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미국에서 경험한 일본

[투데이 窓]미국에서 경험한 일본

반영은 휴맥스해운항공 대표
2025.10.29 02:05
반영은 ㈜휴맥스해운항공 대표
반영은 ㈜휴맥스해운항공 대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MAGA'(Make America Great Again) 정책은 외교와 지정학의 중요성을 새삼 일깨워준다. 요즘 가장 관심을 받는 나라는 미국과 중국이지만 이웃 나라 일본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2017년 11월 한국산업은행 뉴욕지점 근무 시절 SMBC(스미토모미쓰이은행)의 '미국 진출 100주년 행사'에 초대받았다. SMBC의 일본 본사 창립 100주년이 아니라 미국 진출 1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라니 한국과 격차가 느껴졌다.

다양한 금융인을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하며 행사에 참석했는데 실제 참석자는 대부분 미국 내 일본계 기업의 임원이었다. 일본은 이미 1980년대부터 글로벌 진출을 완성한 나라다. 일본계 은행들은 해외에 진출한 일본 기업들과 긴밀한 네트워크를 형성했고 상호신뢰와 협력의 분위기가 자연스러웠다. 그 모습을 보며 부러움과 아쉬움이 교차했다.

2005년 첫 뉴욕주재원 시절 산업은행 뉴욕지점의 주요 고객이었던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차 등은 2017년에는 더이상 산업은행 뉴욕지점의 고객이 아니었다. 그들은 이제 미국·유럽·일본계 대형은행들의 고객이 돼 있었다.

이듬해 MUFG(미쓰비시UFJ은행)로 이직한 현지 직원을 산업은행 뉴욕지점 송년파티에 초대했다. 그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줬다. MUFG의 송년파티는 참석자들이 각자 비용을 부담한다는 것이다. 일본식 조직문화의 '자기부담 원칙'은 한국의 관행과 사뭇 달랐다. 우리는 회사비용으로 회식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분위기인데 일본은 개인과 회사의 경계가 명확한 듯했다.

2019년 1월 도쿄 본점으로 복귀할 예정인 미즈호은행 뉴욕지점장이 후임자를 데리고 필자의 사무실을 방문했다. "많이 도와달라"며 후임 지점장을 직접 소개하고 떠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한국계 기관의 경우 귀국발령을 받으면 후임자가 도착하기도 전에 본사로 서둘러 돌아가는 것을 여러 번 봤는데 이와 달리 후임자에게 고객들을 확실히 소개하는 일본인 지점장의 행동에서 원칙에 충실한 일본 문화를 확인할 수 있었다.

언젠가 일본 기업들의 후원으로 운영되는 비영리단체인 재팬소사이어티가 개최하는 금융세미나에 참석했다. 뉴욕 유엔본부 근처에서 진행된 세미나의 초청강사는 인플레이션 파이터로 유명한 전 연방준비제도 의장 폴 볼커였다. 강연 후 이어진 패널토론엔 당시 코리아소사이어티 회장도 참석했다. 그는 도쿄와 서울 양쪽에서 미국 대기업의 책임자로 근무한 경험이 있었다. 그런데 현직 코리아소사이어티 회장인 그가 재팬소사이어티 행사에서 "나는 원래 도쿄에서 근무한 지일파"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순간 묘한 불편함이 밀려왔다. 미국인들의 일본에 대한 호감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한 듯했다.

2019년 가을, 뉴욕의 한 한식당에서 일본 재경관과 식사를 했다. 대부분 일본 주재원은 가족을 일본에 남겨두고 단신으로 부임한다고 한다. 그리고 가족을 데리고 와도 자녀들은 현지 미국 학교가 아닌 '일본 학교'에 다니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19세기 후반 서양 문물을 가장 먼저 받아들인 일본이 21세기에 들어와서는 오히려 폐쇄적인 문화 속으로 되돌아간 듯했다. '열림과 닫힘의 경계'에서 일본의 딜레마를 보았다.

미국에서 경험한 일본은 단순한 타국의 사례가 아니라 한국의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참고서로 느껴진다. 일본은 우리보다 먼저 고령화, 혁신정체, 정치보수화를 경험했다.

한국은 여전히 변화의 잠재력을 지닌 나라다. 1인당 국민소득에서 우리보다 훨씬 잘 살던 일본을 따라잡았고 폭력사태 없이 정권을 교체하는 민주시민의식을 지녔다. 그러나 지금은 출산율 저하 등 구조적 한계와 사회적 피로감이 겹쳐 있다. 이웃나라 일본을 좋은 참고서로 삼아 적어도 그들이 겪은 시행착오만큼은 피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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