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이 된 외국인
한국에 '외국인 사장님'이 늘고 있다. 같은 국적 이주민을 중심으로 상권을 형성한 외국인 자영업자들은 지역경제의 한 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산업단지와 주택가, 도심 등 상권이 형성된 배경과 모습도 다양하다. 하지만 관련 통계나 지원 정책은 여전히 사각지대다. 외국인 자영업자들이 바꿔놓은 지역 상권의 모습과 창업·정착 과정에서의 어려움, 정책적 과제를 짚어봤다.
한국에 '외국인 사장님'이 늘고 있다. 같은 국적 이주민을 중심으로 상권을 형성한 외국인 자영업자들은 지역경제의 한 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산업단지와 주택가, 도심 등 상권이 형성된 배경과 모습도 다양하다. 하지만 관련 통계나 지원 정책은 여전히 사각지대다. 외국인 자영업자들이 바꿔놓은 지역 상권의 모습과 창업·정착 과정에서의 어려움, 정책적 과제를 짚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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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베키스탄 유학생이나 노동자들은 꼭 들르는 곳이에요. " 서울 중구 광희동 중앙아시아거리에 있는 우즈베키스탄 음식점 '스타사마르칸트'는 한국에 거주하는 우즈베키스탄인들의 사랑방이다. 사장 아모노씨(57)는 "특별히 모임을 운영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중앙아시아인들이 모인다"며 "치료를 받으러 한국에 온 사람들이 병원에 다녀온 뒤 식사하러 오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광희동 중앙아시아거리에서는 한국어보다 러시아어 간판을 더 쉽게 찾을 수 있다. 외국인뿐만 아니라 한국인이 운영하는 가게에도 러시아어나 몽골어 간판을 단 곳이 많다. 잡화점에선 초콜릿과 향신료, 차는 물론 진공포장된 육류까지 다양한 식료품을 판매한다. 인근 조지아 음식점 '환치'에선 고려인 가족과 친구들의 생일잔치가 자주 열린다. 이곳에선 조지아 전통 만두 '힌칼리'와 꼬치구이 '샤슬릭' 등을 맛볼 수 있다. 매니저 올가씨(35)는 "환치는 고려인들의 만남의 장소"라며 "한국인 손님도 많아 한국인 입맛에 맞게 조지아 요리를 변형하고, 음식을 먹는 방법도 알려준다"고 했다.
# 동남아시아 출신 중년 여성이 채소가 담긴 비닐봉지를 들고 시장 골목을 걷는다. 거리에는 두리안과 무지개망고, 건두부 등 이색 식재료가 눈에 띈다. 간판은 인도네시아어와 아랍어 등으로 쓰여있다. 한 음식점에서는 인도네시아 노래가 흘러나온다. 한 여성이 들고 가는 라디오에선 중국어가 들린다. 경기 안산 원곡동 다문화거리에는 이국적인 풍경이 펼쳐졌다. 인근 산업단지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모여 살면서 형성된 상권이다. 고향의 음식과 물건을 찾는 이주민들이 늘자 같은 국적의 외국인들이 하나둘 가게를 열기 시작했다. 1993년 한국인과 결혼해 귀화한 인도네시아 출신 윤설아씨(53)는 3년 전 이곳에 카페를 열었다. 윤씨는 "가게를 열기 전에도 외국인이 많은 안산을 자주 찾았다"며 "생일잔치 등 고향 사람들이 함께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9년 전 한국에 온 디미트리씨(45)는 요리사로 일하다 2020년 우즈베키스탄 음식점을 차렸다. 그는 "친척과 친구 대부분이 안산에 살고, 우리말을 하는 사람도 많아 이곳에 왔다"며 "손님 대부분이 고향 사람이라 고향 음식을 만들고 있다"고 했다.
전국 곳곳에 형성된 외국인 상권은 탄생 배경도 제각각이다. 산업단지 일자리를 따라 외국인 노동자들이 모여들면서 형성되거나, 가족 단위 이주민들이 정착하면서 자연스럽게 성장한 곳도 있다. 도심의 교통 접근성과 외국인 상인들의 인적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이민정책연구원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국내 거주 외국인의 자영업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외국인 개인사업자 신용카드 가맹점이 가장 많은 지역은 경기 안산으로 지난해 6월 기준 450개소(4. 4%)로 집계됐다. 뒤이어 △경기 수원 395개소(3. 8%) △서울 영등포구 358개소(3. 5%) △경기 시흥 354개소(3. 4%) △경기 부천 353개소(3. 4%) 순이었다. 신한카드에 등록된 외국인 개인사업자 가맹점 1만323개를 분석한 결과다. 외국인 상권은 대체로 이주민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을 중심으로 발달했다. 외국인들이 모여 살면서 고향 음식과 생활용품을 찾는 수요가 생기고, 이를 바탕으로 외국인들이 직접 가게를 열면서 상권이 확대되는 모습이다.
