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 아닌 '원자'로 짓다…산업 르네상스 이끄는 제조업

'비트' 아닌 '원자'로 짓다…산업 르네상스 이끄는 제조업

루카스 베드나르스키 S&P글로벌 수석 애널리스트
2025.11.08 05:30

[High-Tech Powers]'배터리 전쟁' 저자 루카스 베드나르스키 고정 칼럼
<26> '비트'가 아닌 '원자'로 짓다(Building with atoms not bits)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다 알듯, 좋은 에세이는 대담한 명제로 시작한다. 나의 명제는 이것이다. 지금이야 말로 산업가가 되기에 그 어느 때보다 좋은 시기라는 것. 그 이유는 여러 요인이 맞물려 있다. 기술과 노하우에 대한 접근성, 점점 더 모듈화하는 제조업의 특성, 소프트웨어 중심 투자에서 벗어나려는 투자자들의 움직임, 마지막으로 공급망의 지역화 및 중국으로부터의 탈동조화(decoupling) 방향으로 가는 지정학이 바로 그 요인이다.

저무는 소프트웨어 창업 전성시대?…부상하는 하드테크

문제는 여기에 있다. 하드테크(hard-tech)에 도전하려는 잠재적 창업가들이 자신만의 공장이나 물리적 제품으로 이어지는 길에 어떻게 들어서야 하고, 또 어떻게 그 길을 계속 가야 하는지를 잘 모른다는 것이다. PC와 인터넷이 발명된 이후 '창업으로 크게 성공하는 꿈'은 점점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기울었다. 또 하나의 앱을 만드는 '큰 아이디어'가 가장 똑똑한 젊은이들의 전부가 되어버렸다. 교육 시스템과 금융 생태계 전체가 그러한 방향으로 설계됐고, 그에 맞는 명시적·암묵적 규칙들이 자리 잡았다. 결국 이는 몇몇 눈부신 성공 사례로 이어졌다.

이게 놀랄 일은 아니다. 앱을 만드는 일은 고도의 추상화 수준에서 코드로 작업하는 일이다. 소프트웨어 창업가는 적은 인원과 자원으로도 오랫동안 회사를 꾸려갈 수 있고, 소규모 팀이나 심지어 혼자서도 기능적인 제품을 만들 수 있다. 그리고 그 제품을 비교적 쉽게 확장할 수도 있다. 이런 점들이 노력 대비 수익과 투자 대비 수익을 매력적으로 만든다. 물론 현실에서 소프트웨어로 창업을 해 성공하기까지의 길은 이 설명보다 훨씬 험난하다. 시장은 이미 수많은 소프트웨어 기반 솔루션으로 포화 상태다. 그 속에서 충분히 큰 사용자 기반을 확보해 재정적 성공을 거두는 일은 헤라클레스의 과업에 비견될 만큼 어렵다.

시장 포화라는 현상은 또 다른 변화를 불러왔다. 소프트웨어 솔루션에 투자하던 전형적인 투자자들, 즉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 벤처캐피털, 엔젤 투자자들이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10년 전만 해도 결코 고려하지 않았을 아이디어들로 말이다. 소프트웨어 분야만 단순히 포화 상태가 된 게 아니다. 수많은 전통 산업 역시 새로운 소프트웨어 기반 제품과 서비스를 도입하며 전복(disruption)을 경험했다. 수조 달러 규모의 부가 창출되었지만 곧 '이 흐름이 과연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뒤따랐다.

그렇다면 이렇게 생각해보자. 소프트웨어 대신 호황을 맞은 반도체 산업에서 쓰는 틈새 화학소재를 생산하는 소규모 화학공장에 투자한다면 어떨까? 혹은 위성 제작 회사나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대규모 탄소포집 설비에 투자한다면? 가장 대담한, 그리고 대체로 규모가 큰 투자자만이 익숙한 소프트웨어 영역을 벗어나 이례적이고 위험한 선택에 베팅하는 이런 방향으로 나아갔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렇게 시작된 가느다란 물줄기는 점점 굵어져 강이 되었고, 오늘날 그 거대한 흐름은 이제서야 본격적으로 산업의 판도를 바꾸기 시작했다.

