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8월 제주도에서 개최된 벤처기업협회의 여름포럼에 참석했다가 기술을 탈취당한 기막힌 이야기를 들었다.
한 벤처창업자가 나노 기반의 획기적 상품을 개발했다. 상품화할 자금이 부족해 모그룹이 운영하는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찾았다.
센터를 맡은 모 그룹에서 파견 나온 임원에게 공동으로 시장에 출시하자는 제안을 한 뒤 기술관련 자료를 내줬다. 3개월이 흘러도 소식이 없어 연락해보니 “그 아이템을 우리 회사에서 3년 전부터 개발해왔다”는 반응이 돌아왔다.
기술을 뺏겼구나 싶어 항의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공정거래연구소를 운영한다 하니 그간의 사정을 털어놓은 것인데, 서울로 와서 그 그룹의 핵심 임원에게 이 얘기를 전했다. 그룹에선 감사팀을 보내 시정조치를 취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미 그 기술이 응용된 제품은 시장에 나갔고 그 창업가가 매출을 올릴 여지는 없어졌다.
또 다른 사례는 일감 뺏기다. 모 대기업에 납품을 잘하던 회사가 거래물량이 갑자기 줄었다. 새로 들어온 구매담당 임원이 자기가 키워주는 회사를 협력사로 등록하고 물량을 몰아준 결과였다.
괘씸죄도 곁들여졌다. 그 일이 있기 얼마 전 그 대기업의 부당한 요구에 대해 정부기관에 피해구제 신청을 했다는 것 때문이었다. 결국 회사는 문을 닫을 위기까지 내몰렸다.
공정거래위원회에 근무할 때나 연구소를 운영하는 지금이나 이런 일은 반복됐고 개선점을 찾기 위해 수없이 고민했다.
당사자는 공정거래위원회 등 정부에 신고하면 될 것이라고 여기지만 사실 신고자 입장에서 실질적으로 이득이 되는 것은 별로 없다. 회사가 망했는데 신고한들 무슨 도움이 될 것인가?
공정위나 중소기업청에서 억울한 사건에 대해 조사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불공정거래의 심증은 있는데 물증이 없어 처벌하지 못할 때가 많다.
신고사건의 경우 현장조사를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현장조사를 하더라도 압수수색을 못 하므로 핵심 증거물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신고를 해도 증거불충분으로 일종의 기각처분이 내려지는 게 다반사다.
신고하는 측이 물증을 제출할 경우 처벌이 가능하지만 중소기업은 대체로 증거를 갖고 있지 못한 경우가 많다. 특히 기술탈취와 보복사건의 경우 신고인에게 그런 자료가 있을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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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피신고인의 당사자, 임원에게 법 위반 자료가 있을 수 있으며 피신고인에 대한 압수수색 등의 조치로 증거물을 확보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공정위의 전속고발권을 폐지하고 모든 국민이나 당사자가 고발할 수 있도록 해 이 문제를 풀자고 한다. 그러나 고발이 남발될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
대기업도 부담이지만 중소기업도 말할 수 없이 피곤해진다. 오히려 중소기업의 부담이 더 크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거래보다 중소기업과 중소기업의 거래가 훨씬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정위의 전속고발권 폐지도 바람직하지 않다.

하지만 보완장치가 필요하다. 그중 하나가 ‘공정거래 특별검사제’다. 공정거래위원회, 검찰, 국세청, 중기청 등 정부 내 관련부처 합동으로 공정거래 특별조사단을 만들고 물증을 찾기 어려운 사건에 압수수색 등을 해서 불공정거래를 막는 방법이다.
현행 제도는 “그래 신고해봐라” 식으로 버티면서 갑질을 하는 관행을 막지 못한다. 특별검사제 도입으로 ‘한 번 걸리면 죽는다’는 강력한 사인을 시장에 보내야 실질적인 공정거래가 이뤄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