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7년 10월 9일(한국시간). 미국 영화 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이 성추행 혐의로 자신이 공동 설립한 영화 제작사에서 해고됐다.
와인스타인이 30여 년 동안 배우와 모델, 영화사 직원 등을 상대로 성추행을 저질러왔다는 뉴욕타임스의 보도가 나온 지 사흘 만이었다.
와인스타인은 남동생 밥과 함께 1979년 영화사 '미라맥스'를 설립했으며, 1990년 이탈리아 영화 '시네마 천국'을 수입하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후 2005년 '와인스타인 컴퍼니(TWC)를 세워 수많은 흥행작을 제작·배급해왔다.
대표작으로는 영화 '펄프픽션'(1994) '잉글리시 페이션트'(1996) '굿 윌 헌팅'(1997) '셰익스피어 인 러브'(1998) '반지의 제왕'(2001) '갱스 오브 뉴욕'(2002) '시카고'(2002) '킬빌'(2003) '킹스 스피치'(2011) '실버 라이닝 플레이북'(2012) 등이 있다. 아카데미상 수상작만 81편에 달하며, 봉준호 감독이 연출한 '설국열차'의 북미 배급을 맡기도 했다.
당시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와인스타인은 최소 30년 동안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함께 일한 배우와 직원 등 다수의 여성을 성추행·성희롱했으며, 최소 8명에게 합의금을 지급해 문제 제기를 막았다. 와인스타인 측과 피해 여성 간의 합의는 1990년부터 2015년까지 20년 이상에 걸쳐 이뤄졌다.
보도 이후 파장이 일자 와인스타인 컴퍼니(TWC) 측은 "지난 수일간 하비 와인스타인이 저지른 잘못된 행동에 대한 새로운 정보가 나옴에 따라 경영진은 하비 와인스타인의 고용을 즉시 종료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기네스 팰트로·안젤리나 졸리도 당했다…호텔로 불러 성추행
와인스타인은 상대를 자신의 호텔 방이나 집, 사무실 등으로 부른 뒤 알몸 마사지나 구강 성교 등을 요구하는 방식으로 100명 이상의 수많은 여성들을 성적으로 괴롭혔다는 의혹을 받았다.
피해자 중에는 드라마 '스타트렉' 시리즈로 잘 알려진 배우 애슐리 저드도 있었다. 저드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1997년 업무상 만남으로 알고 와인스타인의 호텔 방을 찾았다가 목욕 가운만 걸친 그를 마주했다며 와인스타인이 '마사지를 해줄 수 있냐', '샤워하는 모습을 봐도 되냐'고 물었다고 고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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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여배우들의 폭로가 잇따랐다. 기네스 팰트로는 22세 때 와인스타인의 호텔 방에 갔다가 '침실로 가서 마사지를 해달라'라는 요구를 받았으며, 이를 거절하자 와인스타인이 화를 냈다고 밝혔다.
안젤리나 졸리는 1990년대 후반 호텔 방에서 만난 와인스타인이 자신을 추행하려 했으며 이를 거부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그 일 이후로 다시는 그와 함께 일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조심하라고 경고했다"고 전했다.
레아 세이두는 2012년 패션쇼에서 만난 와인스타인이 영화 이야기를 하자며 자신을 호텔 방으로 불렀다고 밝혔다. 그는 "소파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갑자기 그가 제게 달려들어 키스하려 해 밀쳤다"고 말했다.
카라 델레바인도 "영화 미팅이 끝난 후 와인스타인이 내게 키스하려 했다"며 인스타그램을 통해 피해 사실을 공개했다.
와인스타인은 임시 직원으로 단 하루 일했던 직원을 호텔로 불러 '나와 성관계하면 경력 쌓는 데 도움을 주겠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영국 런던의 한 호텔과 미국 뉴욕의 아파트에서 성폭행을 당했다고 밝힌 배우와 직원도 있었다.
여성 임원이 정리한 메모…추악한 성범죄 알렸다
와인스타인의 성범죄가 세상에 알려질 수 있었던 건 2015년 와인스타인 컴퍼니의 임원이었던 로렌 오코너의 메모 영향이 컸다.
오코너는 피해 여성들을 대신해 여직원과 배우 지망생에 대한 와인스타인의 상습적인 성희롱과 성추행 등 권력 남용 사례를 정리해 인사 부서와 경영진에 전달했다.