하드테크로 향하는 시장·정부 지원

만약 당신이 젊고 야심찬 창업가이거나, 혹은 어느 정도 경력을 쌓은 중견의 전문가라면 어떻게 이런 흐름 속에 어떻게 뛰어들 수 있을까? 소프트웨어 분야에서는 이 과정이 단순하다. 직접 또는 친구와 코딩을 시작하거나 제품 비전을 실현해줄 사람을 고용하면 된다. 그러면 곧 스타트업 업계에서 'MVP(Minimum Viable Product, 최소 기능 제품)'라고 부르는 결과물이 생긴다. 이를 투자자나 잠재 고객에게 보여주고, 받은 피드백을 토대로 반복적으로 개선해 나갈 수 있다.

이제 이를 수천만 달러에서 많게는 수억 달러의 설비투자가 필요한 특수 화학 공장 신규 건설과 비교해보자. 대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당신의 저축만으로는 MVP를 만들 수 없다(어쩌면 누군가는 가능할 지도 모른다). 이런 산업 영역은 정말로 거대 기업들만의 무대인 걸까? 만약 그렇게 생각한다면 내가 만나본 몇몇 사람들은 그 생각이 틀렸음을 증명해줄 것이다.

하드테크 창업가들을 지원하는 전체 생태계는 이제 막 형성되는 과정에 있다. 과학자와 엔지니어들이 첨단 연구 성과를 상업화할 수 있도록 돕는 비영리단체 액티베이트(Activate)는 지금까지 236개 이상의 기업 설립을 지원했고, 이들 기업은 총 35억 달러 이상의 자금을 유치하며 1000개 이상의 일자리를 창출했다. 한때 소프트웨어 스타트업의 상징이었던 와이콤비네이터(Y Combinator, YC) 역시 이제는 하드테크 기업 80여 곳에 투자를 진행하며 '작게 시작하되, 크게 생각하라(start small, think big)'는 철학을 내세워 긴 개발 주기와 막대한 자본이 필요한 산업 분야의 도전을 이끌고 있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은 하드테크 창업가들이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지원 정책을 시행 중이다. 반도체 및 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 국방수권법(National Defense Authorization Act), 유럽 반도체법(European Chips Act), 호라이즌 유럽(Horizon Europe) 등 주요 법안은 물론, 그 외 보조금, 세제 인센티브, 공공조달 기회 등 여러 규모의 프로그램들이 마련돼 있다.

소프트웨어와 '창업 공식' 다른 하드테크, 새 산업 흐름 이끌 것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하드테크 스타트업은 소프트웨어 스타트업과 어떤 점에서 다를까? 접근 방식, 개발 단계(마일스톤), 그리고 위험 구조에서 몇 가지 중요한 차이가 있다. 소프트웨어 분야에서는 제품을 만드는 일 자체는 거의 문제가 되지 않는다. 진짜 문제는 시장 적합성이다. 즉 '이 제품에 돈을 지불할 사용자가 충분히 있을까?', '그들에게 어떻게 다가가 우리 제품을 쓰게 만들까?'라는 질문이 핵심이다. 반면 하드테크 제품 시장은 대체로 크고 명확하다. 예를 들어 특수 화학제품을 만든다는 건, 수요가 성장할 게 확실할 때만 감행할 수 있는 일이다. 게다가 성공만 한다면 당신의 핵심 고객이 될 10~20개 기업을 미리 특정할 수 있고 초기 단계부터 그들과 직접 대화할 수도 있다.

반면 하드테크 스타트업이 마주하는 어려움은 기술적·경제적·조직적인 성격을 지닌다. 예를 들어 여러 분야의 전문 인력을 아우르는 유능한 팀을 꾸릴 수 있을까? 공장을 짓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기술적 난제를 해결하고, 이후 대량 생산 단계로 전환하는 데 성공할 수 있을까? 마지막으로, 생산비를 통제해 시장에서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을까?

