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미국 실리콘밸리에 R&D센터, 페어차일드 한국 부천에 8인치 라인 증설

그는 40년전 스승이 꿈을 키웠고, 자신도 공부했던 실리콘밸리에서 새로운 출발을 다짐했다.
권오현 삼성전자 DS(디바이스 솔루션) 부문 대표이사 부회장의 얘기다. 지난 10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에서 열린 DS부문 미주 총괄 신사옥(실리콘밸리 캠퍼스) 기공식. 권 부회장은 "삼성전자의 실리콘밸리 캠퍼스가 혁신과 소통을 위한, 세계에서 가장 매력적인 장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오랜 꿈이 현실로 성큼 다가온 순간이다.
이보다 10여 시간 앞서 경기 부천 페어차일드코리아반도체 공장에선 8인치 신규라인 가동식이 진행됐다. 마크 톰슨 페어차일드반도체 회장은 "한국 공장의 생산능력을 한층 더 강화해 아시아시장에 대응하겠다"고 의욕을 보였다.
◇40년 역사 '한국반도체의 산실' 부천공장= 한국과 미국의 반도체 선발주자가 같은 날(10일) 상대국에서 특별한 이벤트를 진행했다.
한국 반도체 산업에 삼성이 있다면 미국에는 페어차일드가 있다. 미국에 실리콘밸리가 있다면, 한국에는 부천이 있었다.
경기 부천은 한국 반도체 산업의 발상지다. 1974년 미국 모토롤라 생산부장 출신인 재미공학자 강기동 박사가 사업가 이상규 캠코 회장과 100만 달러를 들여 국내 최초의 전공정 반도체 회사 '(주)한국반도체'를 부천에 설립한 것이다.
한국반도체 부천공장은 설립 2개월만인 그해 12월 자금을 댔던 이상규 회장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지분 매각에 나섰고, 이건희 당시 삼성전자 부회장(현 회장)이 사재를 털어 50%의 지분을 샀다. 2년 후 삼성이 추가로 50%를 인수해 삼성반도체라는 이름으로 운영됐고 삼성전자와 통합된 후 비메모리반도체를 생산했다. 하지만 1999년 IMF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삼성이 비주력 사업매각 차원에서 페어차일드에 1억 4000만달러에 넘기는 등 파란만장한 역사를 가졌다.
부천공장은 한국 반도체 연구생들에게는 살아있는 실험실과 같은 존재였다. '한국 반도체 학계의 대부'로 불리는 김충기 카이스트 명예교수는 1970년 미국 페어차일드에 입사해 고체촬상소자(CCD) 등을 4년 가량 연구하다 1975년 후학 양성을 위해 귀국해 당시 홍릉 KAIST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KAIST 홍릉 캠퍼스의 잔디밭에서 열띤 토론을 벌였던 제자 중 한 명이 그 해 대학원 석사 과정에 입학한 권 부회장이다. 현장실습은 당시 삼성에 인수된 부천의 한국반도체 공장으로 자주 가곤 했고, 그 안에는 권오현 학생 외에도 진대제 학생(전 정통부 장관)도 포함돼 있었다.
◇실리콘밸리 '8인의 배신자'가 일군 미국 IT 역사= 삼성과 1999년 부천공장 양수도 계약을 맺은 페어차일드는 실리콘밸리 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반도체회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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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반도체 산업은 미국 동부 뉴저지의 AT&T 벨랩과 서부 캘리포니아의 새너제이 팔라알토(현 실리콘밸리 지역) 등 양대 축으로 성장해왔다. 그 이후 남부 텍사스와 남서부의 아리조나에서도 TI와 모토롤라 등이 씨앗을 뿌렸다
1947년 동부 뉴저지 벨랩에서 존 바딘, 월터 브래튼 등과 함께 최초의 트랜지스터를 개발했던 윌리엄 쇼클리가 벨랩을 뛰쳐나와 백크만인스트루먼트의 '쇼클리반도체연구소'를 설립할 때 갓 대학을 졸업한 로버트 노이스와 고든 무어(인텔 공동창업자) 등이 합류했다.
'쇼클리 키즈'로 불렸던 이들 8명(소위 실리콘밸리 8인의 배신자들)은 '고집불통' 쇼클리를 벗어나 셔먼 페어차일드의 자금 지원을 받아 1957년 따로 반도체 회사를 실리콘 밸리에 설립했는데, 이 회사가 페어차일드반도체다.
이 '8인의 배신자'들이 씨앗이 돼 페어차일드 설립 이후 인텔 등 60여개의 반도체회사들이 이 지역에 들어섰고, 이 지역의 이름은 반도체의 원료인 실리콘(Si)에서 따와 '실리콘밸리'가 됐다.
윌리엄 쇼클리의 트랜지스터를 기반으로 한 집적회로(IC, 트랜지스터와 캐파시터, 저항 등을 집적한 칩)의 개발은 1959년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의 잭 킬비와 페어차일드의 로버트 노이스(인텔 창업자)에 의해 이뤄졌다.
이 IC를 상업화, 대중화할 수 있도록 한 역사적인 발명인 금속산화물 전계효과트랜지스터(MOS-FET)는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인이 아닌, 벨랩 연구원으로 있던 한국인 공학자 강대원 박사에 의해 1960년에 이뤄졌다.
강 박사의 MOS-FET 개발이 없었다면, 쇼클리도 잭 킬비나 로버트 노이스도 빛을 잃었을 것이다. 강대원 박사의 기술을 기반으로 한 전공정 반도체 기술을 그의 중·고·대학 후배인 강기동 박사가 부천으로 가져와 한국반도체를 설립했다. 한국과 미국의 반도체 산업 인연이 각별해 보이는 이유다.
지난 10일은 한국 반도체의 시초가 된 부천공장에서 미국 반도체의 원조 기업인 페어차일드가, 미국 반도체의 산실인 실리콘밸리에서는 아시아의 작은 기업에서 세계 메모리반도체 1위로 성장한삼성전자(189,600원 ▲22,400 +13.4%)가 각각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는 의미 있는 하루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