"한국 사람들이 저 같은 외국인한테 안 좋은 인식을 갖고 있는 것 같아요. 먼저 반말을 하고, 본국에는 집도 없는 사람으로 인식하더군요. " 서울 중구 광희동에서 중앙아시아 식료품점을 운영하는 사토르아가씨(62)는 한국에서 사업을 시작한 뒤 편견과 사기 피해 등 여러 어려움을 겪었다. 그는 "처음 사업을 약속하고 한국 사람들에게 돈을 줬지만 물건도, 돈도 돌려받지 못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가게를 여는 외국인 자영업자들이 늘고 있지만 창업부터 정착까지 넘어야 할 문턱은 여전히 높다. 사업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대출부터 사업자등록과 거래처 확보 등 일반적인 자영업자가 겪는 문제도 외국인이라면 더 복잡하다. 특히 비자 발급·연장을 비롯해 언어 문제, 외국인에 대한 편견은 큰 장벽이 되곤 한다. 올초 서울 서대문구에 튀르키예 케밥 음식점을 연 바를라스씨(24)는 창업 과정에서 행정·금융 절차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는 "과거에 비해 외국인을 상대로 한 비자도 잘 나오지 않고, 외국인등록증을 발급하는 과정이 까다롭다고 느꼈다"며 "한국에서 외국인이 대출을 받고 사업자등록을 하는 과정이 상당히 복잡하다"고 말했다.
외국인 자영업자가 늘어나면서 이들과 상권을 공유하는 한국인 상인들의 시선도 엇갈리고 있다. 외국인 상인과 손님이 늘면서 침체했던 상권에 활기가 돌고 있지만, 문화적 차이에서 비롯된 갈등과 상권 변화에 대한 우려도 여전하다. 서울 광진구 건대 양꼬치거리는 외국인들의 유입이 침체한 상권을 되살린 대표적인 곳이다. 과거 봉제·섬유·금속가공 공장이 밀집했던 이곳은 1990년대 산업 침체로 빈 점포가 늘었지만, 2000년대 들어 중국인 상인과 주민들이 유입되면서 상권이 활기를 찾았다. 이후 방송 등을 통해 양꼬치가 인기를 끌면서 외국인 관광객뿐 아니라 인근 대학생과 직장인들의 발길도 이어졌다. 이곳이 번화가로 자리 잡자 구청도 '양꼬치거리'라는 이름을 붙였고, 주변 상권에도 활력이 돌았다는 게 상인들의 설명이다. 양꼬치거리에서 식당을 영업하는 70대 오모씨는 "2000년대 들어 중국인들이 유입되면서 동네가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며 "중국인 손님이 늘고 동네 주택에도 사람들이 들어와 살면서 상권이 살아났다"고 말했다.
전국 곳곳에서 외국인 자영업자들이 지역 상권에 뿌리내리고 있지만 이들의 현황을 파악할 수 있는 정부 통계는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외국인 체류 현황과 자영업 관련 통계가 부처별로 흩어져 있는 데다 국적과 체류자격, 업종 등을 종합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자료도 제한적이다. 정확한 실태 파악 없이는 외국인 자영업자 증가에 따른 정책 수요에도 제대로 대응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7일 국가데이터처의 '2025년 이민자 체류실태 및 고용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5월 기준 국내 상주 외국인 중 자영업자는 5만6000명으로 전년(4만9000명) 대비 14. 3% 증가했다. 국가데이터처는 외국인 취업자에 대해 △연령 △산업 △국적 △체류자격 △근무지역 등 특징별로 세분화해 집계하고 있다. 반면 외국인 자영업자는 '고용원이 있는 자영업자'와 '고용인이 없는 자영업자'로만 구분된다. 외국인의 체류자격은 법무부가, 자영업자 지원 정책은 중소벤처기업부가 담당하는 등 관련 업무도 쪼개져 있어 구체적인 실태를 확인하기 어려운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