하드테크 프로젝트의 개발 단계 또한 소프트웨어 스타트업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측정된다. 소프트웨어 시장에서는 시장 반응이 조회 수나 가입자 수 같은 지표로 쉽게 가시화된다. 하지만 하드테크 스타트업에게 중요한 것은 초기 단계에서의 기술적 검증과 상업적 검증이다. 예를 들어 상업적 검증은 대기업으로부터 의향서(LoI)를 받는 것으로 나타날 수 있다. 만약 당신의 스타트업이 로켓 엔진을 개발하고 있고, NASA(미국 항공우주국)가 '만약 당신이 이걸 완성만 한다면 1억 달러 규모로 구매하겠다'는 의향서를 보냈다면, 비구속적(non-binding) 의향서라 해도 그것 만으로 큰 의미가 있다. 이런 비구속적 의향서는 소프트웨어 업계에서는 농담처럼 여겨질지도 모르지만 산업 분야에서는 매우 중요한 신호로 받아들여지며, 실제로 투자자들로부터 상당한 자본을 유치하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기술적 검증 역시 방식이 완전히 다르다. 소프트웨어의 경우 최소한의 기능만 갖추더라도 의도한 목적을 수행할 수 있는 완전한 제품을 만들어 보여줄 수 있다. 그러나 하드테크 분야에서는 그렇게 할 수 없다. 전체 화학공장이나 완전한 로켓 엔진을 실제로 지어 보여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우선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지만, 역설적으로 그 막대한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먼저 소규모 자금으로 출발해 '우리는 진지하고, 실제로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신뢰를 보여줘야 한다. 따라서 하드테크에서는 시연(demonstration) 혹은 하위 시스템(subsystems)에 초점을 맞춘다. 즉 모형 재료로 제작한 로켓 엔진의 축소 모델을 시연하거나 전체 시스템을 여러 하위 구성요소로 나눈 뒤 그중 하나의 작동 가능한 소규모 부분 시스템을 제시하는 식이다.

흥미로운 사례가 하나 있다. 와이콤비네이터가 지원한 한 하드테크 화학 스타트업은 창업 초기부터 자신들의 진정성을 행동으로 증명해 보였다. 이 회사는 처음에는 실험실에서 그 다음에는 차고에서 극소량의 과산화수소를 생산했는데, 그렇게 아주 작은 양이라도 만들어내면 반드시 팔았다. 단 몇 백 달러라도 직접 매출을 올리는 모습을 투자자들에게 첫날부터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1리터당 몇 달러를 받으면서 고작 20리터를 팔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어처구니 없게 보였을지 모른다. 장차 수백만 달러 규모의 공장을 세우려는 목표에 비하면 너무 사소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접근법은 통했다. 단지 파워포인트 자료만으로 수백만 달러 투자를 요청한 뒤 첫 생산을 시작하는 방식보다 훨씬 설득력 있었다. 이 회사는 현재 대규모 상업용 공장을 운영 중이다. 창업 첫날부터 기술적·경제적 실행 능력을 입증함으로써 성공을 거둔 것이다.

이러한 사례들이 보여주듯 하드테크 분야에서 프로토타입(시제품)을 만드는 과정은 단순히 기능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물리 법칙, 재료의 한계, 자금과 제조 여건이라는 현실적 제약 속에서도 '이 기술이 실제로 구현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하는 과정이다.

다가올 거대한 혁신은 아마 또 하나의 앱에서 나오지 않을 것이다. '비트(bits)'가 아니라 현장에서 직접 부딪히며 '원자(atoms)'로 세상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에게서 나올 것이다. 지금 세계가 시급히 필요로 하는 것은 새로운 소재, 청정에너지, 첨단 제조기술에 기반한 실체 있는 제품들이다. 이야 말로 환경·안보·사회적 문제에 대응할 수 있는 열쇠이기 때문이다. 산업 르네상스는 이미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흐름을 이끄는 주역은 컴퓨터 화면 뒤에서 코드를 짜는 개발자들이 아니라, 상상력과 공학, 그리고 현재의 지정학적 환경을 결합해 새로운 산업을 일구는 제조업 기업인들이 될 것다.

*이 칼럼에서 표현된 견해와 의견은 전적으로 필자 개인의 것이며 소속회사의 것을 대변하지 않습니다. 필자와는 Twitter에서 @LithiumResearch를 팔로우하거나 [email protected]으로 연락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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