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로는 제발 쓰지 마세요."
중소기업 취재를 다니다 자주 듣는 말이다. 회사 실적이나 앞으로 계획 등을 얘기해줄 수는 있지만 기사화해서는 곤란하다는 요청이다. 물론 실적발표 시즌이 다가오면 간혹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대기업들로부터 이런 말을 들을 때도 있다. 대기업들이 이런 부탁을 할 때는 실적이 나빠졌을 때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그 이유는 사뭇 다르다. 중소기업은 이유를 불문하고 '무조건' 기사를 쓰지 말아달라고 한다. 이유는 하나다. 대기업의 눈치를 봐서다. 실적이 좋아도 당당히 말할 수 없다. 아직도 일부 대기업은 '다 우리 덕분인데…'라는 인식을 버리지 못한다.
중소기업이 이익을 많이 냈다는 기사가 나오면 대기업에서 바로 전화가 온다고 한다. "기사 내보내지 마라" "취재에 응하지 마라"는 물론 심지어 "공시하지 마라"는 소리도 듣는다고 한다. 돈 좀 번다고 하면 단가 인하 압박에 시달리는 경우도 심심찮다.
새로운 거래처를 늘리는 것도 대기업의 눈치를 봐야 한다. 한 예로 A사는 외국회사에 제품 공급을 시작한다는 기사가 나온 뒤 원래 거래처로부터 '아웃'당하기도 했다. B사는 거래하는 대기업으로부터 "물량 다 뺀다"는 압박에 못이겨 기사뿐 아니라 증권사 보고서까지 차단하느라 분주하다.
상장기업인 중소기업들은 주주, 투자자, 잠재적인 투자자에게 정확한 정보를 알릴 의무가 있다. 더구나 경쟁력을 갖춘 회사라면 실적을 바탕으로 자신을 알려야 한다. 그래야만 한국에서도 세계적인 중소기업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한때 부품업계에선 "매출이 2000억원을 넘어가면 끝장"이라는 말이 공공연히 나돌 정도였다.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진정으로 '상생'하기 위한 '파트너'로 생각하는 풍토가 아직 뿌리내리지 못했다는 방증이다.
중소기업들이 '상생'과 '동반성장'을 피부로 느끼려면 현장부터 달라져야 한다. 얼마를 지원하고 기술개발에 필요한 인력을 지원하는 것보다 눈치보지 않고 자신의 역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분위기가 먼저다.
"실적이 좋아도 눈치보느라 공시를 뒤늦게 하는 경우도 많다. 주주로부터 왜 공시하지 않느냐, 실적이 저조해 눈치보는 거냐는 말을 들을 때는 답답하다." 이런 중소기업인이 더이상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