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란 상대적이다. 기다리는 사람은 지루하고 긴 것 같다가도 쫓기는 사람은 긴 시간도 찰나처럼 짧게 느낀다. 요즘 갈수록 시간이 짧아지는 느낌이 드는 건 내가 나이를 먹어서다. 그러나 실제로 무언가에 소모하는 시간도 짧아졌다. 이를테면 '쇼츠' 지향 현상 같은 것 말이다. 쇼츠는 동영상 플랫폼에 올려진 수 초 내지는 수십 초 길이의 짧은 영상을 말한다. 긴 원본 영상의 핵심 내용이나 흥미를 끄는 단면을 담고 있다.
요즘은 평일 출퇴근에 버스를 타고 왕복 150분 가량 이동한다. 버스 안에선 많은 사람들이 스마트폰으로 쇼츠 영상 보는데 시간을 소모한다. 영화나 드라마를 리뷰만으로 소비하는 사람도 많다. 언제부터인가 '결말포함'이라는 제목의 리뷰 영상도 많아졌다. 리뷰 컨텐츠의 금기도 깨진지 오래다.
광풍이 불어 철물점에서도 팔던 두쫀쿠(두바이 쫀득 쿠키)는 가스불처럼 훅 꺼졌다. 빠르게 확산하고 금방 결론 내린다. 그래서 그 사람이 나쁜가 착한가? 그래서 죽느냐 사느냐? 그래서 결론이 뭐임? 처럼 과정보다는 결과만 묻는 대화가 많아졌다. 이것은 좋고 싫음을 떠나 사회 현상이다. 여기에는 성역이 없다. 성직자들도 SNS라는 도마에 올라가면 낱낱이 털린다. 정치인은 물론 개인까지도 이슈가 되면 신상이 공개되고 그야말로 인민들의 재판이 열리기도 한다.
죽느냐 사느냐로 상징되는 햄릿의 저 유명한 대사는 고뇌하고 번민하는 인간 내면의 실상을 잘 보여준다. 인간은 원래 고뇌 속에 살아간다. 불교도 그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단지 그 고뇌에서 벗어나는 길을 제시할 뿐이다. 요즘 같은 시대에 시시콜콜 과정을 따지는 것은 고리타분하다고 할지 모르지만 우리는 그 과정속에 산다. 그 과정에 사람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있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은 하나의 사건으로 그 사람을 결정짓지 말라는 뜻이다. 촉법소년을 법으로 규정하는 목적도 사람을 행위에 묶어두지 않기 위함일 것이다. 변화의 기회와 가능성을 믿는 것이다. 하지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컨텐츠가 삶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 주기보다는 단순하게 '좋아요'와 '싫어요'로 재단된다.
쇼츠에 중독되는 것은 과정의 결핍이 가져온 끝없는 갈증인지도 모른다. 맛난 음식을 음미하지 못하고 삼켜버리는 데서 오는 허전함일까. 우리네 삶도 결과만 좇다 보면 기다리는 것은 죽음뿐이다.
알파고에 이세돌은 패했지만 여전히 세계바둑 대회는 열리고 있다. 지구는 여전히 돌고 바람도 불어온다. 선원에서 정진할 때 처음엔 어딘가로 도달하기 위해 무던히 애썼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날 불어 온 한줄기 바람이 내가 여기 있음을 알려 주었다. 계곡의 까마귀 울음이 나를 그 계곡에 머물고 있음을 울려 주었다. 좇는 것을 멈추었을 때 우리는 그곳에 도달한다. 그것은 멈춤이 아니라 무의미하게 흘려보낸 나의 시간과 공간을 되찾는 일이다. 헬스장에서 근육을 만들기 위해 한 번 두 번 쌓아가는 이처럼, 논에서 한 포기 두 포기 심어 나가는 농부처럼, 너른 마당에서 한포기씩 풀을 뽑아 나가는 노승처럼 하루에 한번 쯤은 다른 시간대를 놓아버리고 지금 여기에 있어 보면 좋겠다.
'지금 여기 온전히 있을 수 있다면 그것이 온 세상과 우주를 여행하는 것이며 한 모금 물을 온전히 맛볼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진귀한 맛의 음식을 먹는 것이다'라고 나는 주장한다. 결핍은 그것을 경험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그것을 온전히 경험하지 못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급한 마음에 놓쳐 버리고 마는 것이다. 마음을 괴롭히는 번뇌를 벗어나는 좋은 방법 하나는 바로 여기에 존재하는 것이다. 지루한 서사를 피하는 것도, 끝없이 결말을 좇는 것도 한 호흡에 멈추고 지금 여기에 깨어있는 것이다. 허망한 욕심과 망상을 그치면 바로 그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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