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사또가 춘향을 처형하려는 순간, 이몽룡은 마패를 꺼내 보이며 “암행어사 출두요!”를 외쳤다. 춘향전에서 가장 통쾌한 암행어사 출두 장면에서 이몽룡이 마패와 같이 허리춤에 차고 다녔던 것이 무엇일까? 바로 ‘유척’이다.
유척은 곡식이나 옷감의 양을 재는 놋쇠로 만든 ‘자’로 왕조시대의 탐관오리들이 백성들에게는 엉터리 측정기구로 세금을 많이 거두고 나라에는 정량만 바쳐 나머지를 챙기는 부정부패를 저지르는지 확인하는 ‘기준’이었다.
동서양의 역사에서 새로운 왕이 집권할 때마다 도량형(度量衡)을 재정비함으로써 제도 개혁의 수단으로 삼아왔다. 진시황은 천하를 통일한 후 가장 먼저 도량형을 통일했고 표준 도량형 용기를 대량으로 생산해 전국에 내려 보냈다.
조선의 도량형은 세종대에 정비됐다. ‘황종률관’을 만들어 그 길이를 길이단위의 기준으로 정했고, 황종률관에 들어가는 만큼의 물무게를 무게단위의 기준으로 정했다. 이는 물 무게를 기준으로 한 프랑스 미터법보다 370년가량 앞선 과학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도량형법은 다시 문란해졌고 여러 번 정비했으나 전국적으로 실시되지 못했다. 이후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전국토를 ‘평’ 단위로 측량하면서 ‘평’ 단위가 도입되어 사용되었고, 일본 진주양식업자들이 쓰던 ‘돈’ 단위도 이들이 우리나라에서 금은방을 운영하면서 유입되었다.
도량형조차 대한제국이 일본에 예속되면서 일제의 경제수탈에 날개를 달아 준 셈이 됐다. 역설적으로 척관법의 원조격인 중국과 우리에게 ‘평, 돈’ 단위를 전해준 일본에서도 지금은 척관단위를 쓰지 않는다.
국제교역 증대로 도량형 통일 필요성이 제기돼 1875년 세계 각국은 미터법을 채택했고 오늘날에는 대부분의 국가가 미터법을 사용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2010년부터 미터법 단위를 사용하지 않은 제품은 유럽에 수출할 수 없도록 했다.
무역규모 1조 달러를 돌파한 우리나라로서는 2조 달러 시대를 준비하는 데 초석이 되는 국제단위계 사용정착에 앞장서 국제사회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영국도 많은 비용을 지불하면서 미터법을 도입했다. 실제로 2001년에는 kg 단위용 저울을 갖추지 않은 청과상 주인에게 벌금 5000파운드를 부과한 사례도 있다. 오늘날의 법정계량단위 사용의무화는 국가선진화를 위해 필수적인 것으로 비록 시행착오가 있다고 할지라도 결코 미뤄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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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계량단위 사용 정착은 개인 간 거래에서도 중요하다. 같은 32평 아파트라도 1평=3.305㎡로 환산하면 106㎡에서 109㎡까지 다양하다. 토지측량, 설계, 건축에는 미터법을 사용하면서 건물을 매매할 때는 ㎡값을 ‘평’으로 불필요한 환산을 한다.
또 금은방 저울은 대부분 소수점 둘째자리까지 표시되어 1.875g인 반 돈은 정확히 잴 수 없어 보이지 않게 소비자가 손해를 입는다. ‘평’ ‘돈’은 직접 측정할 수 있는 계량기가 없어 판매자가 제시하는 양을 그대로 믿고 사게 된다. 그럼에도 계속 사용되어 온 것은 구매자가 아무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1961년 국제단위를 법정단위로 정하고 비법정단위 사용금지, 처벌 조항까지 만들었다. 하지만 일본식 표준의 그림자는 여전히 생활 속에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다. 2010년부터는 상거래를 목적으로 신문광고에 비법정단위를 사용할 경우 과태료를 부과하기 시작했지만 아직도 20 %정도가 비법정단위를 사용하고 1㎡가 아니라 1 평의 부정확한 환산 값인 3.3㎡당 가격으로 표시하고 있다.
과연 이몽룡이 지금 시대에 다시 암행어사로 파견된다면 그의 허리춤에는 어떤 유척이 매달려 있을까? 물론 익숙한 것을 바꾸려면 번거롭기 마련이지만 익숙함이 항상 정당한 것은 아니다. 정책의 성공은 결국 국민이 얼마만큼 수용하느냐에 달려있다. 국민 모두가 적극 동참해 상거래 질서 확립을 통한 국민 삶의 질 향상과 국가 경제 발전에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