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 정부에는 공공연한 비밀이 하나 있다. 5년마다 조직개편의 장이 선다는 것이다. 대통령선거를 한 달여 앞두고 여성가족부가 강화냐 폐지냐 논란의 중심에 서 있지만 주변 부처의 마음도 편치는 않을 것이다. 선거캠프 안팎에서 어디를 얼마나 쪼개고 합칠 것인지를 놓고 치열한 흥정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삼안오불(三安五不) 칠전구기(七戰九氣). 필자의 창작이지만 일단 각 부처의 이름에 거래의 실마리가 있다. 교육부, 국방부, 법무부, 외교부, 통일부, 환경부 등 세 자 부처는 안심이다. 여성가족부를 비롯해 고용노동부, 국토교통부, 기획재정부, 보건복지부, 해양수산부, 행정안전부 등 한 지붕 두 가족을 이룬 다섯 자 부처는 불안하다. 산업통상자원부와 중소벤처기업부와 같이 일곱 자인 부처는 말 그대로 전전긍긍이다. 농림축산식품부와 문화체육관광부도 한 지붕 세 가족이다.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로 주목받아온 과학기술정보통신부도 그 긴 이름이 데스노트에 올랐다는 소문 때문인지 기가 한풀 꺾인 것 같다.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한 번도 이름이 바뀌지 않은 곳은 국방부와 법무부뿐이다.
OECD나 G20 국가 중 우리처럼 자주 정부조직을 개편한 예를 찾기 어렵다. 민주화 이후 김영삼정부 때부터 이런 현상이 두드러진다. 산업통상자원부는 1948년 상공부 설립 이후 지금까지 여섯 번 이름이 바뀌었다. 1993년 이후에만 다섯 번인데, 특히 '통상' 기능을 붙였다 떼기를 반복했다. 과학기술과 정보통신기술도 사정이 비슷하다. 직업공무원은 대부분 정년퇴직 이전에 적게는 한 번, 많게는 서너 번의 조직개편을 경험한다. 부처 이름이 바뀐다고 해당 기관 공무원이 해고당하는 것도 아닌데 무슨 상관이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당사자들은 정체성 혼란 속에 큰 무력감에 빠진다고 한다. 거대 통합부처는 의욕도 잠시, 정권이 바뀌면 다시 쪼개질까 두렵다. 축소된 부처는 5년 동안 절치부심과 와신상담을 한다.
대한민국 정부조직 개편은 부처간 제로섬게임이다. 이는 5년 단임제와 무관하지 않다. 상대적으로 짧은 임기 중에 뭔가 업적을 만들어야 한다는 사명감에 가득 찬 대통령과 집권여당 출신 '어공'은 '늘공'인 관료의 도움 없이는 제대로 정책을 수행할 수 없다. 대대적인 조직개편은 어공이 늘공을 단숨에 길들이고 장악하는 방법이다. 선출직 공무원의 가장 큰 무기인 '민주적 정당성'을 내세워 직업공무원제를 줄 세우고 '충격과 공포'(shock and awe)에 빠뜨려 압박한다. 이를 바라보는 국민은 이번엔 뭔가 좀 바뀔 거라는 환상에 빠진다.
부처 명칭을 바꾸고 기능을 조정함으로써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갈등의 실타래를 일거에 풀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21세기 대한민국이 안고 있는 정책문제는 대부분 그리 간단치 않다. 분위기 쇄신용 정부 조직개편은 공직사회가 일하는 방식에 부정적 영향만 끼친다. 처음부터 완벽한 조직과 정책은 없다. 실패를 거듭하면서 진화한다. 잦은 조직개편은 정치적 책임을 전가하는 데는 유용할지 몰라도 조직과 정책의 실패를 통해 스스로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한다. 부처간 선의의 경쟁과 조정보다 복지부동, 조직몰입보다 무사안일을 부추긴다. 그래서 또 '컨트롤타워' 조직을 만들어보지만 결국 옥상옥에 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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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선거의 결과가 정권 교체든 재창출이든 간에 핵심 관계자들이 이것 하나만 명심해주기를 바란다. 정부가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굳이 하고 있다면 그 조직은 폐지하는 것이 맞다. 반대로 꼭 해야 하는 일을 안 하고 있다면 새 조직을 만들어서라도 해야 한다. 주요국 정부도 끊임없이 정부부처의 기능을 평가하고 조정한다. 하지만 레고블록 맞추듯 이리 떼서 저리 붙이는 보여주기식은 아니올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