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신의 와인 Pick!] 이럴 때 이 와인 어때?

[박영신의 와인 Pick!] 이럴 때 이 와인 어때?

로피시엘=박경배 기자
2026.06.08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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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혼자만의 시간으로 방해받고 싶지 않을 때, '카스티요 데 알만사 리제르바(Castillo de Almansa Reserva)'

뽕나무 오디/사진제공=필자
뽕나무 오디/사진제공=필자

문든 사람들 속에 섞여 있는 어느 날, 무척 어색하고 자잘한 대화조차 집중할 수 없어 스스로가 낯설고 두려워질 때가 있다. 가슴이 먹먹해지는 그런 날, 혼자 조용히 세상과 거리를 둔 채 내 안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나만의 안식처가 있다면, 우리는 세상을 좀 더 유연하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그럴 때 마음을 달래주는 따뜻한 위로 같은 나만의 장소를 다시 찾았을 때, 마침 검붉은 오디가 눈에 들어왔다. 어릴 적 시골길을 걷다 보면 한 번쯤은 따먹어 본 기억이 있는 뽕나무의 열매다. 정신없이 입에 넣다 보면 손끝은 금세 보랏빛으로 물들고 입술에도 자줏빛 흔적이 남는다. 특별히 달지도 그렇다고 강렬하지도 않은데 이상하게 자꾸 손이 가던 정겨운 열매였다.

봄 내내 푸른 잎을 키우던 나무는 어느새 검붉은 과실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다. 검붉게 익은 오디는 안토시아닌과 폴리페놀 등 항산화 성분이 풍부하며, 비타민과 철분·칼륨·칼슘 같은 미네랄을 다량 함유하고 있어 예로부터 건강식품으로 사랑받아 왔다. 또한 식이섬유와 펙틴 성분은 식후 혈당 상승을 완화하는 데 도움을 준다. 여름 초입에 자연이 내어준 귀한 선물인 셈이다. 작고 소박한 열매지만 그 안에는 계절을 정직하게 지나온 햇살과 바람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오디는 특유의 짙은 검 보랏빛 색조와 함께, 인위적이지 않은 은은한 달콤함과 기분 좋은 흙내음(Earthy) 그리고 야생 베리류의 복합적인 산미를 지니고 있어 레드 와인과의 페어링에 무척 탁월하다.

◆ 카스티요 데 알만사 리제르바 (Castillo de Almansa Reserva)

-Region: Spain / Castilla-La Mancha / Almansa D.O.

-Winery: Bodegas Piqueras

-Grape: Monastrell 50%, Garnacha Tintorera 30%, Tempranillo 20%

-Farming: Organic / Sustainable & Vegan Certified (V-Label)

-Winemaking: Stainless steel aging (8-10M) & Fine-grained American oak barrique (12M) & Bottle aging (9-12M)

-Alcohol: 14.5%

/사진 출처=bodegaspiqueras
/사진 출처=bodegaspiqueras

◆ 와이너리 이야기 '보데가스 피케라스 (Bodegas Piqueras)'

스페인 중앙 고원의 동쪽 끝, 해발 700~1,000m에 위치한 D.O. 알만사(Almansa)는 극단적인 대륙성 기후와 빈약한 석회질 토양이 빚어낸 강인한 테루아다. 이곳의 영혼을 담은 와이너리 보데가스 피케라스는 1915년 마리오 피케라스(Mario Piqueras)에 의해 설립되어 알만사 지역의 품질 혁신을 이끌어온 역사적 아이콘이자, 4대째 가족 경영을 이어온 장인 와이너리다.

강우량이 극도로 적고 일교차가 큰 고지대의 척박한 환경 속에서 이들은 화학 물질을 배제한 유기농법을 고수한다. 특히 천연 식물성 정제 및 자연 침전 방식을 통해 유럽 비건 인증(V-Label)을 획득했다. 수년 전부터는 대부분의 와이너리가 관행적으로 사용하는 달걀흰자나 생선 단백질 등의 동물성 부산물 정제를 전면 중단하고, 완두콩 단백질을 사용하여 와인을 정제하고 있다. 이는 테루아의 순수성을 병 속에 가장 정직하게 담아내려는 보데가스 피케라스만의 확고한 철학이다.

