 출입하며 한국 농업정책과 농업현장의 이야기로 독자들과 소통하고 있습니다. 농업분야에 천착해 오는 동안 '대통령표창' 등 다양한 상을 수상한 것은 개인적으로 큰 기쁨이지만 동시에 막중한 책임감도 느끼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신성장동력산업으로 발전하는 '농업의 무한변신'을 독자들과 함께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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