당시 오코너는 직장 내에서 벌어진 심각한 성추행은 압도적인 권력 차이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하며 "그와 나의 힘의 균형은 10대 0이었다"고 말했다.
회사 측은 오코너의 고발을 묵인했다.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문제를 덮는 데 급급했다. 오코너와 비방 금지 조항이 포함된 비밀 유지 계약을 맺으며 합의금을 건네 그가 관련 문제에 대해 언급할 수 없도록 했다.
그러나 이후 뉴욕타임스가 오코너의 고발 메모를 입수하면서 와인스타인의 성범죄가 세상에 알려지게 됐고, 이는 성폭행 피해를 고발하는 '미투'(Me Too) 운동이 전 세계로 확산하는 계기가 됐다.
당초 와인스타인은 뉴욕타임스를 상대로 5000만 달러(한화 약 680억원) 규모의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할 것이라고 대응했으나, 보도 직후 "과거 동료들에게 행동했던 방식이 많은 고통을 유발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진심으로 사과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징역 23년형 선고 후 '감형'…끝나지 않은 재판
2018년 5월 25일(현지시간) 성추행 폭로 약 7개월 만에 와인스타인은 미국 뉴욕 맨해튼 경찰에 자진 출석해 체포됐다.
와인스타인은 2004년과 2013년 발생한 두 건의 성폭력 사건으로 1급 강간, 3급 강간, 1급 성범죄 행위 등의 혐의를 받았다. 이후 2006년 제작 스태프 미리엄 헤일리를 성폭행한 혐의도 추가됐다.
검찰은 와인스타인이 자신의 영화 제작자의 지위와 영향력을 이용해 피해 여성들을 자신의 통제 아래 두고 성적 행위를 강요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변호인단은 합의에 의한 성관계였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2020년 3월 와인스타인은 2006년 사건의 1급 성범죄와 2013년 사건의 3급 강간 혐의로 유죄 평결을 받아 징역 23년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와인스타인 측은 검찰이 기소 내용에 포함되지 않은 여성 3명을 증인으로 세웠고, 법원이 이를 증거로 채택한 점은 심각한 재판상 오류라고 주장하며 항소했다.
2024년 뉴욕주 최고법원(대법원)은 이를 받아들여 기존 유죄 판결을 파기하고 재심을 명령했다. 지난해 재심에서는 앞서 유죄로 인정됐던 2013년 사건이 유죄 판결 없이 종결됐고, 2006년 1급 성범죄 행위만 유죄가 확정돼 와인스타인은 지난달 징역 15년형을 선고받았다.
와인스타인은 법정에서 2006년 사건 피해자인 헤일리에게 사과하면서도 자신은 무죄라고 주장했고, 변호인단은 항소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와 별개로 와인스타인은 캘리포니아에서도 2013년 로스앤젤레스(LA) 호텔 방에서 한 배우를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2022년 유죄 평결을 받은 뒤 2023년 징역 16년형을 선고받았다.
다만 캘리포니아 항소법원은 2024년 뉴욕에서 파기된 유죄 판결을 형량 산정에 고려한 것은 오류라고 판단해 형량을 파기했으며, 재선고 절차가 진행 중이다.
와인스타인, 교도소서 폭행당해…"지옥" 수감 생활
와인스타인은 가혹한 수감 환경과 잦은 폭력 사태로 악명이 높은 뉴욕의 라이커스 아일랜드 구치소에 수감됐다가 이후 건강 문제로 벨뷰 병원 교도소 병동에 이송됐다.
골수성 백혈병, 당뇨, 고혈압 등 여러 질병을 앓아 온 와인스타인은 수감 중 심장 수술을 받았으며, 코로나19 감염, 폐렴으로 인한 심부전, 심각한 호흡 곤란 증세를 보이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와인스타인은 지난 3월 할리우드 리포터와의 인터뷰에서 동료 수감자에게 폭행당하는가 하면 생명의 위협을 당해 독방 생활을 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며 수감 생활을 "지옥"(Hell)이라고 표현했다.
와인스타인은 성추문에 휩싸인 뒤 패션 디자이너 조지나 채프먼과도 이혼했다. 채프먼은 와인스타인의 성범죄 의혹이 알려진 직후 이혼 소송을 시작해 2021년 이혼을 확정했다. 와인스타인은 채프먼에게 위자료 1500만~2000만 달러(약 203억원~271억원)를 지급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양육권도 모두 빼앗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