◆ 테이스팅 노트 (Tasting Notes)

-외관(Appearance): 과육까지 붉은 가르나차 틴토레라의 특성이 고스란히 반영된 짙고 깊은 루비 빛을 띠며, 잔 가장자리에 머무는 우아한 체리 벽돌색 테두리가 리제르바 와인 특유의 정제된 숙성미를 여실히 보여준다.

-향(Nose): 신선한 라즈베리와 오디를 넣고 달콤하게 졸여낸 자두의 복합적인 과실 아로마가 선두에 선다. 뒤이어 미세한 나뭇결의 미국산 오크통에서 기인한 은은한 바닐라, 정향, 그리고 기분 좋은 가죽과 숙성 향신료의 뉘앙스가 교차하며 다층적인 부케를 완성한다.

-팔렛(Palate): 템프라니요의 산미와 모나스트렐의 풍만한 타닌이 완벽한 밸런스를 이룬다. 입안을 부드럽게 감싸는 벨벳 같은 질감 뒤에 탄탄한 구조감이 인상적이며, 붉은 베리류의 과즙과 달콤한 향신료의 정갈한 여운이 길고 깊게 이어진다.

-결론(Conclusion): 과육까지 붉어 짙은 색조와 야생 베리 향을 뿜어내는 가르나차 틴토레라와 단단한 뼈대 역할을 하는 모나스트렐, 그리고 정제된 산미를 부여하는 템프라니요가 완벽한 트라이앵글의 균형을 이룬다. 품종별 분할 수확과 철저한 자연 침전법을 통해 비건 와인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깨끗하고 정갈한 텍스처를 완성했다. 실크처럼 다듬어진 타닌 덕분에 지금 잔을 기울여도 잘 익은 과실미와 은은한 가죽, 향신료의 복합적인 아로마가 환상적인 레이어를 이룬다.

카스티요 데 알만사 리제르바 와인은 화려하게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조용히 다가와 깊은 여운을 남긴다. 어쩌면 혼자만의 침묵과 시간을 즐기는 사람과 가장 닮은 와인인지도 모른다. 조용한 저녁에 천천히 음미할수록 진가를 발견하게 되는 스페인 알만사 테루아의 매력이 여실히 드러난다.

오디 구운감자 샐러드 비건푸드/사진제공= 필자
오디 구운감자 샐러드 비건푸드/사진제공= 필자

◆ 푸드 페어링 (Food Pairing)

-일반 페어링: 소고기찜, 오리 로스, 닭봉 튀김, 고추장불고기, 숙성 체더 치즈

-비건 페어링: 오디와 올리브를 곁들인 감자구이 샐러드, 오디 시럽을 곁들인 소금, 후추를 살짝 뿌린 두부구이

-혼술 페어링: 토마토 마리네이드, 올리브와 살라미

우리는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되는 또 지나간 대화를 떠올리며 괜한 후회를 반복하지 않아도 되는 휴식 같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 누구의 시선도 닿지 않는 곳에서 비로소 마음의 긴장을 내려놓고 자신과 조용히 마주 앉을 수 있는 시간 말이다.

세상이 재촉하는 속도에서 한 걸음 비켜설 때, 한동안 복잡하게 얽혀 있던 생각들이 조금씩 풀어지고 미처 돌아보지 못했던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어쩌면 오늘의 이 조용한 침묵은 외로움이 아니라 나를 위한 가장 따뜻한 대화일지도 모른다.

박영신 와인칼럼니스트
박영신 와인칼럼니스트

-박영신 와인 칼럼니스트-

"오디가 가장 짙은 색으로 익어가는 시간이 필요하듯, 우리도 혼자만의 시간을 통해 더 성숙해지고 깊어진다."

현 한국와인소비자협회 회장으로, 경희대학교에서 와인 소믈리에 석사 및 조리외식경영학 박사를 수료했다. 와인바와 전문 숍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소비자 니즈를 정확히 읽어내는 전문가로 평가받는다. 와인 소비자 행동 관련 논문을 발표하고 국내 주요 와인 대회 심사위원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칼럼니스트이자 협회장으로서 생산자·유통자·소비자를 잇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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