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변의 법으로 본 이슈]

A씨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장례비와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아버지 명의 계좌에서 돈을 인출했다. A씨는 어차피 상속받을 돈이고 아버지를 위해 쓴 돈이니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A씨 동생은 동의도 없이 A씨가 마음대로 행동했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상속인이라면 고인이 남긴 계좌에서 돈을 꺼내 써도 괜찮을까.
다른 공동상속인에게 알리지 않은 채 고인의 사망 후 고인 명의의 카드·통장·비밀번호 등을 마음대로 이용해 돈을 인출하거나 이체하는 등의 행위를 하면 형사책임이 문제될 수 있다.
고인이 사망하면 재산상 권리와 의무는 상속인에게 승계된다. 공동상속인이 여러 명이라면 상속재산에 관한 권리 역시 여러 상속인에게 귀속된다. 한 명의 상속인이 자신의 상속분을 갖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고인 명의의 계좌를 단독으로 사용할 권한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만약 상속인 중 한 명이 고인의 계좌에서 현금을 인출하거나 계좌를 이체한 경우 사실관계에 따라 적용될 수 있는 죄명은 달라진다. 공동상속인이 고인 사망 직후 다른 상속인의 동의 없이 고인의 체크카드로 현금을 인출한 사건에서 법원은 절도죄를 인정했다. 현금인출기 관리자인 금융기관이 고인의 사망 사실과 상속관계를 알지 못한 상태에서 정상적인 지급절차를 거치지 않고 현금을 가져간 점 등을 고려한 판결이다.
인터넷뱅킹으로 돈을 옮긴 경우에도 형사책임이 인정될 수 있다. 법원은 공동상속인이 고인의 사망 사실과 다른 상속인의 존재를 금융기관에 알리지 않은 채 고인의 인증수단과 비밀번호를 이용해 예금을 자신의 계좌로 이체한 사건에서 컴퓨터등사용사기죄를 인정했다.
고인의 장례비나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한 목적으로 돈을 인출했다고 하더라도 문제가 된다. 법원은 고인의 장례비용으로 사용할 목적이었다고 하더라도 다른 공동상속인의 위임 없이 고인의 체크카드를 이용해 현금을 인출하거나 계좌이체를 한 경우 형사 책임이 성립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형사상 책임과 별개로 민사상 책임도 발생한다. 공동상속인 한 명이 고인의 계좌에서 돈을 인출해 개인적으로 사용했다면 다른 상속인의 상속분에 해당하는 금액을 부당이득으로 반환해야 한다. 법원은 공동상속인이 사망 후 고인의 예금을 인출한 사건에서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다른 상속인의 상속지분에 해당하는 금액을 반환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부모가 사망한 후 재산을 정리해야 한다면 금융기관에 고인의 사망 사실과 상속관계를 알리고 정해진 상속예금 지급절차를 밟아야 한다. 상속인은 일반적으로 피상속인의 사망 사실과 상속관계를 확인할 수 있는 기본증명서·가족관계증명서, 본인의 신분증 등을 준비해 금융기관에 제출하게 된다. 금융기관은 제출된 서류를 통해 상속인과 상속관계를 확인한 뒤 예금을 지급하거나 명의를 변경한다. 이때 공동상속인 사이의 별도 합의가 있는지 등도 확인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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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비·병원비·세금처럼 상속재산에서 지출해야 할 돈이 있다면 다른 상속인들과 먼저 협의하고 영수증이나 이체내역 등 객관적인 자료를 남겨두는 것이 좋다. 나중에 상속재산을 정산할 때 돈의 사용처를 둘러싼 분쟁을 줄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