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화 속 숫자 ‘3’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완성과 안정을 의미한다. 단군신화에서는 환인·환웅·단군 세 명이 나라를 열었고, 게르만신화 속 최초의 신들도 오딘·빌리·베의 삼형제다. 그리스신화에서는 제우스가 천하를 삼등분하여 자신은 하늘을, 하데스에게 지하세계를, 포세이돈에게는 바다를 다스리게 했다.
정부가 국정운영의 새로운 패러다임인 ‘정부 3.0’을 만들면서 숫자 ‘3’을 제시한 것도 비슷한 의미에서일 것이다. 정부는 일방향 소통(정부 1.0)과 쌍방향 소통(정부 2.0)을 넘어 공개·공유·소통·협력 등 4가지의 핵심가치를 통해 개인별 맞춤 행복을 구현한다는 계획이다. 연간 2조원 이상의 국가 예산이 들어가는 공적개발원조(ODA) 사업도 정부 3.0처럼 새로운 패러다임을 세울 때다.
한국은 1950년대만 해도 생존을 위해 먹을 것을 원조 받았지만, 이제는 세계 26개국에 2조원이 넘는 원조를 하고 있다. 이전에는 단순히 구호물자만을 제공했지만 이제는 개도국의 경제발전에 필요한 소프트웨어도 제공한다. 우리의 경제발전 경험을 활용한 지식공유사업과 새마을운동연계사업이 대표적이다. 한국이 2010년에 선진 공여국 클럽인 OECD DAC(개발원조위원회)에 가입한 것도, 전담부처인 기획재정부와 외교부의 노력 덕분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일본·중국 등은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원조 폭탄’을 뿌리고 있다. 이는 ODA를 단순한 원조가 아닌 자국의 소비 둔화와 시장 포화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본은 베트남에 ODA 자금을 대거 투입한 덕에 새로운 시장을 개척했다. 공사가 한창인 하노이 노이바이 국제공항 제2청사의 주요 부분은 거의 일본 건설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건설사는 고작 진입도로 일부만 수주했을 뿐이다. ODA 규모가 일본의 7분의 1 수준이다 보니 원조를 통해 얻는 경제적 성과도 적은 것이다.
당장 ODA 예산을 크게 늘리기도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렇다면 우리나라가 빠르게 변화하는 ODA 환경에 발맞출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정부 3.0의 철학을 ODA 사업에 적극 도입하면 된다. 바로 공개·공유·소통·협력이다.
이런 의미에서 일본이 공유와 협력을 바탕으로 ODA 선진국이 된 과정은 본받을 만하다. 일본은 재무성·외무성·경제산업성·문부과학성의 4개 부처 중심으로 ODA를 운영했다. 특정 부처에 힘을 실어주기보다 각 부처가 동등한 지위를 갖고 부처 간 조정을 진행한 것이다. 전문성에 기반한 부처 간 협력의 결과로 일본의 ODA는 정책 입안이나 사회 인프라, 인재 양성, 기술개발 등 다양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일본은 지금도 관계 부처의 전문성을 활용하기 위해 부처 간 협력채널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ODA 1.0이 물고기를 나눠주는 셰어링 피시(Sharing Fish)단계였다면 ODA 2.0은 물고기 잡는 방법을 알려주는 코칭 피싱(Coaching Fishing)단계다. 그러나 이제는 공여국과 수원국이 함께 발전하는 ODA 3.0 즉, 피싱 투게더(Fishing Together)단계로 진화해야 한다. 수원국은 더 이상 원조의 대상이 아니라, 협력의 대상이다. 수원국과의 진정한 협력을 통해 공여국 역시 지속가능한 성장을 할 수 있다. ODA 사업에 ‘정부 3.0’의 철학을 적용해야 하는 절실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서라도 공유와 개방, 소통과 협력을 통해 각 부처가 지닌 전문성을 ODA 사업에 적극 활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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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통상자원부가 추진 중인 ‘베트남 농업기계화 지원사업’이 좋은 예다. 베트남은 세계 1, 2위를 다투는 쌀 생산국이지만 농기계화율이 30%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 때문에 생산성과 품질이 낮아 농촌 빈곤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산업부는 베트남 컨터시에 건설 중인 ‘한-베트남 인큐베이터파크’를 중심으로 기재부와 함께 현지 맞춤형 농기계 보급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여기에 외교부가 진행 중인 지구촌 새마을운동사업을 연계한다면 어떨까. 추측컨대 베트남 농민들의 소득 증가뿐 아니라 삶의 질도 크게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이러한 모델, 부처 간 전문성을 토대로 수원국은 실질적인 개발 효과를, 공여국은 개도국과의 동반성장을 가능케 하는 모델이야말로 정부 3.0 패러다임에 부합하는 한국형 ODA 3.0 모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