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담] 벌통을 왜 '소상'이라 불렀나…농진청이 인정한 양봉의 언어 장벽

[농담] 벌통을 왜 '소상'이라 불렀나…농진청이 인정한 양봉의 언어 장벽

세종=정혁수 기자
2026.10.07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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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진흥청, 일본식 한자어 등 양봉 용어 31개 순화
-"용어집 개정 넘어 교육·기술자료 개선 계획 내놔야"

[편집자주]  농업의 큰 변화는 때로 아주 작은 장면에서 시작됩니다. 한 그릇의 밥, 한 알의 씨앗, 농부의 한마디, 연구자의 오랜 기다림 속에도 우리가 미처 보지 못했던 농업의 이야기가 숨어 있습니다. '농담(農談)'은 그런 주변 이야기들을 찾아 사람과 농업, 정책과 삶을 잇는 공간입니다. 작은 농업의 이야기를 담아, 더 큰 농업의 이야기를 나눕니다

농촌진흥청이 일선 현장에서 사용되는 양봉용어를 개선하고 나섰다.
농촌진흥청이 일선 현장에서 사용되는 양봉용어를 개선하고 나섰다.

벌통은 '소상', 벌통 출입문은 '소문', 벌통을 열어 꿀벌의 상태를 확인하는 작업은 '내검'이다.

양봉을 처음 배우는 사람은 벌을 기르는 기술에 앞서 낯선 용어부터 익혀야 한다. '벌통을 살펴보라'고 하면 될 일을 '소상을 내검하라'고 교육한다면, 양봉기술을 배우는 문턱은 그만큼 높아진다.

농촌진흥청이 한글날을 맞아 공개한 '양봉 용어 순화 목록'은 역설적으로 그동안 농업인들이 양봉 현장에서 마주해 온 '언어 장벽'이 얼마나 높았는지를 잘 보여준다.

벌통과 출입문, 심지어 벌집과 일벌처럼 기본적인 시설과 생태를 설명하는 말까지 일상 언어와 동떨어져 있었다.

기술을 연구하고 농업인에게 보급하는 기관이 왜 이런 표현을 더 일찍, 더 폭넓게 정비하지 못했는지 돌아볼 대목이다.

농진청은 '누구나 알기 쉬운 우리말 표준 양봉 용어집' 개정판을 펴내고 31개 순화 용어를 공개했다고 7일 밝혔다.

앞서 발표한 16개 용어에 현장과 학계 의견을 반영한 15개를 추가했다. 기존 용어의 명칭과 설명도 다시 검토했다.

농진청은 근대 양봉 기술의 도입·확산 과정에서 일본식 한자어나 오늘날 일상생활에서 거의 쓰지 않는 표현이 양봉 용어로 굳어진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이런 용어가 신규 양봉 농업인과 국민의 정보 이해에 걸림돌이 돼 왔다는 점도 인정했다.

목록을 보면 개선의 필요성은 분명하다. '소광'은 벌집을 받치는 '벌집틀', '소비'는 여러 벌방이 모인 '벌집판', '소방'은 육각형 방 하나인 '벌방'으로 바꿨다.

'내역봉'은 벌통 안에서 육아와 청소 등을 맡는 '집벌', '외역봉'은 밖에서 꽃꿀과 꽃가루를 모으는 '채집벌'로 다듬었다.

다른 벌통의 꿀을 훔치는 '도봉'은 '도둑꿀벌'이 됐다. 새 표현은 별도의 한자 풀이 없이도 대상과 역할을 짐작하게 한다.

농진청이 제시한 사례들을 보면 그동안 어려운 말이 기술의 정확성을 위해 반드시 필요했던 것인지 되묻게 한다.

전문가에게 익숙하다는 이유로 초보 농업인도 같은 언어를 익혀야 한다면, 기술보급의 부담을 배우는 사람에게 넘기는 셈이다. 사실 농업 연구·교육기관의 기본 책무중 하나는 쉬운 말로 정확하게, 잘 알아듣게 설명하는 일이다.

이번 개정판에는 뜻풀이와 사진, 벌통 구조와 벌집판 형성 과정을 설명한 그림이 담겼다.

용어집을 한국양봉협회와 한국양봉학회, 도 농업기술원과 시군 농업기술센터 등에 배포하겠다는 계획도 제시했다.

하지만 책을 만들어 배포하는 것과 현장의 언어를 바꾸는 것은 다른 일이다. 농진청이 밝힌 계획에는 기존 교육교재와 기술지도 자료를 언제까지 고칠지, 농업기술센터 교육과 농진청 온라인 자료에 새 용어를 어떻게 적용할지에 관한 구체적인 일정이 없다.

실제 교육에서 순화어가 쓰이는지 확인할 방법도 제시하지 않았다. 용어집은 새 말을 쓰는데 교육과 기술상담은 옛말로 진행된다면, 초보 농업인은 두 가지 표현을 함께 외워야 한다.

순화어 자체도 현장에서 검증할 필요가 있다. '저밀장'을 바꾼 '꿀저장벌집판', '충판'을 바꾼 '애벌레벌집판'은 뜻을 풀어냈지만 되려 길어졌다.

이해하기 쉬운지와 작업 중 부르기 편한지는 함께 살펴야 한다. '화분매개'는 기존 용어를 유지하면서 '꽃가루옮기기'를 괄호에 넣었다. 전문용어와 쉬운 표현을 함께 쓸 때 어떤 것을 우선할지도 명확해야 한다.

농진청의 용어순화 노력은 용어집에 실린 단어 수로 평가할 일이 아니다. 농업인이 실제로 듣고 읽는 설명이 얼마나 쉬워졌는지가 기준이 돼야 한다.

농진청의 책임은 한글날에 순화한 용어를 발표하는 데서 끝날 수 없다. 그 용어가 연구와 교육을 거쳐 양봉 현장에 자리 잡도록 하는 데까지 이어져야 한다.

이경용 농진청 양봉과장 직무대리는 "이번 개정판이 양봉 농업인과 양봉을 처음 접하는 국민의 이해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며 "용어를 다듬는 노력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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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혁수 기자

머니투데이 경제부에서 농업분야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UNC) 저널리즘스쿨에서 1년간 연수를 마치고 돌아와 2013년부터 농식품부를 출입하며 한국 농업정책과 농업현장의 이야기로 독자들과 소통하고 있습니다. 농업분야에 천착해 오는 동안 '대통령표창' 등 다양한 상을 수상한 것은 개인적으로 큰 기쁨이지만 동시에 막중한 책임감도 느끼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신성장동력산업으로 발전하는 '농업의 무한변신'을 독자들과 함께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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