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유로피언 트럭레이싱(ETRC) '30주년' 경기 열린 獨 뉘르부르크링 서킷

"우우웅 콰아앙" 서킷에서 마치 비행기와 같은 웅장한 엔진음이 터져 나왔다. 닿을 듯 말 듯 코너링을 하는 차는 다름 아닌 트럭. 속도 경쟁이 펼쳐진 서킷에는 바퀴 자국이 짙게 남았다. 이내 곳곳에서 관중의 박수와 환호가 터져 나왔다.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방문한 독일 라인란트팔츠주 뉘르부르크의 자동차 경주장 '뉘르부르크링' 서킷에는 트럭들의 스피드 향연이 펼쳐졌다. FIA(국제자동차연맹)의 유로피언 트럭레이싱(ETRC) 시리즈가 30주년을 맞아 최대 규모로 개최됐다.
햇빛이 내리쬐던 일요일 뉘르부르크링 서킷에는 이른 아침부터 유럽 각지에서 몰려들어온 관중으로 붐볐다. 일주일 전 프랑스 폴 아르마그나 서킷에서 개최됐던 ETRC가 '자동차의 고장' 독일을 찾았기 때문인지 열기가 뜨거웠다. "난 트럭운전자다(I'm a trucker)"라는 문구가 곳곳에서 보였다.
유로피언 트럭레이싱은 1985년 시작된 이래 유럽 전역에서 열리는 모터스포츠다. 상용차에 대한 관심이 비교적 적은 한국과 달리 유럽에서는 트럭이 모터스포츠를 대표하는 하나의 차종으로 남녀노소의 인기를 받고 있었다.
유럽 중심부에 위치해 어느 곳으로도 이동이 자유로운 개최지 독일의 지역적 특성도 반영된 모습이었다.

뉘르부르크링 서킷에서 열린 이번 대회는 올해 진행될 10개 대회 중 5번째다. 지난달 26~27일 연습과 예선전을 거쳐 28일 결승전으로 진행됐다.
트럭레이싱은 F1(포뮬러원)이나 각종 스포츠카가 펼치는 레이싱 경기와 달리 육중함과 거친 힘이 매력이다. 특히 대회 차량이 F1과 달리 운송업 등 실제 삶에 기반을 둔 상용차라는 특성으로 경기는 트럭의 성능과 내구성을 검증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대회에 참여하는 트럭들은 1100마력 이상의 힘을 내뿜는 트랙터들이다. 엔진 등이 튜닝됐지만 양산 트럭에 기반을 두고 있다. 50개 이상 양산된 바퀴 축이 2개인 트랙터로, 최소 무게가 18톤 이상이 되는 경우만 참여할 수 있다.
경기에 참여하는 트럭들은 세계 주요 상용차 브랜드의 이름을 달고 있었다. 메르세데스-벤츠 트럭과 만(MAN)트럭, 볼보트럭, 스카니아, 이베코 등 주요 유럽 업체의 트럭 외에도 영화 '트랜스포머'에 나온 미국 프라이트라이너(Freightliner)사의 트럭도 출전했다. 내구성과 주행성능을 두고 브랜드 간 자존심 대결이 치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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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승전은 1바퀴에 거리가 3.629km인 뉘르부르크링 서킷을 가장 빠르게 13바퀴 도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오후 1시25분으로 예정된 경기 시작 전부터 관중석에는 빈자리를 찾기 힘들었다. 어린 아들을 무릎에 앉힌 30대 남성부터, 60,70대 노부부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뜨거운 햇살에 트럭 업체가 제공한 모자를 하나씩 썼다.
경주는 20여대의 차량이 최초 순서에 맞춰 서킷을 1바퀴 주행한 뒤 본격 시작됐다. 박수와 환호를 받으며 관중석을 지나갔던 트럭들은 시작된 경쟁에 웅장한 엔진음을 쏟아냈다.
경주는 빠르면서도 무거웠다. 차량보다 '머신'이라 불리는 F1이 600~800마력을 힘을 구현하는 반면 경주 트럭들은 1100마력 이상의 힘을 내뿜으며 서킷을 달렸다. 트럭 무게는 2~3톤 안팎의 승용차 보다 6~7배 더 나갔지만 시속 100km는 쉽게 넘는 모습이었다.
코너링 경쟁이 하이라이트였다. 육중한 몸체였지만 코너링은 부드러웠다. F1 등 경주에 특화된 차량들과 견줘 남부럽지 않았다. 빈틈을 노리다 힘에서 밀린 트럭들은 지나가야 할 코너 대신 잔디밭에 올라서기도 했다. 트럭들이 수차례 지나간 자리에는 진한 바퀴 자국이 새겨졌다.
충돌 끝에 차량 측면 일부가 종이처럼 잘려나간 모습도 포착됐다. 관중들은 긴 서킷으로 트럭들이 자취를 감출 때에는 중계 영상을 보며 숨죽였다. 트럭이 오기를 기다리며 촬영을 준비하는 팬들도 많았다.
경기 1위는 24분54초로 총 47.18km를 주행한 노버트 키스 선수에게 돌아갔다. 만트럭을 운전한 키스 선수는 현재 누적 319점으로 2위를 70점 이상 따돌리며 시즌 1위를 유지하고 있다. 2위는 프라이트라이너를 몬 아담 락코가 24분55초로 주행을 마쳤다.
그러나 1등에게만 박수가 몰리지는 않았다. 경주가 모두 끝난 뒤 전 차량은 경기가 끝났음을 알리며 서킷을 돌았다. 지켜봐준 관중에 대한 예의로 보였다. 관중은 트럭 한대 한대가 지나갈 때마다 환호성과 박수로 화답했다. 부모를 쫓아온 4~5살 아이들은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자녀를 보는 아버지의 얼굴에 미소가 번질 만 했다.

트럭레이싱이 이번 대회의 핵심 이벤트였지만 전부는 아니었다. 30주년을 맞이한 만큼 '트럭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또 '상용차 대국' 독일의 고객들에게 제품을 소개하는 마케팅 장소이기도 했다. 독일은 세계 1, 2위 상용차 업체인 벤츠 트럭과 만트럭의 본거지이기도 하다.
경주가 진행되는 서킷 밖으로는 각 상용 업체의 부스 외에도 튜닝업체, 특장자 업체 등이 각 차량을 전시하며 방문객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트럭이 하나의 자동차 문화를 이끄는 모습이었다. 어린이들은 트럭에 직접 앉아보거나 모형 트럭 장난감을 들고 다녔고, 여성들은 지상 32m 높이까지 사다리를 뻗을 수 있는 특장차에 직접 올라서기도 했다.
트럭레이싱은 또 다른 유럽 국가를 연결해주는 매개체로도 보였다. 프로 선수들의 메인 경주 외에도 유럽 아마추어 선수들의 경주가 펼쳐졌는데 이를 참가하기 위해 유럽 전역에서 넘어온 이들이 많았다.
영국에서 운송업체를 운영하는 아마추어 선수 리차드 콜렉트씨(54)는 영국에서 페리를 타고 프랑스와 벨기에를 거쳐 15시간만에 뉘르부르크링에 온 경우였다.
콜렉트씨는 "트럭레이싱을 관람하다가 직접 도전한 지 23년이 지났다"며 "고가의 튜닝 비용 등은 세어본 적 없지만 내겐 가장 소중한 취미"라고 말했다. 그는 아내를 비롯해 가족들을 이끌고 바다를 건너왔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