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려아연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에 제동을 걸어달라는 MBK파트너스·영풍의 가처분 신청이 기각되면서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추진하는 미국 제련소 프로젝트가 힘을 얻었다. 이와 함께 최 회장은 10%가 넘는 우호 지분을 확보, 1년 넘게 이어져온 경영권 분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됐다.
24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0부(수석부장판사 김상훈)는 MBK·영풍이 고려아연을 상대로 제기한 제3자 배정 유상증자 중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앞서 MBK·영풍은 이번 투자구조가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의 경영권 방어를 위한 방식으로 짜였다며 유상증자를 중지해달라고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하지만 이날 법원은 합작법인을 통한 자금조달이라는 경영상 필요가 있다는 최 회장의 편을 들어줬다.
앞서 고려아연은 지난 15일 미국 국방부와 상무부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약 10조원(66억달러) 규모의 투자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투자를 위해 고려아연은 미국 측과 '크루서블 JV'라는 합작법인을 설립해 공동 운영할 계획이며 해당 합작법인이 유상증자에 참여해 고려아연 지분 10%를 확보하는 안이다.
이날 법원 결정으로 고려아연이 추진 중인 미국 제련소 프로젝트도 본격화될 전망이다. 고려아연은 내년부터 부지 조성에 착수해 2029년부터 단계적으로 상업 가동에 돌입한다는 계획이다. 미국 정부가 '최대한 빠른 시일 내 대규모 물량 확보'를 요구하며 제련소 건설을 위한 행정·금융 지원을 약속한 것으로 알려진 만큼 프로젝트 추진에도 한층 속도가 붙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고려아연 관계자는 가처분 신청 기각과 관련해 "미래 성장을 견인할 크루서블 프로젝트를 차질없이 진행하고 주주가치를 제고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핵심광물 공급망의 중추 기업으로서 국가경제에 기여하고 대한민국의 경제 안보에도 이바지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부터 이어져 온 경영권 분쟁의 흐름도 최윤범 회장에게 유리하게 돌아섰다는 평가다. 고려아연은 제3자 배정 유상증자의 납입기일인 26일 신주 220만9716주를 발행할 예정이다. 내년 3월 정기 주주총회의 기준일이 이달 31일인 만큼 이번에 발행되는 신주는 내년 주총에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이는 고려아연 지분 구조의 변화를 의미한다. 신주 발행 이후 의결권 기준으로 MBK·영풍 측 지분은 43.42%, 최 회장 측 지분은 18.76%로 각각 집계된다. 유상증자 이후 신설 합작법인의 고려아연 지분율은 11.21%로 추산되는데 탈중국 핵심광물 공급망 구축을 위해 제련소 건설을 적극 추진하는 미국 정부 성격으로 볼 때 해당 지분은 최 회장의 우호 지분으로 작동할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기존 우호 지분으로 분류되는 한화(8.15%), LG화학(1.99%), 국민연금(5.08%) 등을 합하면 최 회장 측 지분은 총 45.53%로 MBK·영풍 측을 웃돌게 된다. 지분 경쟁에서 수세에 몰렸던 최 회장 입장에서 반전의 계기를 만든 셈이다.
독자들의 PICK!
이를 바탕으로 최 회장은 MBK·영풍의 이사회 추가 진입 시도를 저지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고려아연 이사회는 최 회장 측 11명, 영풍 측 4명으로 구성돼 있다. 그동안 이사회는 최 회장 측이 장악하고 있었지만 지분율에서는 MBK·영풍 측에 밀려 향후 주도권이 넘어갈 수 있다는 전망이 많았다. 이번 유상증자로 양측 지분이 대등해질 경우 MBK·영풍의 이사회 진입이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다만 영풍·MBK 연합이 항고에 나서며 법적 공방을 이어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영풍·MBK는 이날 법원 결정 직후 입장문을 통해 "기존 주주의 주주가치 훼손 가능성, 투자 계약의 공정성에 대한 우려, 그리고 고려아연이 중장기적으로 부담하게 될 재무적·경영적 위험 요소들이 충분히 해소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고려아연의 경영이 특정 개인이나 단기적 이해가 아닌, 전체 주주와 회사의 장기적 가치 극대화를 중심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모든 제도적·법적 노력을 다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