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농지 투기를 뿌리 뽑겠다며 시작한 사상 첫 농지 전수조사가 농촌의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투기성 농지 취득을 가려내겠다는 정부의 의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크지 않지만, 농사를 짓지 못하는 사람에게 농지를 처분하도록 하는 방식이 고령화와 인구 감소, 농지 거래 실종이라는 농촌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지적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5월 농지 소유·이용 실태를 파악하기 위한 전수조사에 착수했다. 7월까지 기본조사를 마치고 8월부터 현장 확인을 중심으로 한 심층조사에 들어갔다.
허위 영농계획서를 내고 농지를 취득한 뒤 방치하거나 불법 임대한 투기성 소유를 적발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하지만 조사 범위가 구체화되면서 농촌 현장의 불안과 불만은 예상보다 빠르게 확산했다.
투기 목적으로 농지를 취득한 사람뿐 아니라 고령이나 질병 등으로 농사를 짓지 못하는 농업인, 농지를 상속받은 도시 거주자, 관행적으로 이웃에게 농사를 맡긴 소유자까지 처분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
농지가 안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는 소유와 경작의 불일치다. 현행 농지법은 원칙적으로 농사를 지을 사람이 농지를 소유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농지를 가진 사람과 실제 농사를 짓는 사람이 다른 경우가 흔하다.
농촌을 떠난 자녀가 부모의 농지를 상속받거나 증여받은 뒤 부모 또는 이웃 농업인이 계속 경작하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농지 소유자가 나이가 들거나 건강이 나빠져 농사를 짓지 못하게 되면서 별도의 계약 없이 주변 농가에 경작을 맡기는 경우도 적지 않다. 영농 효율을 높이기 위해 농업인끼리 농지를 바꿔 경작하거나, 한 농업인이 여러 사람의 농지를 모아 규모화하는 것도 오랜 농촌 관행이다.
법의 잣대로만 보면 위법 소지가 있지만 농촌에서는 부족한 일손을 메우고 농지가 버려지는 것을 막아온 생존 방식에 가깝다. 투기를 막기 위해 만든 법과 농지를 유지하기 위한 현실 사이에 간극이 생긴 것이다.
처분명령을 내리더라도 실제로 농지가 팔릴지는 또 다른 문제다. 농촌 인구가 줄고 농업인의 고령화가 심화하면서 농지를 사서 직접 농사를 지을 사람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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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진흥지역이나 접근성이 떨어지는 농지는 팔고 싶어도 매수자를 찾기 어렵다. 요즘 현장에서는 가격을 크게 낮춰도 거래가 이뤄지지 않는 농지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 직접 농사를 짓지 않는다는 이유로 처분의무를 부과하면 소유자는 팔 수 없는 땅을 팔아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농지를 처분하지 못하면 이행강제금 부담까지 떠안을 수 있다. 정책이 농지 투기를 억제하는 수단을 넘어 농촌 주민에게 이행하기 어려운 의무를 부과할 수 있다는 불만이 나오는 이유다.
불똥은 임차농에게도 튈 수 있다. 농지 소유자가 처분명령을 피하기 위해 임대차 관계를 정리하거나 농지를 매각하면 그동안 농사를 지어온 임차농이 경작 기반을 잃을 수 있다.
특히 서면 계약 없이 관행적으로 농지를 빌려온 농업인은 경작 사실과 권리를 제대로 인정받기 어렵다.
농업 규모화 정책과 충돌할 가능성도 있다. 정부는 그동안 농지은행 등을 통해 농지를 실제 농업인에게 모아주는 정책을 추진해왔다.
그러나 전수조사가 관행적 임대차를 일시에 불법으로 규정하면 여러 필지를 빌려 규모를 키워온 전업농의 영농 기반까지 흔들릴 수 있다.
당초 소유 관계를 바로잡으려던 것이 실제 경작자를 농지에서 밀어내는 역설이 발생하게 된 셈이다.
상속농지를 보유한 국민들의 불안도 커졌다. 산업화와 도시화 과정에서 고향을 떠난 농촌 출신 국민 상당수가 부모로부터 농지를 물려받았지만 생업과 거주지 문제로 직접 농사를 짓기 어려운 실정이다.
