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세계일류' 패션기업 없는 이유

우리나라에 '세계일류' 패션기업 없는 이유

박창욱 생활경제부장
2010.08.18 12:47

[광화문]패션업계에도 '벤처정신'이 퍼져야

시경에 이르길, “인심을 얻은 자 흥하고, 인심을 잃은 자 망한다”고 했습니다. 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사람을 얻은 기업은 흥하고, 그 반대인 경우는 망하게 될 겁니다.

많은 기업들이 그래서 좋은 인재들이 몰려 올 수 있도록 온갖 신경을 씁니다. 또 그렇게 해서 잡은 인재의 마음까지 온전히 얻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애쓰고 있고요. 각 분야 일류기업들의 경우를 보면 아마 거의 예외가 없을 겁니다.

머니투데이의 신개념 패션사이트인 ‘스타일M’을 운영하면서 다양한 패션업계 관계자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특히 얼마 전 만난 한 다국적 패션기업의 임원 A씨가 특히 인상 깊었습니다. 그는 한국 패션 산업의 미래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지금 상황으로 보면 매우 어둡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A 씨는 20년 이상 주로 패션 분야에서 브랜드 마케팅을 해 온 분입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디자이너 같은 ‘패션 전문가’는 아닙니다만, ‘1세대 마케팅 전문가’로서 우리나라 패션산업에서 ‘왜 세계적 브랜드를 가진 기업이 없는지’, ‘왜 다른 나라처럼 수십 조원의 매출을 올리는 거대 기업이 나오지 못하는 지’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을 들려줬습니다.

A 씨는 우리 패션 산업이 세계적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는 이유로 우선 ‘인재가 없다’는 점을 꼽았습니다. 물론 패션이나 마케팅을 전공한 젊고 우수한 인재들은 많이 있습니다만, 이들은 요즘 백화점 상품기획자(MD) 같은 보수가 좋은 일을 선호한다고 합니다. 정작 전공분야인 패션 분야에 좋은 조건의 일자리가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수의 패션업계 종사자들에 따르면 비용을 아끼려고 사람을 그저 ‘싸게’만 쓰려고 하는 패션기업들이 꽤 많이 있습니다. 웬만한 중견 패션기업의 디자인실이라도 열악한 조건으로 인해 1년을 채 버티지 못하고 이직하는 디자이너가 많아 노하우가 제대로 쌓이지 못하는 현실입니다.

이런 환경에서 인재가 키워질 수 없고 신선한 디자인도 나올 리 만무합니다. 당연히 우수한 인재가 패션업계에 많이 몰리지도 않고,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는 패션기업이 나올 토양도 형성되기 힘듭니다.

A씨는 패션분야에 우수 인재가 몰리지 않는 이유에 대해 제대로 패션기업 경영을 배우지 못한 이른바 ‘자수성가’형 경영자가 업계에 많기 때문이라고 꼬집어 말했습니다. 패션업계에는 사실 시장에서 옷을 떼다 파는 것으로 시작해 돈을 모은 후, 외국 디자인을 본 딴 옷으로 인기를 얻어 기업을 일군 오너 경영자가 많이 있습니다.

이들은 자신의 ‘사업 능력’(?)에 대한 자신감이 과도하다 보니 직원들을 비용 구조 이상도, 그 이하로도 안 보는 시각이 생기게 됐다는 설명입니다. 한 패션기업의 최고경영자는 심지어 직원들에게 잘 해주는 점이 어떤 게 있는가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다른 곳과 달리)제 날짜에 월급을 밀리지 않고 준다”고 자랑삼아 말할 정도였습니다.

우수한 사람들이 패션업계에 몰리도록 만들고, 이들이 업계에 바람을 일으키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는 게 A씨의 주장이었습니다. 패션업계에도 정보기술(IT)업계 이상으로 ‘벤처 정신’이 퍼져야 한다는 거지요.

그는 일부 대기업만으론 절대 세계 시장에 진출할 수 없으며 특히 디자인과 브랜드 마케팅 분야에서 전문인력을 양성하지 못한다면, 우리 패션산업은 영원히 ‘3류’에 머물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누가 더 많은 인재를 양성할 수 있으며, 누가 보다 훌륭한 조직을 갖고 있느냐가 세계 시장에서 경쟁해 이길 수 있는 첫째 조건이다.” 고 정주영 현대 회장이 남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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