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 구멍뚫린 화장지 안전(上)

위생용품의 안전 기준을 관리·감독하는 식품의약품안전처가 '형광물질' 화장지의 판매를 허용하면서 형광물질을 위험물질로 지정한 것으로 드러났다. 화장지를 비롯한 위생용품 상당수에서 해당 물질이 검출되고 있어 소비자의 혼란이 예상된다.
식약처는 지난 23일 '위생용품의 회수·폐기 등에 관한 절차' 행정규칙 제정안을 행정예고하면서 대장균 등과 함께 형광증백제를 위생용품 위해성 등급 3등급으로 지정했다. 형광증백제는 제품을 밝게 보이게 하는 첨가제로 인체 유해 정도에 대한 분석이 불명확한 물질이다.
제정안은 위해 우려가 있는 위생용품의 위해성 등급 신설과 회수 폐기에 대한 세부절차를 마련하는 내용이다. 위해성 1등급은 1급 발암물질로 알려진 포름알데히드, 폴리염화비페닐(PCBs), 6가크롬 등이고 2등급은 비소·납·카드뮴·수은 등 중금속이나 염소화페놀류, 메탄올 등이다. 위해성 등급을 받은 물질이 검출되면 부적합 긴급 통보를 받은 날로부터 1등급은 1일 이내, 2등급은 2일 이내, 3등급은 3일 이내 회수 명령을 이행해야 한다.
위해성 3등급으로 분류한 형광증백제는 소비자들이 흔히 사용하는 화장실용 화장지에서 검출된다. 현행법상 미용 화장지와 달리 화장실용 화장지의 경우 원료로 재생지 사용을 허용하고 있다. 형광증백제가 사용된 A4 등 다른 재생지가 섞이면서 검출되는 구조다. 발암물질인 포름알데히드의 경우 4mg/L 이하로 기준농도를 정해놨지만 형광증백제는 검출과 불검출만 따진다.

위생용품 안전관리 주무부처인 식약처는 그동안 자원 재활용 차원에서 화장실용 화장지의 재생지 사용을 허용해왔다. 하지만 형광증백제의 위해등급 지정으로 위생용품 안전관리가 오락가락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현재 셔츠나 속옷 등에도 형광증백제 사용을 금하지 않고 있음에도 지난해 위생물수건에 대해선 형광증백제를 검사항목으로 추가한 바 있다.
학계에 따르면 섬유나 종이를 하얗게 표백하는 형광증백제는 피부에 오래 접촉할 경우 아토피, 피부염 등 각종 피부질환뿐 아니라 입술을 닦아 섭취할 경우 장염 등 소화기질환과 암까지 일으킬 수 있는 위험 물질로 알려져 있다. 때문에 그동안 수입산 재생지 사용을 기피하는 국내 주요 화장지업계와 시민사회단체에서는 형광증백제 사용을 금지해줄 것을 정부에 여러 차례 요구해 왔다.
김정수 환경안전건강연구소장은 "식약처가 형광증백제를 유해등급에 포함했다는 것은 세계보건기구 등 해외 사례와 자체 시험결과 등을 토대로 유해성이 있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라며 "새로운 평가체계를 만들다 보면 현황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았을 수 있는데 새로운 관리체계를 통해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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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관련해 식약처는 "위생용품 관련 행정규칙 제정안은 현재 의견조회 중으로 확정된 내용이 아니다"며 "형광증백제의 위해등급은 포함 여부 등은 의견내용을 토대로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수입산 화장지 원단은 가격이 저렴하지만, 형광물질이 A4 용지와 비슷한 수준으로 검출되기도 하는데, 최종 화장지 제품엔 '국산'으로 표기돼 판매되고 있다.
24일 화장지 업계에 따르면 외국산 화장지 원단을 가져다 국내에서 재단·포장만 한 뒤 '국산'으로 둔갑해 판매하는 화장지가 온라인몰과 홈쇼핑 등에 수두룩하다. 특히 가격 경쟁력이 핵심인 PB(자체브랜드) 상품 중 이런 사례가 많다. 이날 온라인몰 A에서 판매되는 롤 화장지는 표기가 국산품이지만 원단은 인도네시아산이다.
다른 온라인몰도 외국산 원단으로 만든 화장지가 국산으로 표기돼 판매된다. 홈쇼핑도 마찬가지로, B 홈쇼핑이 판매하는 티슈 화장지, 롤 화장지는 인도네시아나 중국산 원단을 썼지만 원산지를 한국, 대한민국, 또는 국내 지명을 썼다.
원단은 외국에서 만들었더라도 재단과 포장을 국내에서 했으니 국산이라 표기한 것이다. 하지만 현행 표시광고공정화법, 위생용품관리법 등에 따르면 최종소비자가 원산지를 오인하도록 하면 안 돼, '국산' 표기만 하면 부정 표기라는 것이 산업통상자원부의 해석이다. 산자부 관계자는 "제조국은 한국이라 하더라도 원산국은 원단 수입국을 표기해야 한다"며 "이를 어기면 처벌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한국에 수입되는 화장지 원단의 94.1%는 인도네시아, 중국산이다. 중국산 비중은 2022년까지 7.1%였다가 △무관세 특혜 △자국 내수 시장 침체로 지난해는 21.2%로 3배가량 커졌다.
수입산 원단은 가격이 저렴한 대신 품질이 떨어진다. 일례로 ISO 국제 표준에 따라 모 대학 연구진이 화장지의 물풀림 시험을 한 결과 국내산은 통과, 수입산은 통과하지 못 했다. 수입산 원단으로 만든 화장지는 변기를 막을 위험이 있는 셈이다.
더 큰 문제는 안전성이다. 수입산 원단은 형광증백제 검출이 빈번하다. 국내 업계가 자체적으로 수입 원단을 구해 시험한 결과 원단에서 형광증백제가 A4용지(80mg/L)와 비슷한 72.5mg/L 검출된 사례도 있다.
화장지에서 형광증백제가 검출되는 것은 원단을 제조할 때 펄프에 종이자원(폐지)을 혼합하기 때문이다. 종이자원 속 인쇄용지의 형광증백제가 미량 검출되는 것이다.
형광증백제는 화학구조가 다양해 모든 증백제가 유해하지는 않고 국산 화장지, 셔츠, 속옷에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것은 무해하다는 게 업계의 의견이다. 한국소비자원도 1995년 "명확한 유해물질로 규정할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외국산은 검증되지 않은 형광증백제를 사용해 유해성을 의심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ISO 국제표준협회 위원이었던 김형진 국민대 임산생명공학과 교수는 "인도네시아, 태국 등에서 만든 화장지 원단은 한국과 달리 증백제의 화학 구성을 모르는 데다, 화장지를 하얗게 만들기 위해 증백제를 인위적으로 넣어서 문제"라며 "더 철저한 관리·감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재활용촉진법상 공공기관은 재생 위생용지를 우선구매하도록 돼있다. 이에 형광증백제의 위험성이 검증되지 않은 중국산 재생 화장지가 학교, 공공병원 등에 납품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화장지 업계 관계자는 "최근의 소비 트렌드가 가성비이기는 하지만 수입산 원단으로 만든 화장지는 안전을 보장할 수 없고 '국산'으로 둔갑해 소비자를 기만하고 있다"며 "현재로서는 수입산 원단 제조 과정에 완제품에 검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제도의 보완이 절실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