공동상속이나 미등기로 소유 관계가 복잡해 처분이나 임대 위탁조차 쉽지 않은 농지도 많다.
특히 최근 농지법 개정으로 법 위반 농지에 대한 처분명령이 지방정부의 재량에서 의무 규정으로 바뀌면서 불안에 기름을 부었다.
이전에는 위반 경위와 영농 현실 등을 고려해 처분 여부를 판단할 여지가 있었지만 이제는 위반 사실이 확인되면 지방정부가 원칙적으로 처분명령을 내려야 한다. 전수조사가 대규모 처분명령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농촌 전반으로 번진 배경이다.
정부는 반발이 커지자 조사 착수 4개월 만에 보완책을 내놨다. 단순히 소유자와 경작자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처분하지 않고, 농지 취득 당시 영농 의사와 허위·부정행위 여부, 취득 이후 이용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기로 했다.
관행적 임대차에는 자진 정비기간을 부여하고 농지은행을 통해 적법한 임대차로 전환하면 처분의무를 유예한다. 상속·이농 농지도 농지은행에 맡겨 실제 경작자가 계속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투기 목적이 아닌 위반까지 일률적으로 처분하지 않도록 연내 특별조치법도 제정한다.
그러나 정부가 전수조사를 시작한 뒤 현장의 반발이 커지자 특별법을 만들어 예외를 인정하는 모습은 정책 준비가 충분했는지에 대한 의문을 남긴다.
농지 소유 실태뿐 아니라 농촌의 인구 구조와 거래 여건, 임대차 관행을 먼저 면밀히 살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투기성 농지 소유는 엄격히 차단해야 한다는 정부의지에는 이견이 없다. 다만 투기와 생계형·관행적 임대차를 정교하게 구분하지 못하면 선의의 농지 소유자와 실제 경작자가 피해를 볼 수 있다.
쌀 생산자단체 한 관계자는 "소유권 정비에만 치우친 대책은 농지를 농업인에게 돌려주기는커녕 휴경과 농지 이탈을 부추길 가능성도 있다"며 "투기 농지는 걷어내되 농사를 지을 사람에게 농지가 안정적으로 돌아가도록 만드는 게 핵심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 [the300] 대통령 2월 지시에 '경자유전' 원칙 전국 조사 강행 농민반발에 농촌 현실과 배치, 7개월만에 제도손질

이재명 대통령의 지시로 시작된 농지 전수조사가 7개월여 만에 대대적인 보완 단계로 접어들었다. 당초 '전수조사와 처분명령 강화'에 초점을 맞췄지만 농촌 현장의 반발이 커지면서 '투기는 엄단하되 관행적 이용은 인정한다'는 방향으로 제도가 재설계되는 모습이다.
농지 개혁의 출발점은 지난 2월 24일 이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귀농·귀촌 비용 문제를 거론하다 농지 가격으로 화제를 돌려 "귀농·귀촌을 하려고 해도 땅값이 올라 터를 잡기 어렵다"며 필요할 경우 대규모 인력을 조직해 농지 전수조사를 실시하라고 지시했다. 농사를 짓겠다며 취득한 뒤 방치한 농지에는 매각명령을 내리는 방안도 검토하라고 했다.
논란이 일자 이 대통령은 이튿날 SNS에 조사 대상 관련 글을 올렸다. 농사를 짓겠다고 농지를 취득했는데 실제 농사를 짓지 않는 경우로 구체화한 것이다. 헌법상 '경자유전'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이후 정부는 4월 1일 당정협의에서 전국 농지 전수조사 계획을 공식화했다. 2026~2027년 2년에 걸쳐 전국 농지 195만4000㏊를 조사하고 수천명의 인력을 투입하는 사상 첫 전국 단위 조사였다. 5월 7일에는 농지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위반 농지에 대한 지자체의 처분명령도 재량에서 의무로 강화됐다.
하지만 지난 5월 정부가 실제 조사에 착수하자 논란이 확산했다. 고령농과 상속농, 관행적 임대차까지 농지법 위반으로 간주돼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커졌다. 농지 거래가 위축되고 가격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지난 7월 말 공개된 기본조사 결과는 논란을 더욱 키웠다. 정부는 조사 대상의 97%를 조사한 결과 27%인 284만 필지를 농지법 위반 의심 대상으로 분류했다. 정부는 "투기 농지는 철저히 조사하되 일반적 위반은 처분보다 계도 등 대안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지만 지난 8월부터 현장 심층조사가 시작되면서 불안은 오히려 커졌다.
국민의힘은 지난 15일 농민 간담회를 열고 전수조사 중단과 농지법 개정을 요구했다. 민주당에서도 속도 조절론이 나왔다. 권칠승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지난 17일 "농촌의 일상적 농지 이용 과정에서 발생한 경미한 위반은 계도와 제도 개선으로 처리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이 대통령도 지난 18일 기자회견에서 보완 필요성을 직접 언급했다.
당정은 21일 결국 '명백한 투기는 조치하되 경미한 위반은 정상화한다'는 원칙을 구체화했다. 투기 목적이 아닌 무단 휴경이나 임대차 위반은 농지은행에 임대를 위탁하거나 관리권을 위탁할 경우 처분을 유예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논란이 확산하자 이 대통령이 농지 개혁을 지시한 지 7개월 여 만에 정부여당이 물러선 것이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여당 간사인 윤준병 민주당 의원은 "농촌의 관행적 위반 사항에 대한 처분 가능성과 농지 매각의 어려움, 고령화된 농촌 현실 등 현장에서 제기되는 우려를 감안했다"고 했다.
정부가 사상 첫 농지 전수조사를 둘러싼 농촌 현장의 반발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출구 전략 마련에 나섰다. 투기 목적이 아닌 농지법 위반에는 자진 정비 기회를 주고 농지 처분을 유예하는 특별조치법도 제정하기로 했다. 농지를 빼앗길 수 있다는 불안을 진정시키기 위한 조치지만 전수조사 착수 이후 불거진 논란을 잠재우기 위한 '땜질 처방'에 그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농림축산식품부가 21일 당정협의회를 통해 내놓은 대책은 '농지를 직접 경작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획일적인 처분명령을 내리지 않겠다는 것이다. 전수조사가 투기와 무관한 농지 소유자와 실경작자에게까지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우려를 일정 부분 반영했다. 그러나 정부가 전수조사 착수 4개월 만에 특별법까지 동원해 예외와 유예 조치를 마련한 것은 사전에 농촌 현실을 충분히 검토하지 못했다는 점을 자인한 것이란 지적이다.
제대로 된 농지개혁을 위해서는 먼저 농지 임대차를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현행법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농지 임대를 제한하지만 현실에산 음성적인 임대차가 광범위하게 이뤄진다. 이를 일률적으로 단속하면 임차농의 영농 기반이 흔들리고, 그대로 방치하면 투기적 농지 소유를 가려내기 어렵다.
농지를 빌려주는 행위 자체보다 누가 어떤 조건으로 농지를 이용하고 있는지를 투명하게 관리하는 방향으로 제도개선이 검토돼야 한다. 임대차 계약 등록을 의무화하고 임대 기간과 임차료, 실제 경작자를 농지대장에 반영해 실경작자를 보호할 필요가 있다. 임의적인 계약 해지나 농지 처분으로 임차농이 하루아침에 경작지를 잃지 않도록 최소 임대 기간과 계약갱신 기준도 마련해야 한다.
상속농지에 대한 별도의 관리체계도 필요하다. 일정 기간 안에 매각하거나 농지은행에 위탁하도록 하되, 농지은행을 이용할 수 없는 소규모·저가 농지는 국가나 지방정부가 관리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농지은행 역할을 확대하려면 예산과 인력도 함께 늘려야 한다. 매입 대상과 가격 기준, 기존 실경작자의 우선 임차권도 구체적으로 정비해야 한다.
김홍상 농정연구센터 이사장(전 한국농촌경제연구원장)은 농지개혁의 출발점으로 농지를 어떻게 보전하고 이용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김 이사장은 "농지 문제는 지역별로 너무 다양해 중앙정부의 일률적인 기준만으로 관리하기 어렵다"며 "광역·기초지방정부와 지역 농업인이 함께 농지 이용계획을 세우고 농지를 모아 효율적으로 경작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